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Jan 09.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미국의 멕시코, 샌디에고

 정말이지 돌아다니는 여행지 만큼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여행이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승용차 하나를 빌려 출발했다. 조수석에 앉은 터라 어렵게 뒤로 돌아보며 간단히 인사를 했다. 여기 오는 그 시간에 많이들 친해졌는지 이미 쾌활한 분위기였고 어색함은 없는 들뜬 분위기가 차 안을 채웠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설레임과 들뜸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인사치례 같은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는 얘기와 샌디에고는 멕시코와의 거리가 얼마 안 된다며 가는 김에 멕시코 국경을 넘어 갔다 오자는 진담 같은 농담들과 함께 한참을 달린 후 어느 해변가의 도시에 다다랐다. 시간도 시간이니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는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없었지만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여행 중이라는 남학생과 미국에 온지 2주일 정도 지났다는 여자애 둘은 한식 애호가가 되어 있었다. 역시 또 다수의 의견을 따라 한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해변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주차장 끝 쪽에 주차 한 후 한식당을 검색해서 찾아 들어갔다. 해변가에 죽 늘어선 건물의 2층에 자리한 데가 주위의 캐쥬얼 한 분위기가 잘 어울려 식당에 들어서는 기분이 좋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고 찌개종류와 비빔밥 종류등 여러 종류의 한식 메뉴가 있었고 드문드문 외국인들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야외 석으로 앉았다. 나는 해물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줄곧 차를 타고 오느라 서로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본 적이 없던 우리는 그 때서야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여행 중이라는 대구에 사는 27살의 민호와 나와 동갑인 민주와 수정이라는 두 여자아이.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게 요즘 한국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두 여자아이와 나는 서로 나이를 밝히면서 놀랐는데 나의 이모뻘 정도라 생각했던 여자애들이 나와 동갑이라는 데서 좀 놀랐고 그 여자애들도 역시 내가 자기들 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는 데서 또 놀랐다. 서로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한 게 또 놀라웠다. 그렇게 서로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있자니 주문한 식사가 나왔는데 내가 주문한 해물순두부찌개가 아닌 된장찌개가 나왔다. 다시 가져다 준다는 걸 그냥 먹는다고 했다. 대신 팁은 안 주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한식을 먹는다며 감격까지 해가며 맛있다며 감탄하며 먹었다. 난 ‘역시 밖에서 먹는 현지식은 별로구나.’ 하며 대강 먹었다.

    

 동상이몽적인 식사를 마치고 우린 해변을 따라 난 보도블럭을 걸었다. 바다사자들이 백사장으로 나와 일광욕을 하는 장면이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길을 따라 펼쳐진 넓은 잔디밭에서 웃통을 벗은 백인 남성들의 원반 주고 받기, 럭비공 주고 받기등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이국적이고 평화로워 보였다. 정말 영화에서 배경으로 나오던 딱 그 장면이었다. 화면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한껏 느껴졌다. 민주와 수정이는 자기들 스타일에 맞게 사진을 좀 찍고 오겠다며 잠시 따로 다니기로 했고 민호와 나는 바다사자들이 누워있는 백사장쪽으로 갔다.     


 동물의 왕국 수준의 영상을 실제로 보는 것 같은 바다사자 여러 마리가 모여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평소 냄새에 민감해 하는 나는 심한 비린내라는 난관에 부딪혀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카메라 줌으로 사진만 몇 장 찍는 걸로 만족했다. 리얼한 자연 깊은 곳의 냄새가 났다. 가까이 가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하얀 백사장에서는 바다사자가 일광욕을 즐기고 파란 잔디 밭에서는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는 자연과 인간이 완벽히 섞여 생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평화라는 생소한 느낌이 가슴에 울림으로 전해졌다. 지나가던 길에 들른 예정에 없던 곳이었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돌아 보니 민주와 수정이는 파워 블로거인가 생각될 정도로 사진을 많이 찍었고 조금만 이쁘다 싶으면 어김없이 포즈를 취했다. 그들에게 좋은 여행지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일 것이다 생각했다. 출발 전 스타벅스를 ‘찾아’ 들어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도 역시나 예쁜 건물 앞이면 멈춰 서서 사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긴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출발했다.     


 샌디에고는 사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이고, 어떤 곳인지도 전혀 몰라, 아무런 기대도 없었는데 멕시코와 가까운 도시라 그런지 도착지점 부터 멕시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마치 테마 마을 같은 분위기와 남미 스타일의 건물들과 멕시코 스타일의 선인장에 우리 모두는 흥분했다. 여기서는 나도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색감하며 디자인하며 나무 한 그루에 선인장의 모습까지...온 동네가 세트장 같았다. 아주 천천히 동네를 스캔하며 가게 하나하나 샅샅이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다. 이런 동네가 있었다니 이렇게 귀여운 동네가 존재할 수 있다니... 정신없이 구경하고 하나라도 놓칠 새라 찍어댔다.    

 

 민주는 내 사진도 많이 찍어줬는데 서로 찍어주다가 아예 서로의 카메라를 바꿔 들고 찍어주기에 다다랐다. 변화무쌍한 배경과 풍경에 비해 표정과 포즈는 일색인 민주의 사진을 많이도 찍어 주었고 간간히 동영상 촬영까지 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착한 민주는 내가 찍어준 사진과 영상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며 앞으로의 일정도 같이 하자 했고 나는 우스개 소리로 넘겼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도 자주 본 적 없던 낯설고 이색적인 멕시칸 분위기가 주는 멋을 온 몸으로 흠뻑 느끼고 취한 후 근처의 공원으로 이동했다. 호수를 낀 드넓은 공원을 산책한 후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잔씩 마셨다.     


 다시 LA로 돌아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LA에서 San diego까지 왕복으로 운전을 해준 민호가 수고가 많았다. 마음 착한 민주와 수정이는 민호에게 저녁식사 대접이라도 해주자고 했고 나도 그러자고 했다. 우린 나름 유명한 스테이크 집을 검색해서 찾아가기로 했고 그 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건너 온 승연이를 태워 갔다. 타지에서의 첫 인연이라 그런지 승연이를 다시 만나니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이 느껴졌다. 승연이까지 총 5명이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가 찾아간 식당은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금빛 조명이 반짝이는 멋진 식당이었다. 금발의 여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우리는 메뉴를 받아들었고 5명이서 어떻게 시켜 먹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빼곡히 적힌 메뉴판을 들고서 고민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금발의 여종업원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이유로 주문을 도맡아한 승연이의 뜻밖의 영어 실력에 놀랐다. 머라머라 둘이 한참 대화를 나눈 뒤 샐러드 종류와 스테이크 종류를 시켰다.


 “오오, 승연이 영어 엄청 잘하네.” 놀랍다는 말투로 내가 승연이에게 얘기했다.

 “아니예요, 보통이예요.” 승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진짜 hello 밖에 모르는데...” 민주가 환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에이 말도 안돼. 그래 갖고 어떻게 미국에 오냐?”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아니야, 나 영어 진짜 못해. 나 아는 사람도 내가 미국에 왔다니까 어떻게 갔냐며 엄청 놀라더라고.”

 “그럼 출입국 심사 할 때 어떻게 했어요?” 민호가 물었다.

 “맞아, 이것저것 엄청 물어보잖아.”내가 덧붙였다.

 “응, 그냥 웃고만 있었어.” 순박한 얼굴을 한 민주의 대답에 우린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아 진짜 웃기다. 아하하하핫. 너 그 사람 한테 팁 줬어? 팁 줬어야지. 크하하핫” 내가 놀리듯이 말했다.

 “야!” 민주가 눈을 흘기며 얘기했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동갑내기 들이라 그런지 그 하루 동안에도 꽤 친해진데다 오랜만에 보는 승연이까지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했고 영어 실력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그 후로도 이런 저런 얘기와 각자의 재밌는 사연들도 들려주며 마치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모임처럼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순박하고 착한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느긋하고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온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국에 들어가면 한번 보자라는 정감 있고 자연스러운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역시 돌아가는 길도 숙소 앞까지 민호가 차로 데려다 주는 수고를 해주었다. 차에서 한 명씩 내릴 때마다 행운을 빌어주었다.   

  

 여행을 떠나올 때는 여유를 만끽하며 쉬엄쉬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시간적 금전적 보상심리에 의해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이 날 밤도 역시 스위치가 꺼지듯이 잠들었던 것 같다.

이전 10화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