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Dec 12.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새로운 동행을 만나다.

 두 시간 반가량의 비행 끝에 도착한 로스엔젤레스. 너무나도 낯익은 이름 LA. 하지만 내가 그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공항을 빠져나와서 까지도 한동안 현실감이 와 닿지 않았다. 게다가 그 유명한 Hollywood가 있다는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와 살아 생전에 할리우드가 있는 곳에 와보게 될 줄이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에 어버버하고 있는데 지혜가 친척분이 공항으로 데리러 나오시기로 했다며 자기는 이만 가보겠다고 했다. 그래 한국까지 조심히 가. 그렇게 지혜는 다시 자기 몸뚱이 보다 큰 가방을 끌고 홀연히 떠났고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아 갔다.     

 

 Hollywood방향으로 가는 빵빵한 덩치의 버스를 타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창 밖의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길을 놓칠세라 바짝 긴장하며 내릴 곳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여기가 숙소와 가장 가까운 정류장인가 보다 하며 내리는데....이상하게 버스요금을 걷지 않았다. 블로그에서는 분명 버스에서 내릴 때 요금을 지불한다고 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버스요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 하면서도 내가 먼저 물어보지는 않으면서 영문은 모르지만 개이득이다 생각하며 눈치를 보며 슬쩍 내리긴 했는데...나를 떨궈주고 무심히 자기 갈길 가는 버스 뒤에 대고 어쩔 수 없다며 ‘땡큐 쏘~ 머치’하고 손을 흔들어준 뒤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팁 많이 내지 머’ 라는 바람 같은 다짐을 하면서...     

 

 확실히 숙소가 바뀌면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몸에 와 닿는다. 숙소마다 공기도 다르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마당에 야외 벤치가 있는 호스텔이다. 벤치에는 듬성듬성 젊은이들이 앉아 각자 볼일들을 보고 있었다. 호스텔 특유의 활기를 가진 스텝이 나를 반겨줬다. 비슷한 내용의 안내를 듣고 방 키를 받아 역시나 2층으로 요청한 내 침대에 짐을 던져 두고 밖으로 나갔다.     


  호스텔을 나와 골목을 돌아 길을 나서자마자 커다란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내 눈에 확 들어오며 ‘아 여기가 또 미국이구나!’ 라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강변가의 벽이나 건물 벽에 그려진 그림 같은 걸 본 적 있지만 미국에서 본 집채만한 벽면에 그려진 독특한 화풍의 그래피티는 인상적으로 이색적이었다. 현지의 그래피티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니 마치 박물관에서 명화를 마주 한 감동과 비슷했다.     

 

큰길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LA는 위험하다더라. 특히 한인 타운은 조심해야 된다.’ 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약간 긴장되었지만(한국 사람이 왜 한인 타운을 조심해야하는지 이해가 안 갔었지만) 오랜만에 갖는 혼자만의 동네 구경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기려고 애썼다. 도로 위에는 멋진 클래식한 차들을 비롯해 희한하게 생긴 개조차량들도 오갔고 길가에는 타투샵, 조각피자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보였다.     


 한참을 길을 따라 걸었고 이질감과 경계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어리숙하게 여기 저기 둘러보았다. 슬슬 배가 고파져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해결할 생각이었지만 여럿이 있다가 다시 혼자가 되니 어디하나 만만해 보이는 데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와는 달리 여행객들보단 현지인들이 많아 보였고 거리의 분위기도 뭔가 찐한 느낌이었던 데다 덩치 큰 흑인들과 백인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스웩 넘치는 점원들을 상대로 주문을 하려니 쫄려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마음을 굳게 먹으며 피자집, 또 다시 보이는 인도 식당, 샌드위치 집 등을 지나쳤지만 여기가 나의 한계인가 하며 결국 작은 편의점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달러를 원화로 열심히 계산해 가며 고른 것은 결국 냉장고에 있는 포장 샌드위치 하나와 우유하나. ‘아아...이 나약한 인간아...’ 용기 없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웠지만 아직은 이게 최선이다 싶었다. 계산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1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핸드폰을 벗 삼아 정말 떼우다 시피 저녁 식사를 해치웠다.     


 대충 허기를 달래고 보니 어느 덧 LA여정을 동행할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 왔다. 하릴없이 이리저리 인터넷 가십거리로 시간을 보내다 식당에서 일행들과 만났다. 뉴욕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행 중이라는 느긋해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학생 은주와 대학 졸업반이라는 부리부리한 눈의 열정 있어 보이는 20대 초반의 경훈이. 너무나도 부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틀간 동행하기로 했고 열정의 남학생인 경훈이가 자기가 일정을 짜왔다고 하며 자신의 계획을 추진력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론적으로 내일은 UCLA, 산타 모니카 해변, 게리 전시관, 천문대를 다녀 오기로 했다. 여행 일정 중 가장 꽉 채운 일정이었다. 경훈이는 며칠 없는 시간에 무리해서 미국까지 넘어온 까닭에 나 보다 더 시간에 쫓기는 터라 여정을 빡빡하게 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너무 빡센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아무 계획 없이 온 마당에 저렇게 자세히 일정을 짜온 게 고맙기도 하고 한가하게 있으면 또 뭐 하겠어 라는 생각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고 은주도 동의했다. 다만 아침 출발 시각을 두고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었는데 나와 은주는 아침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며 천천히 출발하자는 쪽이었고 경훈이는 역시나 일찍 출발해야 하루 안에 다 돌아볼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소수의견에 대한 횡포라고도 할 수 있는 다수결에다가 약간의 합의를 거쳐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내일 아침에 약속된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려는데 경훈이가 방금 한국에서 이곳으로 왔는데 피곤하지도 않은지 근처 펍에 가서 맥주 한 잔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고 은주는 먼저 쉬러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하고 우리 둘은 아까 내가 혼자 걸었던 큰 길로 나와 낮에도 눈에 띄었던 하와이안 스타일의 펍으로 들어갔다.     


 주말이라 더 그런지 인파로 꽉꽉 들어찼고 큰 음악소리에다 그 소리를 뚫으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싫지는 않다는 정도의 나와는 대조적으로 경훈이는 그 커다란 눈이 호기심 왕성한 눈빛으로 주위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 스스로는 나도 남 못지 않은 흥부자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에 비할 바는 아니구나 하고 신세계를 본 듯한 그의 눈빛을 나는 신기해했다. 인파들을 뚫고 들어가 한쪽에 자리를 잡은 리는 맥주 한 잔씩과 어니언링을 주문했다. 서로 간단한 신상얘기와 여행 얘기 외에는 둘이서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주변 소음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거니와 주변 사람들 구경으로 충분히 재밌었던 이유도 있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나 노는 모습이나 그리 다르지는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사람 저사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는지 둘러보며 맥주를 홀짝홀짝 어니언링을 주섬주섬 먹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는 경훈이는 내 생각에도 조금 무리이다 싶은 빠듯한 일정으로 미국여행을 왔더랬다. 나 같으면 미국으로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경훈이는 미국에 꼭 한 번은 오고 싶었다며 그게 이때다 싶었다며 그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하고 가려니 여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며 자는 시간도 아까워했다. 근래에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열의에 차고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에 돌아가려고 계산서를 요청했고 오늘 막 미국에 도착한 경훈이는 팁이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다며 펍이라 그런지 내가 다녔던 일반 가게보다 더 높이 책정된 팁 산정비율에 놀라워했다. 결과적으로 이 펍은 경훈이에게 호기심으로 시작하고 놀라움으로 끝나는 아주 인상적인 곳으로 기억될 듯 했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팁에 대한 얘기를 계속 했다. 나중에 그는 가장 충격적인 미국 문화로 팁 문화를 꼽지 않을까...

이전 06화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