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다.
브런치 두 번 신청에도 거절당하다가, 카카오톡으로 하도 홍보 카톡이 와서 성수동에 놀러가서 참여했다. 곱게 매너있게 얘기해도 못알아듣는 그 행위들, 내 눈엔 꼬집어 줄 것 밖에 안 보이는 데 그랬더니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차피 나나 누구나 귀담아 듣지 않는 인생들을 살아오니 타인에게 따뜻한 무관심이 아니라 차가운 관심들만 많아져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인데도 자살로 생각하고들 살아간다.
정신과에 어떤 사람이 찾아오는지 아는가? 제 3자들에게 상처받아서 오는 사람보다 제일 측근인 사람이 거의 가해자다. 가족, 부부, 연인, 동료, 친구, 그 상처를 주는지도 모른채 받는지도 모른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잖아. 함께 살아가야지 하면서 말이다. 근데 모순은 또 아군은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적당히 친해져야하고, 적당히 가까워지는 것이 생존에 삶에 유리하다. 그러니까 너무 뻔딩되지 말라는 그 말이 친해지지 말라고 훼방놓는게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라도 어느정도 선을 지키고 지내라는 의미다.
가족간에도
연인간에도
선이라는 게 있어야
살인이나 폭행이 안 난다.
왜 살인 폭행이 나느냐.
간단하다.
내 마음처럼 안 해주니까.
내 마음이랑 너 마음은 같아야지.
나 사랑한다며
내 부모잖아.
내 자녀잖아.
내 동료잖아.
내 선배잖아
내 후배잖아
우리 학연혈연지연이잖아
니..가.. 어떻게... 나를...?
가진게 많은 사람일 수록 자기도 뭐가 된 것처럼 군다.
니가 감히? 너가 감히?
그러니까 너무 가지는 삶도 동경하지말고.
초롱불 키던 시절이 아닌데
왜 우리는 더 날카로워지고 못살게 굴까?
군대에서도 휴대폰을 지급하니 딴데다 정신팔려서
군대 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했는데
이젠 군대 내 도박이 판을 친다고 한다.
우린 너무 많은 것들, 살기 좋은 환경을 셋팅해두고
서로를 너무 못살게 구는 그 방식들을 가지들을 너무 만들어 내고 있다.
적당히들 해라.
이 배부른 도야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