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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Oct 31.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다.

 미국에서 나를 처음 맞이한 건 화면에서나 보던 레게머리의 흑인 여성이었다. 눈에 들어온 너무나도 미국스러운 광경에 감격했고, 귀에 들어온 물 흐르는 듯한 영어 발음에 당황 했지만 지금 이 대목에서 할 얘기는 뻔하다 싶어 중학교 때부터 우선적으로 외워왔던 영단어와 교과서 위주로 열심히 공부해 온 입시 중심의 영어회화를 떠올리며 수없이 듣고 심지어 외웠던 질문에 배운대로 성실히 답변을 했다. 그리고 정확히는 알아 들을 수 없지만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어느 정도 인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E-ticket 뭉치를 들고 있었다.) 등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양손가락의 지문을 스캔한 후 마침내 입국심사장을 통과했다. 

 “웰컴 투 유에스에이!”

 “땡큐!” 너무나도 미국적인 여성분이 환영의 인사를 해주니 진짜 환영받는 기분이 들어 뭉클하기까지 하여 나도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지하철을 찾아 가는 것도 길을 헤메지 않으려 신경을 바짝 써서 알려주는 대로 집중해서 찾아갔다. 지하철 개표기 앞에 도착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뭐지 이건,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어느 아주 추운 날 떨리는 마음으로 쳤던 수능 시험 이후로 영어라고는 양주 이름 댈때나 써온 탓에(심지어 양주도 잘 먹지 않지만...) 우선적으로 외웠던 그 영단어들도 머릿속에서 감감해 진지 오래였다. 그런 나에게 지하철 개표기가 내미는 단어들은 아주 고급 영단어 축에 들었다. 역시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며 학문을 게을리 한 자신을 한탄하며 기계와 한동안 싸운 끝에 오랜만에 뭔가 깨달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개표에 성공했다.

 하지만 나중에 일행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한국에서 그렇게 알뜰히 살던 내가 쓸떼없이 비싼 값에 개표하여 미국 경제에 뜻하지 않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속이 쓰렸다. 역시 아는 게 힘이요 모르는 게 약이다.(...............머지? 옛말은 틀린 게 없는 건가 커버할 수 없는 상황이 없는 건가...)


 아무튼 일단은 굉장히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목적지인 Powell역에 도착해서 한숨 돌렸다 했다. 그것도 잠시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출구를 둘러보다 와 이건 진짜 모르겠다 싶어서 Information desk를 보고 용기를 내어 이번엔 갈색머리의 키가 큰 백인 여성에게 내 숙소 예약 바우처의 지도를 참고로 보여주며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해요?’라고 또박또박 물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어본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미안해 하며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겠고 어렴풋한 방향을 가르쳐 주며 그 근처로 가서 다시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라고 나는 들었다.) 더 많은 얘기를 해줘도 사실 잘 알아 듣지도 못하겠어서 일단 고맙다는 말을 뒤로 이 Information desk의 Information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그녀가 말해준 방향의 출구를 통해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왔다. 출구를 빠져나와 마주한 낯설고 이국적인 건물들과 세계 인종들이 섞여 보여주는 다채로운 풍경, 익숙한 듯 안 익숙한 듯한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도로 위의 이색적인 분위기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주는 신선함을 느꼈다.     

 ‘이야~~ 여기가 바로 샌프란시스코구나. 멋지다. 이런 세계의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니 너무 신기하다.’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들과 나처럼 배낭을 맨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든 풍경은 활기차고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어깨에 매달려 있는 무거운 배낭도 잊은 채 ‘지금은 이렇게 정처 없이 헤매어도 마냥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지만 낭만에만 젖어 있다보면 힘들어 질 것 같아 금방 정신차리고 구글맵을 보며 이리저리 돌아 예약해둔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의 큼직한 로비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호스텔 직원의 안내를 받고 수동으로 문을 여닫는 엘리베이터를 난생 처음으로 타보며 방으로 올라갔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용기를 내서 일단은 무작정 길을 나섰다. 오후 2시경이었고 아침 식사로 기내식을 먹은 이후 아직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만나기로 한 일행들은 저녁 즈음에야 모이기로 해서 점심은 혼자 떼워야 했다. 무겁지만 일단은 카메라를 둘러 매고 호스텔을 나서 간판이 많아 보이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두 블록 쯤을 지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바로 옆에서 한국말이 들려 슬쩍 대화를 들어보니 3인의 여성이 점심 식사를 하러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길인 듯 했다. 혼자 대만에 여행을 갔을 때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그랬다. 여행지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는 두세명으로 이루어진 여성 여행객들을 쫓아 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나는 머나먼 나라 미국에서 혼자 밥 먹을 용기가 않나 말을 걸고 동행을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솟았지만 괜히 그랬다가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시작은 혼자의 힘으로 해야 앞으로의 여행에서 자립심이라도 생길 것 같았다.     

 대신 그들이 가는 식당만 따라 가야겠다는 생각에 살짝 뒤따라 갔다. 그들이 찾아 들어간 곳은 홀이 꽤나 크고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를 파는 초콜렛 색감이 잘 어우러진 멋진 레스토랑 이었다. 일단 앞사람들이 어떻게 주문하는지 내 작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 평가할 때 만큼이나 유심히 들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영단어들을 떠올리려 노력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결국 내가 계산대에 도착해서 주문한 음식은 계산대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입간판의 이벤트 메뉴였다. 손가락으로 그 메뉴판을 가리키며 “이거 주세요.”라고 말했다.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도 잘 모르는 샌드위치 하나와 콜라가 셋트로 다소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메뉴. 나의 미국에서 첫 식사였다. 메뉴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으니 스스로 대견해지는 것 같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리며 식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먹는 샌드위치와 콜라의 맛을 통해 알 수 없는 생동감까지 느끼며 감격하고 있었다.


 ‘음, 양파가 많이 들어갔네. 하지만 왠지 맛있어. 외국에 나오니까 오히려 혼자 밥 먹는 게 더 편해.’      

 일부러 천천히 먹었다. 샌드위치와 콜라를 모두 다 해치우고 식당을 나섰다. 배불렀다. 그 사이 저녁에 모이기로 한 일행 중 한명이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다하여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다.     

 배도 채웠으니 그때까지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외국인들로 둘러 싸여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언어 속에서 낯선 건물들과 자동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색다른 일이었다. 여러 인종들의 모임, 다양한 스타일을 한 사람들의 집합, 각색의 문화를 가진 여행객들의 어우러짐. ‘재미지다 재미져.’ 하며 돌아다녔다. 거기다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생소한 느낌을 주는 쭉 뻗으며 경사진 도로. 건물들로 싸인 공원. 오랫동안 머물러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곳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와 닿았다. 들뜬 마음으로 골목 이리저리 그러면서도 숙소로의 길은 잃어버리지 않게 신경 쓰며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며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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