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A에서 산타모니카까지
정말 나와 아무 상관없는 남의 학교에 들어가는 기분은 또 새롭다. 게다가 외국 대학을 굳이 가보다니 기분이 참 희한했다. 정문으로 들어가 대학 병원인 듯 보이는 건물을 지나고 조금 더 들어가니 가끔 헐리우드 청춘 영화 같은데서 보던 넓고 잔디가 예쁘게 깔린 철조망이 있는 운동장과 평평한 캠퍼스 길을 따라 늘어 선 대학 건물들이 보였다. 와 이런 대학 다니면서 공부하면 정말 신나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전부터 대학 캠퍼스에 대한 낭만과 정취를 좋아해서 졸업 후에도 가끔 재미삼아 일부러 나와 전혀 상관없는 대학 캠퍼스를 걸어 다니고 구경하기도 했었다. 그러고 있으면 왠지 젊어지는 기분도 들고 대학생들의 열정이 내 몸에 묻어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주말이라 학생들이 거의 없어 대학생들의 활기찬 분위기는 느낄 수는 없었지만 캠퍼스의 정취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실내체육관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여기 실내 농구장은 다 그렇겠지만 티비에서 보던 NBA농구장을 연상케 하는 코트 중앙 천정에 화면이 달려 있는 농구장이 있었고 마침 여학생들의 농구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평소 농구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보니 티비로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고 그래도 미국 대학에서 농구 게임을 봤다는 득템한 기분으로도 뿌듯했다.
농구장을 나와 다음날 같이 가기로 한 유니버셜 스튜디오 입장권을 할인 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LA방문의 큰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유니버셜 스튜디오 방문이고 UCLA방문 목적 중 하나가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인 입장권 구매이니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 봤지만 정작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정말 대단한 곳임에 틀림 없겠구나 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대학교에서 할인권을 판매한다는 것도 참 희한하다 생각하며 매표소를 찾아간 우리는 매표소가 닫혀 있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좀 놀랐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주말에는 매표 창구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굉장히 들떠 있던 경훈이가 특히 실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어찌해 볼 수 있는 건 없으니 입장권은 제 값 다 주고 사기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게티 센터로 가기로 했다.
뭐하는 덴지 나는 잘 모르는 게티 센터에 가기 위해 이리저리 교통편을 모색하던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태양과 오늘의 긴 일정을 위한 컨디션을 고려해서 편안하게 Uber택시를 타기로 했다. 미국에서 처음 이용해 본 이 교통편은 나에겐 첩보영화와 같은 다이나믹함을 선사해 주엇다. 핸드폰 게임을 보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택시들이 보이는 화면하며 택시가 도착하는 시간과 운전자의 정보까지 제공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까지 좋아졌구나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가장 합리적인 택시를 골라 연락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격 급한 한국인 3명이 게다가 특별히 열정 넘치는 대학생 한 명이 오매불망 발을 동동 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택시 운전사와의 소통 오류로 인해 만나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경훈이 속이 말도 못하게 타들어 갔을꺼다.
아무튼 우리는 게티 센터에 도착했다. 석유 재벌인 게티라는 사람이 생전에 수집해서 만들어 놓은 개인 소장 미술품 전시장이라고 했다. 정말 세상에는 나의 사이즈로는 차마 가늠할 생각도 못할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다. 입장할 때부터 석유 재벌의 규모를 몸으로 느꼈다. 이게 내가 가끔 가봤던 화랑 수준의 규모가 아니라 개인의 전시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개인의 공간인데 케이블카를 타고 들어간다는 데에 턱이 빠질 뻔...정말 대궐 같은 집에 살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상상을 벗어난 규모에 놀라며 케이블카에서 내려 보니 높은 위치에 자리해서 탁 트인 주위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영화에서 보던 멋지게 꾸며진 정원도 아름다워 사진 찍기에 너무 좋아 보였다. 혼자서 이걸 다 수집했단 말이야? 몇 층이나 되는 전시관에다 실내 규모도 엄청났다. 석유의 힘은 실로 거대하구나!
아는 건 없지만 그래도 왔으니 어릴 때 학교에서 박물관 견학 가던 때를 떠올리며 공부한다 생각하고 부지런히 전시관을 둘러 보다 의문이 생겼다. 당연히 미국 미술의 멋을 함뿍 느끼겠거니 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작품들이 죄다 유럽의 미술품들이었다. 유럽의 미술품을 좋아하는 건 이 사람의 개인 취향이니 내가 머라 할 껀 아니지만 왜 미국에 와서 유럽의 미술품을 감상하러 여기까지 오는 건지 솔직히 나는 좀 의문이 들었다. 계획 하나 없이 일행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내가 이러쿵 저러쿵 불평 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굳이 ‘왜’ ‘무엇 때문에’ 여기를 온 건지, 그냥 이 모든 것이 게티라는 성공한 거부의 취향과 재력 자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나 같은 시니컬한 무지렁이에겐 그리 흥미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경훈이와 은주도 막상 유명하대서 왔지만 그리 큰 흥미를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이 더운 날, 잠시 실내에서 쉬어간다 생각하고 쉬엄쉬엄 돌아보고 마실 것도 한 잔 마시고 다시 나와 이번에는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향했다.
미국의 해변이라... 어릴 적 토요일 오후에 TV에서 틀어 준 해상구조대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던 미국의 멋진 해변을 목도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편안함에 맛 들린 우리는 역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해변가로 들어가는 길에 늘어선 가게들과 커피숍등의 배열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해운대 앞에 밀집 한 사람들처럼 해변 앞의 도로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 해변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눈부신 바다가 눈에 들어 온 순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지구 표면상의 60퍼센트 이상이 바다라는데 저마다의 멋과 매력을 가진 건 참 신기했다. 파란 바다와의 경계면에 노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은 득실거리고 그 안에서 자유로움이 넘실대고 있었다. 구조대원들의 초소와 그 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썬그라스를 낀 대원들이 티비에서 보던 그 어릴 적의 정취를 되살려주었다. 게다가 ‘이 바닷물에는 박테리아가 많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판. 와 이런 내용의 경고판은 처음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파라솔 하나 없이 해변에 눕고 엎드려 태양을 온 몸으로 마주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까르르 거리며 바다 속에서 온 몸을 휘저으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흥분한 슬리퍼를 신고 온 은주도 바닷물에 발을 담구는 걸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듯 했다.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바다안쪽으로 쭉 들어가 볼 수 있게 지어진 다리를 따라 걸어 들어가 보았다. 바다 안쪽 깊은 곳의 바다 위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었다. ‘너무 멋지다~!’ 넋이 나갈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다. 뜨거운 공기, 불어오는 바람, 눈에 들어오는 황금빛의 백사장과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 살아있다는 느낌이 벅차올랐다. 떠나오길 너무 잘했고 따라오길 너무 잘했다 싶었다. 잠시 그렇게 감동에 차 있었다.
하지만 넋 놓고 감흥에 젖어 있기엔 양산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해와 바람이 싸우면 진짜 해가 이기겠구나 싶게 작렬하는 태양에 우리는 금방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의 놀이 기구들이 있는 곳도 돌아다녀보고 기념품 샵도 돌아다니며 한참을 어슬렁 거렸다. 서핑보드 모양으로 만든 마그넷이 너무 이뻐 사려다 얄짤 없는 가격에 입맛만 다시고 돌아섰다.
이왕 온 거 시간을 좀 내서 해변에서 느긋하게 쉬며 해수욕도 하고 맥주도 한 병 마시며 선탠도 하며 낮잠도 한숨자고 하면 진정으로 산타모니카를 만끽하기도 하고 멋있었겠지만 원래 까만 나는 썬크림에 진심인 편이라 선탠은 질색인데다 파라솔 하나 없이 땡볕에 있기도 힘들고 우린 또 시간 없는 여행자니까 어서 이동하자며 해변을 뒤로 하고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