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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Jul 17.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낮에 봐 두었던 밴드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공연장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공연 여러개 본다. 우리나라 옛날 극장같은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지하로 내려가  공연장에 들어서니 문자 그대로 소공연장이다.  무대를 앞에 두고 여러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라이브 바 같은 분위기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들었던 재즈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나는 차라리 이게 낫다. 안내 받은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공연팀은 3인조로 구성된 혼성 밴드다. 긴 머리의 여성이 베이스를 치고 남성 기타 연주자가 보컬을 겸한 밴드는 장르는 모르지만 시끄럽지 않아 적당히 듣기 편한 종류의 음악을 연주했다. 긴 머리의 여성 베이시스트는 확실히 간지가 난다. 베이스의 길쭉한 넥을 가로 질러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채 리듬을 타며 연주하는 모습은 밴드 연주자가 가질 수 있는 간지의 최고봉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다 빨간 가죽 바지까지 입어줬다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를 즐겼다.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공연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이 익숙해지며 편안해졌다. 중간중간 뭐라 재밌는 얘기를 하기도 한 것 같았다. 지루하지도 생소하지도 않은 공연이 끝나고 적당한 음악과 술 젖어 밖으로 나왔다. 밤마다 술에 젖는 것 같다. 밤마다 황홀한 밤이었다.


 긴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다리에 쌓인 피로 만큼의 감격을 가슴에 채운 채 숙소로 향했다. 어련히 숙소에서 나올 때와 마찬가지  루트로 돌아가면 되리라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젠장... 정차하는 역이 달랐다. 마치 급행처럼 무려 몇 정거장 정도를 지나서 정차를 했다. ‘하아 이런...그냥 잡아 타면 안 되는 구나...’ 시간도 늦고 몸도 지친 마당에 이렇게 되니 너무 힘들었다. '구글이 괜히 지금 들어오는 열차말고 다음 열차를 타라고 한 게 아니었구나...모르는 데서 나를 너무 믿었구나.' 반성했다.결국 다시 길을 물어 반대방향으로 되돌아 가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실 머 별건 아니지만 그냥 지친 몸으로 힘들었다.)


 내 집인양 남의 집으로 들어가 익숙한 듯이 샤워를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초가 녹아내리듯이 잠에 빠져 들었다.     




 생에 처음으로 보름을 넘기는 타지에서의 강행군은 아무리 여행이고 놀러 나온 기쁜 마음으로라도 그 피로를 이겨내기에 쉽지는 않았다. 녹초가 되어 잠이 들어 창 밖이 밝아오고 해가 점점 높아져가도 난 일어날 정신이 없었다.  기면에 가까운 상태로 주체할 수 없는 잠에 휘감겨 없었다. '젠장, 손가락하나 까딱하기도 힘들다.' 침대에 몸이 녹아 눌러 붙은 듯 했다. 오전 내내 정말 모처럼만에 정신없이 잠의 환락과 침대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게스트 하우스와 호텔의 침대에서만 잠을 자다 모처럼 가정집의 침대에서 잠을 자서 그랬던건가? 아무튼 그렇게 혼미한 정신으로 한참을 자고 나서야 뻑뻑한 눈을 뜰 생각이 들었고 핸드폰에 온 메시지를 확인할 정신이 들었다.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승연이에게서 온 메시지와 함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와 있었다. 거리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허공을 헤매고 있는 혼백을 겨겨우 수습하고 지금 출발하노라 연락을 했다.


 세수를 하고 썬크림을 바르고 필요한 소지품을 챙겨 길을 나섰다. 그래도 아주아주 푹 잔 뒤라 그런지 몸이 사뿐한게 기분이 산뜻하고 날씨가 더 상쾌하게 느껴졌고 여행을 왔다기 보단 집에 있다가 잠깐 외출을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밤의 일을 교훈 삼아 신중하게 지하철의 정차역에 유념하며 지하철을 타고 어려운 이름을 가진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어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선글라스를 낀 승연이가 어느 가게 앞의 벽에 기대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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