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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Oct 24.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출국

 약속한대로 입주하기로 한 여학생과 부모님들이 방으로 왔고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꾸려 놨던 배낭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어깨에 맨 배낭의 무게만큼 말할 수 없는 비장한 마음과 각오가 생겨났다. 공항에 도착 후 미국에서 사용할 유심칩을 사고 체크인을 하고 출국심사대를 통과했다. 면세점에 들러 자외선차단제를 사고 들뜬 목소리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따르릉~~따르르릉~~~~


 “아들~출발하나?”


 “예, 아부지. 잘 다녀올게요. 아부지 덕에 제가 이런 여행도 가보네요.”


 “혼자 그런 결심을 한 아들이 자랑스럽다.”


 “아니예요, 아부지. 그냥 놀러가는 건데요 뭘.”


 “아무나 그런 각오를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대견하다. 가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멋진 경험 많이 하고 오너라. 항상 몸 조심하고 돈 아끼지 말고 잘 챙겨먹고.”


 “예 아부지. 조심해서 잘 다녀 올께요. 간간히 연락 드릴께요.”


 “그래, 인터넷 되는 곳에서는 연락하고.”


 “예, 아부지도 몸 조심하시고 계세요.”


 “그래 잘 다녀와라!”


 “예 아부지 사랑해요~~크큭”


 


 새삼스러운 마음에 낯간지러운 말까지 나왔다.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출국게이트를 찾아 갔다. 늘 저가 항공만 타다가 나름 괜찮은 항공사를 통해 미국이란 나라를 간다니 괜시리 자신이 멋져 보이는 것 같아 뿌듯해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2016년 8월 3일 오후 4시 반 


 비행기는 인천을 서서히 떠올라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항로에 들어섰다. 과거 몇 번의 해외 여행 경험이 있어 이륙 할때의 압박감도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들도 어느정도 익숙해졌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기분과 감상은 새삼스러웠다.


 


 ‘이제 다 잊고 일단 여행하는데 집중하자. 그런 일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돈도 좀 받았으니까 밑질 것도 없어. 오히려 잘됐지머 전부터 계획했다가 못할 뻔 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이래저래 다 잘 된거야.’


 


 다소 억지스런 자기 위안적인 생각이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도 듬성듬성 떠올랐다. 비행기의 우측 창가 쪽에 앉아 오후 비행의 나른함을 느끼며 애써 떠오르는 생각들을 위로하고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서울로 거처를 옮기며 지방 출신의 누구나가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한 두 군데 출사를 나가듯이 나도 뭔가 멋진 취미를 가져 보겠다고 마련한 DSLR 카메라를 담요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미국이라니...알 수 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드넓은 세계로 떠나는 자리에서 흥분과 설레임으로 남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는 터였다. 옆자리에 앉은 미국사람으로 보이는 슬림한 청년과 그 옆의 편안한 트레이닝 복을 입은 아저씨.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걸까. 이 미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슨 일로 한국에 왔을까. 미국이란 곳으로 가면 난 어떻게 될까. 무언가 인생의 임팩트로 휘감길 수 있을까. 3년 전 육군 훈련소에서 행군을 하며 생각했던 세계일주. 그 계획과 포부의 첫걸음을 딛는 순간이었다. 술을 잘 못하지만 야심차게 승무원에게 카스 한 캔을 부탁하고 혼자 감상에 젖어 들었다.


 맥주 한 캔에 속이 더부룩해지고 화장실을 수차례 다녀오고 머리가 띵해지고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자다깨다 반복하고 두 번의 기내식을 먹은 후 알아듣지도 못하는 자막없는 영화를 스트레스와 함께 보고 나니 착륙 시간이 다가옴을 알렸다.  


 


 -후아, 진짜 도착하는 구나.


 


 차라리 그냥 이대로 쭉 먹고 자고 했으면 좋겠다는 게으른 생각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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