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킹콩이 매달렸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르다.
한동안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공연시간을 맞추기 위해 미리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맛집 안 찾고 걸어가다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갈 작정으로 걷다 멕시코 식당인 듯한 곳으로 들어갔다. 주황색 조명과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바 테이블에 앉아 라자냐 하나와 치즈 피자 한조각 그리고 콜라를 주문했다. 옆자리에 경찰 제복 같은 옷을 입은 덩치 큰 중년의 백인 남성이 미국 영화에서 처럼 홀로 식사를 하고 있었고 맞은 편에 커플이 굉장히 하이톤의 목소리로 연신 깔깔거리며 식사 중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길래 저렇게 재미있을까하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으니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지만 미국에서 먹어 보는 라자냐의 식감이 색다르고 좋았다. 미국에서의 식사는 마지막까지 콜라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이지만 명랑하고 현지스런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삶과 여행은 이런 우연들이 수놓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뉴욕의 한 구석에 자리한 멕시코 식당에서 식당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꽤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식당을 나서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았서 무시하고 걷기로 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 맞는 비였다.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고 밖으로 나와 내리는 비까지 바라보니 마음의 심연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공연을 제외한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그 유명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나중에 빌딩의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마지막에 매달려 있었던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라고 했다. 사전에 알고 올라갔으면 뭐라도 했을뻔 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 도착해보니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새끼줄 꼬듯이 굽이굽이 줄을 서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어수선한 분위기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줄을 서서 한참 만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구불구불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다 도착했으려니 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전망대로 오르는 승강기를 타기 까지는 또 한참이 더 걸렸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간 중간에 눈치를 봐 가며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며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올라 갔을 때는 이미 도시 전체에 어둠이 내린 후였다. 여행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면서 멋진 풍경에 대한 감동도 점점 떨어져간 탓에 어지간한 풍경에는 크게 감흥이 일어나지 않게 되기도 했고 그런 무뎌짐이 나 스스로 애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 도시를 지나며 봐 왔던 도심의 야경. 유명하다던 여러 도시의 야경을 이미 몇 군데 본 터라 심지어 시카고의 그 높은 건물에서의 야경도 본 후라 그 다지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차분함으로 맞이한 덕분이었을까 뉴욕의 야경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가슴에 확 와 닿았다. 나라마다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듯이 뉴욕의 야경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상품이 될 만하다 생각했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상념들이 지나가며 그 화려한 어둠에 젖어 들었다.
야외 옥상으로 나가 4면을 꼼꼼히 돌아가며 뉴욕의 야경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사람들이 빈틈없이 난간에 기대 야경을 구경하고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의 높이와 화려한 야경의 아름다움과 군중의 북적거림에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고공의 바람이 스쳐갔다. 한동안 황홀함에 빠져 현기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갔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이대로 뉴욕의 상공에 머물고 싶었다.
한참 후, 본적 뽑았다 싶을 정도로 머문 후 전망대를 내려왔다. 빌딩을 오르는 길에 사진을 찍어 내려올 때 값을 지불하고 사진을 찾아 갈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사진을 찾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