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보면 진짜 감탄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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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자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트레인스포팅>에서 주인공 마크 렌튼은 이렇게 말한다. "삶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미래를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빌어먹게 큰 텔레비전을 선택하라. 세탁기. 자동차 CD플레이어, 전동식 깡통 따개를 골라라. DIY 제품을 고르고,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회개하는 삶을 선택하라, 빌어먹을.." 하지만, 내가 왜 그런 것을 원해야 하지? (But why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렌튼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비웃는 듯 보이지만 그의 독백 속에는 학벌이 나 돈, 능력도 없으므로 평범하게 살래야 살 수도 없지 않느냐는 절망이 근저에 깔려 있다. 그는 대안으로 마약을 선택하였을 뿐이다.
(* 마약한 내담자는 한 명도 못 봤다. 그냥 퇴사해서 흩어진 동기네 병원에 여자친구가 하자고 꼬셔서 한 번 해보다가 입원된 환우가 있다. 케이스 정도로만 들었다. 그 때 시즌이 2023년 가을쯤인가 근데 마약 병상은 적다. 그 이유는 중독자들은 완치라는 개념보다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케이스인데 그 중 마약도 치료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굳이 예산을 투입하지 않는다. 그렇게 병들어 간다. 치료가 어려우면 마약을 갖다 파는 마피아나 판매상부터 조져야 하는 데 그러면 뒷돈 챙겨먹는 곳이 있다. 분명히 못잡을 대한민국이 아닌데? 그정도로 허술할까?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은 마약 중독되게 꼬시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그걸 눈 감아주고 배때지 따뜻하게 하는 사람 누구일까? 내가 2018년 수련시절 성매매 단속기간에 담당 경찰관이 본인이 단속자면서 본인이 성매매를 운영하고 있는 기사를 보고는 그 사무실에서 육성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 본인과의 싸움하냐고 아수라백작도 아니고 걸리면 안돼 vs 잡아야 승진 뭐 이런 발상인가?"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서도 농담을 던져서 슈버바이저 선생님을 웃기게 만들었다. 아무튼 마약자, 중독자는 "갱생 안 돼" 라고 하는 실무자들도 많겠지? 그만큼 어려우니까 하다하다 포기도 하는 거고, 결국 그 사람의 삶은 마약으로 얼룩져야 할까? 물론 중독자에서 회복자로 가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비전공자들은 "지들이 마약해놓고 왜 예산을 아웃풋도 별로 없을 거 같은데 그냥 그렇게 살다 뒤지지" 이렇게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려나? 나는 그 사이에서 마약을 파는 새끼는 누굴까? 이게 궁금하다. 그래서 마약관련된 자료를 보니 공항에서도 많고 필리핀 등등 해외가 많았다. 마약을 하는 장소도 가정집, 회사 사무실, 노상 등 1인이 할까? 다수가 할까? 쉬쉬할게 아니라 다 까놓고 보자. 마약과의 전쟁 선포한 정치인 누구였나? 아? 지금 바쁘신가? 잘 모르겠네.)
(* 선택권이 넓어진다는 건 그 만큼 그 사람이 마음의 여유든,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다.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충분치 않다면 선택지는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차도, 집도, 핸드폰도 뭣도 본인의 분수에 맞게 선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가리가 깨지거나 잔고 통장이 깨진다는 것이다. 그치만 이미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은 그렇게 선택하는게 아니라 섹스와 마약 또는 사치 그런 파괴되는 행동들로 도배된다는 것이다.)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에서 기차가 처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생긴 말로,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 모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맞히는 게임을 뜻한다.
(* 지금은 대인관계를 다 박살냈지만, 대인관계를 늘려봐야지. 해서 늘렸을 땐 마피아 게임을 밤 새도록 해보고 싶다. 근데 다시 사람을 주변에 늘리진 않을 것 같다. 그럴 나이가 지났고, 이제 어울리는 사람도 시절인연처럼 달라지는 시절이 왔다는 의미다. 20대 때 원 없이 놀았다. 내 기준 나는 총량치로 다 놀았다.)
이 영화의 극작가 존 호지는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 즉 트레인스포터는 혼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행동 양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영국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 혼돈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있을 것인데 그 사이에 어떤 중심을 갖고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에 삶의 질을 다르게 해준다.)
결국 <트레인스포팅>은, 삶은 우리에게 달려오지만 우리는 삶의 번호를 알지 못하며 다만 번호를 맞히는 게임을 할 뿐이라는 의미를 던져 준다.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 내가 절망했을 때 했던 패턴이다. 아 이렇게 해서 언제 대출을 다 갚고 등기를 치지? 계속 이렇게 1년 씩 수발들다가 끝내라고? 1년 씩 아파트값은 따라잡지도 못하게 오르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스트레스 받으면 술먹고 배달음식도 먹고 쇼핑도 할 수 있는거 아니야? 그러면 다시 연봉이 올라도 물가대비 오른 것도 아니여서 스트레스는 직장에서 이빠이 받는데 결국 또 술이나 친구들 만나서 카페가고 파스타 처먹고 그러면 끝나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이 똬리를 틀어서 갉아먹었다. 근데 내가 든 생각은 "소연아 너 그거 20대 때 해서 지금 30대에 대가리가 깨진거야. 누굴 탓 해. " 이게 환청인가? 아무튼 그래서 누구의 탓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패턴을 바꾼다. 모드를 바꿨다. 과연 이렇게 지냈을 때 40대는 어떻게 될지. 당장에 5개월 뒤가 아니라 5년 후를 위해서 10년 후를 위해서 몸에 습관을 베게 만든다는 것이다. 흡연자가 비흡연자로 가기 위해 몇 번을 실패를 하는 가. 비흡연의 기간이 길 수록 내가 끊은 기간이 아쉬워서 더 못피지 않나? 아님 주변의 유혹에 또 넘어가나? 아님 또 스트레스 상황에 피워버리나? 아무튼 사람은 익숙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게 태반이라 몸에 체득될 수 있도록 세팅해두는 기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지금 하고 있다. 친구없이도 살아보기, 대형 카페 1년 에 1번 가기, 중복되는 물건 구입하지 않기. 중고거래 이용하기. 등기도 안치고 도대체 이 급변하는 세상에 집 한 채 없이 칠레레 팔레레 그 대기업 마케팅들에 놀아나서 나중엔 내가 내담자가 되는 꼴을 못 보겠다 이 말이다. 내가 내 스트레스 관리도 못하는데 누굴 스트레스 관리를 해준다는 말이냐. 그게 너무 모순적이라 직종에서 일단 손을 땠다.)
지금 일류대를 못 다닌다고 해서 10년 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의 빚을 5년 후에도 못 갚을 것이라고, 지금의 봉급으로는 평생 남들처럼 못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여 체념한다.
(* 2등급이 3-4등급으로 떨어졌을 때, 낙담하고 체념한다. 계속 3-4등급이면 어떡하지 나 2등급까지 찍었던 사람인데 1등급을 바라본 사람인데 다시 2등급을 갖고 오기도 어렵네. 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이 부정적 사고가 1등급을 할 수 있는 시간 마저 갉아먹는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그냥 해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면 된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 그래서 나도 그냥 한다. 25년 3월 부터 나는 닥치는 대로 한다. 그게 편의점 알바든 서빙 알바든, 야간 공장이든, 정건 분야는 다시 갈지 모르겠다. 거기 내부분열 싸움에 굳이 끼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게 조직이다. 개인은 조직을 위해 출근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가족을 위해 출근한다. 조직은 개인을 위해 돌아가지 않는다. 전체를 위해 이익을 위해 돌아간다. 그 지점이 크지 않는 곳이 좋은데 나는 직업적 사명감? 명예? 보건복지부 상? 관심없다. 그런걸 바라고 열심히 한 것도 아니였고,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던 건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게 뭔지 깨달아버렸다. 누구 밑에서 무엇을 배우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자기 스스로 깨우치고 알아가는 시간 마저 나는 더 재밌어져서 어떨지 궁금하다. 구인/공고는 자주 본다. 어디가 인력이 부족한지. 어디 기관이 바람잘날 없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