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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아현 선배는 멋진 사회복지사다!

by 쏘리



P. 208


아이를 낳으면서부터다. 아이를 낳아 작고 따뜻한 핏덩이를 품에 안는 순간, 누군가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 이 짧은 생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지만 나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면 어떨까? 아직도 가늠은 잘 안 된다.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있고, 낳고 나서 힘들게 육아하는 친구들도 있고, 인생의 다른 과업들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 선배들이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듦과 기쁨 슬픔 고통이 함께 가지만 그럼에도 다들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잘 지내고 있듯이 말이다.)



P. 210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젖먹이를 두고 집을 나와 버렸다.



(* 예전 아버지들의 폭력은 어땠을까? 현재 교제살인이 2.6 이긴 하지만 다정한 남자가 최고다. 말 이쁘게 하는 남자가 최고다. 돈 많이 벌어오는 남편? 성격 개차반이면 쓸모없다. 아무리 돈을 쓸어담아줘도 성격이 거지같으면 있으나 마나한 남편이다. 지독하게 멀리 도망가야 한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뭐 이딴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든 여자든 성숙해지자 좀. 와이프를 굴착기에 매달아 놓지를 않나. 그런 남편을 복수하기 위해 헬스장을 끊고 결국 죽였다.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잘못된 사랑. 사랑을 알려면 본인 스스로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구걸하는 게 아니다. 사랑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게 전부다.)



P. 211



이웃돕기 후원 회장님에게 전화, 어르신들 생신날 찾아가서 선물 드리고 노래도 불러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 나는 생일이나 기념일을 딱히 크게 챙기지 않는 편이다. 회사에서도 생일 파티를 해주긴 했지만 출동 같다가 돌아와서 엠이스써야하고 야근해야하는데 내 짝꿍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그냥 생일은 제일 소중한 가족하고 조촐하게 맛집가서 맛있는거 먹고 끝내는게 제일이다. 이왕이면 용돈 좀 받으면 좋고. 뭐 막 화려하고 끝내주는 그런 건 팔순잔치때나 한 번 하고 말면 그만이지 않을까.)



(* 세이노 어르신 팔순잔치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1000억가 자산가는 생일을 어떻게 보내나요? 일상 브이로그 찍으실리는 절대 없겠지요? ㅋㅋ 그냥 궁금합니다.)



근무한 3년 동안, 혼자 사시는 어르신 스무 명의 실제 생일을 음력, 양력까지 파악한 후 생일 당일 방문했다. 떡케이크와 계절별 내의를 선물하며 생일 축하 노래도 직접 불러 주었다.



(* 나도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생일파티를 수도 없이 해드렸다. 화려하진 않아도 같이 케이크를 나눠먹고, 간식을 나눠먹고 생일축하를 서로 해주고, 노래도 부르고, 그랬다.




폴라로이드 사진 좋아하는 편.




ㅋㅋ 생일파티 끝나면 혼자 이러고 놀기도 했다. 뒷정리할때 노래를 켜두고 했었는데 흥이나면 이러고 사진도 찍고 그랬던 듯 싶다. 이게 직장생활에 조금이나마 활력이지 않았으까 싶다.)





P. 212



요구르트까지 사 두고 기다렸다.



(* 우리 마음씨 고운 염려되는 분들은 가정방문에 가면 항상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음료수부터 시작해서 과일까지도. 보통 담당자는 하루에 3-4군데 가정방문을 가게 된다.



갈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잘 챙겨주는 마음에 나에게 이것 저것 간식을 챙겨주신다. 나한테 결혼은 언제하냐고 하신 분도 계셨고, 나름에 정이 들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탕 뛰고나면 배가 너무 불렀다. 한사코 거절해도 거절하면 괜히 내가 뭐라고 하면서 배부름에도 꾸역꾸역 먹으면 좋아 해주시고, 또 다음엔 더 큰걸 준비해주시려고 한다. 그렇게 귤도 구황작물도 이것저것 챙겨오면 감사한 마음이라고 저장해두고 남기고 그랬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회복지사였을까?


잔소리를 하기도 했고,

애정어린 말도 해주고

경청도 해줬는데.


이젠 내가 힘들어지니

버거워진 것도 사실이었고


그들에 대해 잘 모르면서 손가락질 하거나 수근대는 비장애인들이 미웠고 나는 비장애인이지만 장애인과 조화롭게 잘 지내기 위해 애쓰는 직업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다. 돈이 아무리 많아봐라. 마음이 가난한 불쌍한 자들아 다 입좀 싹다 다물자. 나중에 당신이 내담자로 앉는건 시간문제다.




선도사업 설문지 하러 돌아다녔을 때 인듯. 내 청춘 찍어두면 뭐 좀 안 되냐? ^.^




유의미한 결과는 나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은 뭐 까라고 하면 까는 거지 머 하면서 다님.




제발 내 좀 귀찮게하지 마소!



(* 나는 댕댕이 제질이라 거절해도 잘 들이 댄다. 지금은 그렇게 굳이 하지는 않지만, 나는 알고 있다. 밀어낸다 해도 실상 마음은 외롭다는 걸. 차가운 사람. 무서운 사람도 상처를 받은 기억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걸.



그래서 나는 비속어를 하거나, 거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봐도 딱히

무섭진 않고 그가 가진 상처가 뭘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전자발찌를 한 사람도

술먹고 칼로 찌른 택시기사한테도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눈다.


한 번도 경청해준 사람이 없었을까?

그러다가 내가 돌연 바빠서 면담이 어렵다고 하면


날 죽여버리겠다고 하던 사람들. 결국엔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서운했다는 말이었고, 그 마음이 겁도 났지만 실상은 자기 좀 봐달라는 신호고.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바쁘다는 말을 객관적으로 팩트로 전달해주면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서운하고 미안함마음을 잘못되게 표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럴때 아이메세지로 표현하면 좋은데 연습이 되지 않아서. 필터없이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곁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주면 차분해진다. 경험이 없었을 뿐이지.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죽고싶은 사람은 없듯이.


어떻게 변해야할지 방법을 모를 뿐.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해야하는지 방법을 모를 뿐.


그 사람이 못나서도, 못배워서도, DNA가 안 좋아서도 아니다. 방법을 몰라서 그렇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알고나면 별거 아닌데. 그래서 나는 알려줬다. 내가 박사나, 석사나 학력이나 학벌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진심어리게 들어주고. 따뜻하게 다가가주면 갈갈이날뛰는 그 마음이 같이 차분해진다는 걸 나는 수 도 없이 경험했다.)



P. 213



얼굴을 빼꼼히 내밀면서 할머니를 불렀다.



(* 자살시도한 사람. 중환자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던 사람. 그럼에도 나는 이리 저리 eye contact 한번 해보겠다고 얼굴을 마주봤다. 내 얼굴이 그리 비호감은 아닌데. 작고 조용하게 얘기 좀 하자고 하면 귀찮아 하면서 고개를 내 저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싸대기 한 번 맞아본적이 없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운이 좋은 걸까?)



물 한 잔도 안 먹이고 보내요? 마 들어오소. 자존심 강한 할머니는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었다. 깔끔한 성격과 강한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싫어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자 화내는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 자존심이 강한 회원분이 계셨다. 조금만 다른 동료회원이 해도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여쭤봤다. 왜 그러셨는지. 그냥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나중에서야 자주 가정방문을 가니,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있으셔서 얘기해주셨다. 나름 애썼던 시절이 있었는데, 스스로 해야할 일을 직접 하지 않으면 화가 나고, 누군가 자기가 해야할 일을 대신하고 있으면 난폭해진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주셨다.



그런 점은 알고 있겠다고 하고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공유를 드려도 되는지 여쭤봤고, 오케이 해주셔서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눈썹이 짙으셔서 내가 항상 눈썹정리를 해드렸던 분이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 욱하는 모습도 있지만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도 늘 표현해주셨던 분이다.)



무표정한 얼굴만 보다가 환한 웃음을 보니



(* 나는 2종 보통이다가 1종 보통으로 면허를 바꼈다. 사회복지사라면 1종 보통을 따둬야 송영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수원역 운전을 벌벌 떨던 내가 이제는 스타렉스? 카니발? 운전 하면서 사람들을 태우고 모셨다. 내 자차로도 모시고 외래 송영도 가고, 안 간 곳이 없다. 자차를 모시고 다닐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 중 무지 조용했던 분이 계셨다. 한 3-4개월쯤? 모셔다 드리고 태우러가니 그 시간에 내가 지친 모습이 보였나보다. 나름 티를 안낸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들켰나보다.


나에게 "소연쌤 담배 한대 펴봐요." 라고 제안하셨다. 50대 남성분이셨는데 나름에 위로라고 해주신걸까? 나는 "에? 담배 안 펴요 ㅋㅋ 담배피면 뭐가 좋아요. 돈나가 건강 나빠져. 그러니 선생님도 담배 끊으시고 운동하세요."


잔소리로 갚아드렸다.

담배는 내 해결책이 아니다.

담배가 내 월세나 내 아파트값을 보태주는 게아니다


실무자라고 고민이 없을까?

누구를 도와주는 사람은

도움을 받지 않아야 할까?


아무튼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어줘야 한다는 걸 나는 사회복지를 하면서 알게된다. 하지만 세상은 타인만 돕고 살기 팍팍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었던 걸까?)



칼국수 집에서 보자. 내 작대기 짚고 조심히 걸어나가볼게

세상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할머니가 고마웠다.



(* 나를 통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늘 있다.)



저 발령나서 이제 할머니 댁 못 가요. 다음 담당자도 좋은 분이라 잘 챙겨드릴거예요.



(* 나는 회원/담당자들때문에 힘들었던 게 아니다 그만 둘땐 거진 상사들땜에 안맞아서 그만 둔 이유가 크다. 개인 사도 있지만. 뭐 저연차가 그만두지 고연차가 그만둘리는 없다는걸 나는 알기에 내가 나간다. 어차피 일확천금을 바라고 일을 한 것도 아니니까. 다만 그렇게 되면 회원들이 아쉬워한다. 그러니 선배들아. 좀 어른답게 좀 굴어라. 부끄럽지도 않나 싶다.)




(* 나는 아마 현장에 돌아가도 똑같을 것이다. 업무적으로 보복을 하든, 또 어떻게 해코지를 하든. 일을 대충하거나 부끄러운 짓들을 하면 다 까발려주겠다. 이 말이다.)


그 제안을 거절한 나의 소심함이 원망스러웠다.

행복한 생신상. 그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리와 마음에 남아 있다.


(* 같이 밥을 먹자는 제안을 나도 많이 거절했었다. 얻어먹으면 그만큼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마음만 받는게 편하기 때문이다. 아껴주셨기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그냥 맛있게 감사합니다. 하고 잘 먹을 걸. 하는 마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상사들이 사주면 감사한데

누구한테는 얻어 먹기 싫은 사람들도 있다. ㅎ


내가 돈이 없는 건 아니라서요. ^^ 굳이 싫어하는 선배/상사들한테까지 먹기는 싫다. 알아서 센스있게 눈치 챙기자. )




그리고, 내가 존경했던 팀장님은 그랬다.

누가 사주는 밥 함부로 얻어먹지 말라고.

그게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고,

무엇을 바라고 주는 밥일지 모르니까.

늘 언제나 엔빵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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