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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이야기

by 쏘리

울고 싶어도 좆같아도 내 내담자들이 우선이라 출근하면 감정을 빼고 일했다. 집에 오면 불안하지만 그냥 또 해는 뜨고 출근을 한다. 55만 원 관리비 20만 원 월마다 나가는 75만 원. 공중분해되는 돈. 월급은 세후 230 겨우 넘는데 주차비도 3만 원 내야 한다. 집을 더 허름하고 위험한 곳으로 가야 한다. 친구들은 점점 변해간다. 내가 변한 걸까? 아니 세상은 변해간다. 내가 못 쫓아간 건가? 현장에 있을수록, 공부를 할수록 죄다 왜 내 얘기 같을까. 왜 내 앞에 앉은 이 사람이 나 같을 까. 왜 그들보다 내가 작고 초라해 보일까. 이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시로 바뀌는 마음. 남들은 진득하니 하는데 내가 뭐가 문제여서 죄다 마음에 안 들었을까. 왜 다들 아파하는 걸까. 왜 다들 아픈 걸, 아픈 사람들을 모른척할까. 내 일 아니니까. 배때지 부른 사람들은 자꾸만 더 배고프다고 토악질을 한다. 먹을 거 더 갖고 오라고. 돈 더 갖고 오라고. 줘도 줘도 부족하고 쌓아도 부족한 그 욕심들이 죽어가는 세상을 만든다. 근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배때지 부른 돼지들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게 돼지들 밑에 개미가 되어서 충성을 한다. 근데 아무 소리 못하고 수긍한다.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자살이 1등인 나라가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라 정작 우리나라 이야기인데 남의 나라인 것처럼 내버려 둔다. 그러곤 너는 없고 나만 있다. 나만 있는 세상. 나만 이쁘면 돼, 나만 주목받으면 돼, 나를 따라라 시녀들아. 그 시녀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여왕일까 아님 시녀가 여왕을 만들어내는 걸까.


약자들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바보들이라 한다.

강자들은 그런 약자들을 기가 막히게 부려먹는 것에 베테랑이다. 약자들의 그 연악한 마음을, 조급함을, 부러워함을 안다. 어떻게 하면 개미들의 돈을 빼앗고,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어버리지? 화려하고 좋은 걸 자꾸 만들어서 텅 빈 강정처럼 개미들을 어디도 못 가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개미들은 일만 한다. 일 집 일 집 그 집마저도 은행의 상품을 사서 평생에 노예가 된다. 분수에 맞게 사는 일.


사랑할수록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는데 정작 지키기 위해선 사랑보다는 돈 명예 권력에 정신을 못 차리고 헐뜯고 사람을 죽인다. 자신의 부족함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고 한다. 자신의 자녀는 본인이 아닌데 하나의 고유한 인생인데 그 인생을 쥐락펴락하기 위해 돈을 때려 붓는다. 그러곤 아웃풋이 좋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한테 쓴 돈이 얼만데. 그래서 나가서 밥은 벌어먹고 살겠냐, 넌 우리 집에 오점이야, 네가 태어나서 내가 이혼을 못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수습할 수 없는 말들을 줄줄이 쏟아내곤 본인이 더 힘들었다. 쟤가 어떤 애인줄 아냐. 내놓은 자식이니까 연락하지 마세요. 그렇게 온 우주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 우주에 내팽개친 아이들은, 자녀들은 이리저리 부모의 사랑을 찾아보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아봤어야지. 온전한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나의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는 부모의 참 사랑을 받아봤어야지. 그 사랑이 고파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이 사람 저 사람.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거나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뭐가 잘 못된지도 모르고 쓰레기 같은 사람들 옆에 붙어있는다. 근데 그 쓰레기조차도 사랑받아야 한다. 쓰레기 나는 어디에서 왔나. 나는 왜 쓰레기 인가. 재활용이 되지 않을까. 나도 이 사회에 한 구성원으로 도움이 되고 싶은데 사람들은 왜 손가락질에 차가운 눈빛만 보낼까. 내 인생은 이렇게 가는 걸까. 태어는 났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렇게 쓰레기는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도 버려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압축 프레스에 눌린 채로 내가 왜 눌리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생을 살다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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