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Oct 23.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출발전

 

‘양말 10켤레, 팬티는 최소 이틀 이상 빡세게 입는다 생각하고 10장 정도 가져가고, 반바지와 반팔티는 음... 4벌씩 정도 가져가자. 2002년도 라벨이 박힌 대학교 다닐 때 많이 입던 레인 자켓 하나 정도 가져가고, 예비로 신발도 하나 가져가면 옷 종류는 다 된 것 같네. 여권, 국제 면허증, 인쇄한 E-ticket들, 화장품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설레임이 공존하는 긍정적인 두려움으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체크해 보고 있었다. 나라의 부름에 응한 시간 훈련소 시절부터 꿈꿔왔던 세계일주 라고 하기엔 먼가 부족한 어떤 식으로든 지구 한바퀴를 돌아보자는 여정의 여행이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미국서부에서 동부를 띄엄띄엄 지나 모로코를 거쳐 동유럽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적당히 타협한 지구 한바퀴 일정. 그 여정을 계획하고 그 나름대로 과감한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이제 그 날이 1주일 앞으로 돌아와 배낭을 꾸리려 애썼다. 사실 나는 콘서트 장에서 뒷사람이 신경쓰여 흥에 겨워도 일어서서 놀지 못하고 혼자 밥을 먹어야 될 때는 괜히 만만한 누군가에게 전화하면서 밥을 먹거나 노상 핸드폰을 보면서 먹는 다소 남의 시선에 예민하고 외로움을 꽤나 타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막연히 생각해 오던 여행을 실행에 옮기려니 설레임보다는 여러 가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최대한 일행을 구해서 돌아다녀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행히 적당히 외로움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일행을 구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 나도 이제 혼자 잘 다닐 수 있잖아. 그리고 간간히 일행들이 있으니까 그리 외롭지는 않을 거야. 너무 걱정 안해도 돼.’


 


 스스로 위안 삼고 용기를 만들어 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전세 방을 2달 여행 기간 동안 단기 월세로 임대한다는 글을 콤플렉스가 떠오를 만한 이름의 어느 인터넷 카페에 올렸는데 그 글을 보고 연락이 온 것이다. 방을 놀리기도 아깝고 여행자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좋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인터넷에 방 내놓으신 글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네, 방을 한번 보고 싶은데 언제쯤 시간되시나요?’


 ‘전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시간 맞출 수 있어요.’


 ‘그럼 제가 퇴근하고 저녁 8시쯤 가봐도 될까요?’


 ‘오늘이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때 뵐께요.’


 ‘네, 감사합니다. 근처에서 연락드릴께요.’


 


 수화기 너머의 신사적인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다.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나는 두 달간의 기간이지만 되도록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 들어오길 바랬고 그의 바람에 다소 어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녁에 만난 그 남자는 예상대로 깔끔한 인상이었고 내 또래로 보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인터넷을 뒤져 미리 준비 해 둔 간이계약서에 서로 사인했다. 주소지가 역삼동인 걸 보고 이 사람이 월세나 관리비등 돈 문제로 골치 아프게 하진 않겠구나 라는 속 좁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의 얘기로는 시카고에서 이번에 입국하는 사촌 여동생이 서울에 일이 있어서 두 달 정도 이 방에 머무르게 될 것이고 나의 출국날짜에 맞춰 오전에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입주하겠다고 했다. 내가 주인도 아닌 전세로 들어와 있는 집을 단기 월세로 임대하는 것에 대해 다소 걱정과 부담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좋게 풀리는 것 같아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다음날 오전 홍대 앞에서 스튜디오를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일찍 결혼을 했을 뿐 아니라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서울에서 자신의 일을 경영하고 있었다. 난 그 점에 대해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물론 멋진 싱글 생활을 하는 내가 사는 재미로 보면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얼른 그 친구와 같은 삶을 살아주길 바라시겠지 라는 약간의 자책을 할 때도 있었다.


 


 “나 여행간다.”


 “어디로 가는데?”


 “음, 일단 미국으로 들어가서 모로코, 동유럽 들렀다 올라고”


 “뭐? 얼마나 가는데?”


 “두달정도”


 “아하하핫! 히야, 대단한데, 역시 솔로가 좋네. 부럽다. 하하핫”


 “그래 이럴땐 정말 솔로가 좋지. 나도 좀 지나면 영 못 갈 것 같아서 이번에 무리해서 간다. 다녀오면 죽은 듯이 돈벌어야지 이제. 크크큭”


 “그래 갈 수 있을 때 갔다와야지. 나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래 니는 진짜 그렇겠다. 크크큭”


 


 주변의 김치찌개 집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전과 같이 커피숍으로 가서 단 것을 좋아하는 그는 모카라떼, 쓴 것을 잘 못먹는 나는 카페라떼를 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몸 조심하고 잘 다녀와라.”


 “그래, 니도 건강하고 살아 돌아오면 또 보자.”


 “들어올 때 연락해, 마중 나갈게”


 “뭐 어디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닌데 오바하네. 아무튼 가라.”


 “어, 들어가라”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마지막으로 집 안의 귀중품들을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안으로 옮기며 마지막 채비를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