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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Nov 28.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요세미티 국립 공원을 걷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운전대를 잡지 않은 탓에 난 요세미티로 가는 내내 풍경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내 시야를 꽉 채우며 펼쳐진 광경은 내가 생각했던 미국의 감흥을 불어들이기 충분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을 지나고 언덕이 넘어 보이는 광활한 평야하며, 운전대만 고정 시킬 수 있다면 한숨 자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소실점이 보이는 올곧으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 뻗어있는 도로. 간간히 보이는 레고를 세워 놓은 것 같은 집들. 광활하면서 목가적인 풍경이 차창 밖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달려 보았던 길과는 확연히 다른 감성을 일으켰다. 땅덩어리가 넓다는 말이 몸에 와 닿았다. 


 한참을 달려가 점심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나라처럼 도로 중간에 휴게소라는 편리한 게 없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주유소에 멈추거나 근처 동네로 빠져나가야했다. 우린 근처 마을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가 어디쯤에 있는 지도 모르는 지점에서 미끄러지듯 도로를 빠져 나와 들어간 마을은 미국 영화에서 보던 차고가 달린 낮은 층의 집들이 줄지어 선 모습이 귀여운, 동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닐 것 같은 한적한 마을이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아닌 진정한 미국의 동네에 들어 온 기분과 실제로는 처음 보는 집들에 탄성을 자아내며 좋아하던 우리는 와인색 간판이 인상적인 멕시코(?...가까이에 있었고 말 그대로 간판이 인상적이라 들어가고 싶었다) 식당으로 들어갔다.     


 반삭 머리를 한 작은 키에 팔뚝에 새긴 멋진 문신이 또 인상적인 핸섬한 백인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 해주었다. 역시나 멕시코 식당답게 테이블보 하며 인테리어 분위기가 이국적이었다. 메뉴판을 받았지만 대부분 모르는 것들이었다. 새로운 곳을 여행 중이지만 익숙한 이름의 메뉴들을 종업원과 상의하여 이것저것 주문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사진을 찍을 시간에 내 눈으로 더 보고 내 마음과 기억에 더 남기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카메라를 꺼내는 귀찮음에 대한 핑계로 삼았었고 사진에 열심히 인 사람들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아는 형이 해준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는 생각보다 낮으며 사진을 찍어 두지 않으며 그 기억은 이내 흐릿해지고 말꺼라는 얘기에 크게 공감했고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그 기억이 흐려지면 나중에 너무 안타까울꺼라는 생각에 나답지 않게 이번 여행에서는 열심히 사진을 찍던 중이었다. 이곳에서도 이렇게 사진 찍기에 좋은 포인트를 놓칠새라 돌아가며 너도나도 창가에 앉아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자니 이내 음식이 나왔다. 아침 식사도 걸렀던 터라 배가 많이 고팠던 나는 음식이 나옴과 동시에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열심히 먹었다. 우리 일행이 함께 한 첫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출발했다. 식후 땡처럼 들어가던 커피숍은 없었다. 또다시 운전도 필요 없이 핸들과 액셀에 손발만 올려놓고 있어도 될 것 같은, 드넓은 벌판을 꿰뚫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를 한참을 더 달렸고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요세미티 가까이 와 있었다. 도로에서 마주한 거대한 바위와 폭포. 처음으로 만나는 미국의 장엄한 자연이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내려 가슴으로 마주했다. ‘와 지구상에 이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런 데를 와 보다니...’ 혼자 감격하고 우리는 또 눈이 휘둥그레져 함께 감탄해 했다. 자연속에 흠뻑 젖은 채로 차를 다시 올라 탄 우리는 요세미티 입구를 지나 일단 오늘 밤을 묵을 숙소로 바로 이동했다.     


 숙소 관리자의 돌 굴러가는 듯한 영어 발음 덕에 당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 듣기 힘들었지만 어찌됐건 내 손에 들려진 열쇠에 적힌 방 번호를 보고 찾아 들어갔다. 사람이 사는 데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닌가 보다. 마치 캠핑장 같은 산 기슭에 이리저리 산재해서 자리한 방의 모습이 이 곳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남자들과 여자들 방을 따로 나누어 준 것 같았다. 나와 연호는 같은 방으로 들어가 지정해준 침대에 대충 짐을 풀고 다시 모이기로 한 식당으로 갔다.     


 미국의 펍과 식당을 섞어 놓은 듯한 식당에서 그 새 또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를 했다. 좁은 차 안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던 터라 그 사이 많이 친해진 데다 맥주까지 몸에 흘러들어가자 마음까지 좀 풀리며 편하게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각양각색의 나라에서 만난 우리도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 갓 친해지며 더 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내일의 일정을 생각해서 자정이 되기 전에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뻑뻑한 눈을 힘들게 뜨는 와중에 보인 맞은 편 침대에 걸터 앉아 짐을 꾸리고 있는 여성을 보고 틔미한 정신에 깜짝 놀랐다. 중년의 부부가 우리와 같은 방에 묵었던 것 같았다. 성별로 방을 나누어 준 건 아니었나 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커튼도 없는 침대에서 이불을 살짝 끌어 앉은 채 태연한 척 슬며시 일어나 앉았다. 부부와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다. 출발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위층에서 자고 있는 연호를 깨워 부지런히 움직여 조식을 챙겨먹고 길을 나섰다.  

   

 우리는 화창한 날씨 속에 푸르른 어깨를 떡 벌리고 있는 요세미티의 속으로 발을 들였다. 길은 대부분 평지에 흙길이라 자박자박 걷기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지만 워낙 넓은 터라 붐비지는 않았다. 환한 햇살 아래 우리 주위를 꽉 채운 초록빛, 세계인들 사이에서 들이마시는 상쾌한 공기와 걸음마다 발밑에 느껴지는 이국땅의 감촉. 우리 다섯은 친한 친구들끼리 산책하듯이 사이좋게 걸었다. 간간히 바위에 걸터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지고 온 과일도 나누어 먹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우며 도시에서와는 상당히 다른 감성으로 이국땅을 즐겼다. 우리처럼 산책하듯이 돌아다니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원의 동맥처럼 흐르는 강에서 보트를 타는 외국인들, 일주일째 공원 내에서 캠핑 중이라는 아주아주 큰 배낭을 맨 스웨덴 가족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곳의 자연을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우리나름의 부지런을 떨며 여러 번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가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푸르른 아름다움과 가슴이 트이는 드넓은 평야도 익숙해져 갈 오후 무렵. 이제 다들 어지간하다 싶어졌다. 점심 먹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후 4시까지 부지런히 다닌 우리는 마지막으로 기념품들을 몇가지 산 뒤 요세미티에 여한은 없다며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로 했다. 올 때 운전을 도맡아 했던 연호가 또 수고를 해주기로 했다. 어쩌다 체력에 대한 얘기가 나와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차에서 자는 일 없기로 서로 도발하며 차에서 자는 사람은 벌금을 내기로 하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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