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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Nov 07.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동행을 만나다.

 화려한 색감들의 간판과 건물들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며 샌프란시스코의 구석에 사람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 한쪽에 기대 누워 꼼짝 않고 있는 서울역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한 사람과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 초점없이 허공에 눈길을 두고 휘적휘적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나 대도시가 가진 인간 삶의 스펙트럼은 넓구나 했다.      

 나름대로 용감하다 생각하며 긴장감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한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자니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일행 중 한명인 현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고... 딴 생각을 하다가 원래 내려야할 지하철역을 한참 지나 모든 곳이 낯설지만 분위기가 너무 무서운 동네까지 갔다 갔었다고 한다. 마침 나도 숙소 근처에 있었고(사실 혼자 멀리까지 갈 용기가 없어 숙소를 중심으로 인공위성처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숙소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이국만리 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은 아담한 체구의 여자 아이었지만 미국에서 만나서 그런지 강단이 있어 보였다. 오랜만에 동포를 만난 반가움에 진정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로 하고 숙소를 나와 내리막길로 걸었다. 미국에 왔으니 무언가 미국식의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걸어가던 곳에는 부담스러워 보일 정도로 고급 미국식의 식당이거나 아니면 흔히 볼 수 있는 프렌차이즈 식당들이었다. 프렌차이즈는 싫었고 고급 식당은 어려웠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이게 웬일인가 싶게 익숙한(?) 인도 식당으로 마음 편하게(?) 들어갔고 한국에서 많이 먹어보던 종류의 메뉴를 시켰다.     

 현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캐나다에서 반년 정도 머무르다가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미국여행을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머나먼 곳에서 처음 만난 동행에다가 동갑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많이 편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라씨까지 싹 먹어치운 우리는 처음으로 음식값의 일정부분 이상을 팁으로 줘야하는 문화를 경험하고(점심식사를 했던 곳은 주문과 동시에 계산을 하고 팁은 따로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밤 풍경을 즐기러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나는 오후에 혼자 돌아다녔던 광장들과 거리를 또 다시 부지런히 이번엔 누군가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조명 켜진 도시의 밤거리는 햇빛아래와는 확실히 다른 운치와 멋이 있고 역시 혼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있는게 마음은 좀 편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꽤 흘렀고 밤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던 나였지만 시차적응이라는 핑계와 타지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일치감치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고 호스텔에서 5명의 일행 중 또 다른 한명과 만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 위층의 식당에서 만난 일행은 지혜라는 24살의 여성으로 이틀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이미 여러 군데 여행을 마친 상태였다.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이런 저런 얘기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한사람이 문 걸어 잠그고 사용하기에는 좀 심하게 공간 낭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넓은 공동 샤워실 겸 화장실에서 씻고 난 후 6인실 2층 침대의 2층에 누워 타지에서 맞이하는 첫날밤의 어색함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잠이 들었다.

     

<둘째날>     


 다음날 아침.

 호스텔에서 아침을 같이 먹기로 약속한 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부답이었다. 피곤해서 늦잠을 자나보다 하고 벌써 익숙해진 수동으로 문을 여닫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스텔 식당으로 올라 갔다. 위층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호스텔 식당의 아침 풍경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역시나 세계 속의 미국답게 정확히는 모르지만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피부색과 머리 모양이 문자 그대로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호스텔 식당의 아침 풍경은 생동감과 활기가 넘실댔다. 잠깐 그 인상깊은 풍경을 감상한 나는 그 풍경으로 걸어 들어갔다. 뷔페에 갔을 때처럼 한 손에 접시를 받쳐 든 나는 큰 도너츠 같이 생긴 빵과 약간의 과일, 마실 것 등을 담아(원래 나는 아침을 빡세게 먹는 편이었는데 그냥 먹기 심플해 보이는 것들을 골랐다.) 절박한 눈빛으로 자리를 기웃거리던 중 어제 밤에 잠깐 만난 일행인 지혜가 누군가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걸 보고 반가운 마음에 지혜 옆자리로 수줍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지혜는 먼저 아는 체를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같이 먹어도 되죠?”

 “그럼요. 앉으세요.”     


 지혜는 같은 방 사람들과 같이 아침 식사 중이었는데 자기를 제외한 2명의 한국사람, 아르헨티나 사람이 같은 방에 있다고 했다. 정말 외국사람들은 국적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와 아르헨티나요? 남미에 있는 그 아르헨티나?”

 “네, 그 아르헨티나요.”


 살면서 이름도 몇 번 말해 본 적 없는 나라에서 왔다는 여성을 내가 느껴질 정도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며 재차 물어보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밝은 갈색의 곱슬한 긴 머리를 한 여성이 웃으면서 나에게 대답했다.


 “와 너무 신기하다!” 이런 걸 이렇게 신기해하면 실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신기해했다.


 “한국 분이 세요?” 지혜 맞은 편에 앉은 지혜와 같은 방 사람 중 안경을 쓴 깔끔한 인상의 한국 여성이 나에게 물었다.

 “네.”

 “오늘 어디 가실 꺼예요?”

 “근처에 유명한 빵집이 있다고 해서 거기 가보고 피셔맨즈워프 쪽으로 가보려고요. 러시안 힐인가 거기도 가보고 싶고요.”

 “아 저도 그 빵집 얘기 들은 적 있는데 거기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전 오늘 전시관에 갈 예정이거든요.”

 “네, 좋죠. 위치는 제가 알아 뒀어요.”


 아르헨티나 여성도 피셔맨즈워프로 간다기에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 동행하기로 한 현이와 상의 한마디 없이 하루 일정을 계획하고 심지어 또 다른 동행까지 구했다.     


 식사가 끝날 때 쯤 현이에게서 늦잠을 잤다며(역시...) 서둘러 식당으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새로운 동행들과는 오전 11시에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현이를 만나 니가 자는 동안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나의 계획을 들은 현이는 샌프란시스코는 골든 브릿지가 메인이라며 오늘은 거기를 가는 게 더 낫겠다고 했다. 난 순간 난처해졌지만 외국인과의 약속보다는 동포와의 동행이 중요하다라고 마음 먹었다. 현이와도 11시에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외출 준비를 하러 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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