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빈약하면 안 된다. 돈 보단 마음이 우선이다.
p. 70-71
그렇다면 학벌이 약한 사람이 취직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1998년 초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풍비박산 나면서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던 시절, 내가 경영한 외국법인에서 신입 여직원들이 필요하여 이른바 일류대 취업실에 공고를 부탁하였던 적이 있다. 자격은 영어와 컴퓨터 활용 능력이었다. 예상대로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제출된 이력서 중에는 내가 학교 이름 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한 지방대 조업자가 한 명 있었는데, 영어나 컴퓨터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객관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흥미를 느껴서 면접 대상자에 포함 시켰다. 그리고 면접에서 나는 그 지원자에게 물어보았다. 일류대 출신이 아닌데 어떻게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었는지를.
(* 학벌, 학력에 대한 압박도 없었고, 대학 자체에 대한 로망이 없었 사람이었다. 애초에 종로엠스쿨, 단과 학원, 1:1 수학, 영어 과외도 받았지만 딱히 공부에 뚜렷한 두각을 보인게 아니였으니까. 그냥 학원은 친구들 만나러 가는 곳,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단 혼자 공부하는 것보단 학원에서 나눠주는 유인물이나 자료들이나 정보들이 있으면 공부한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다녔던 것 같다. 공부에 대한 보상체계나 목적이나 목표가 딱히 뚜렷하지 않다가. 학교에서 써서 내라는 장래희망이나 희망직업 때문에 뭉뚱그려서 PD라 생각했지 막상 네이버나 검색하거나 책을 들여다보니 내가 할 깜냥의 직업은 아닌 것 같아서 또 대충 공부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디에 소속되면 나름 최선을 다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최고는 아니였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나는 대가리가 꽃밭이라 만족감이 높고 사는데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토익캠프도 하고, MOS MASTER 따고, 초등학교 땐 워드프로세서도 땄구나? 회계 자격증은 이것 저것 딴 것 같은데 자격증 이름이 다 기억이 안난다. 나름 피아노도 깨작, 미술학원도 깨작, 컴퓨터 학원도 깨작 깨작 깨작 부모님이 다 시켜주셨다. 감사하다.)
그녀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저는 지방대 출신이지만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은 일류대 졸업자보다 더 많이 갖추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에게는 면접 기회조차 안 주어집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서울로 밤 기차를 타고 와 서울의 유명 대학교 취업게시판들을 살펴보고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채용을 결정하였으며 다른 면접 대기자들은 만나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더 좋은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어 내 회사에는 나오지도 않았다.
(* 나는 면접자였다면, 저 여자는 일류대학을 들어갈 머리가 아닌데 실속있고, 실전에 강해서 저렇게 한 걸까? 아니면 왜 일류대학을 들어가지 않고, 지방대로 빠지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최근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패키지 여행이라 침향을 판매하는 약장수에게 1시간 정도? 마케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서른이 넘어 패키지 여행을 하면 중간 중간 광고처럼 마케팅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처음 경험해 본 건데 거기 판매자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깡단이 있어보이는 여성분이 침향을 팔기위해 여행객 앞에 서서 자신의 개인사를 거침없이 털어놨다. 상류층 입문을 위해서 판사인가 검사인가 준비하는 남편을 만났다가 신체적 건강악화로 병간호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하면서 인생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나는 근데 중간에 질문을 한다. 아, 그 여자는 화려한 반지 악세사리와 작가가 꿈이였다고 하길래 나는 질문했다. "작가와 악세사리 디자인을 하지 않고 왜 이쪽 길로 빠졌는지요?" 물었지만 우문현답이 좔좔 나와서 당황했다. 나는 그 사람의 남편의 스토리, 결혼에 대한 개인적 가치관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였다. 그냥 내가 유추하기로는 작가나, 악세사리 디자인으로는 남편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이쪽 길로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해버리게 됐다. 그리고 다소 워딩이 워낙 쎄서 물건을 팔러 나온건지 본인 호통을 치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손님과 기싸움을 하는 건 기분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지갑을 더 열기가 어려워진다. 이미 90%는 열까 말까 한 마음으로 오는데 그 시간에 기싸움을 한다? 아무리 사고 싶어도 더더욱 지갑을 닫게 된다. 오히려 두 번째 커피집에 가서는 누구나 다 뻔히 알 수 있지만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 그리고 꼭 판매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강요까지는 억압적으로 하지 않는 태도에 다 같이 지갑을 열었다.
아무튼 저 면접을 본 여자는 이 사회가 어떤 걸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취직이 되는지에 대한 프로세스 과정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불필요한 절차 없이 딱알아서 잘 깔끔하게 센스있게 파악하는 점 때문에 지방대라는 타이틀이여도 조직에서 원하는 인재상이라 취업이 프리패스 된 것 같다. 더 좋은 직장까지 간 결말도 마음에 든다.)
예를 하나만 더 얘기하자. 오래전 무역학과 출신들을 신규로 공개 채용했을 때 일이다. 물론 일류대 무역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자들이 뽑혔다. 그리고 얼마 후 내게 소포하나가 배달되었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던 어느 지방대 출신 학생이 보낸 것이다. 열어 보니 두껍고 낡은 노트 몇 권이 들어있었다. 그 노트들에는 그 학생이 학창 시절에 수년 동안 무역 회사들을 발로 찾아다니며 얻어 낸 무역 실례들과 각종 무역 서류들의 형태와 작성 기법, 그리고 실무적 주의 사항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동봉된 편지에는 '저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900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 사본이 들어 있었다.
(* 진심이다. 저 사람은 무역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다. 일류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무역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 그게 자신이 있으니까 보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소포까지 배달하지는 않는다. 거의 자산을 보낸 것과 다름없다.)
나는 갑자기 이미 새로 채용한 녀석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지만 어쩌랴. 결국 그 학생을 내가 알던 외국계 기업에 강력히 추천하였고 그는 당연히 채용되어는데 불과 7-8년 만에 부장이 되었다.(그 뒤 회사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전공은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문학과 였고 학점은 전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아무래도 저 사람은 공부를 수단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 잔가지는 명확하게 쳐낼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부장까지 빨리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성적순, 일류대학순 놀이에 놀아난 학생들 보다는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