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의 그 곳, 그리피스 천문대.
산타모니카 해변 앞, 거리를 꽉 채운 인파 속을 헤집고 나와 눈에 보이는 곳으로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도 식히고 오늘의 남은 일정을 위한 몸과 마음을 다시 준비했다. 버스를 기다렸다. 아이들의 추천으로 저녁 식사는 파머스 마켓이란 곳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경훈이와 은주는 아주 훌륭한 가이드였다.
아이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파머스 마켓은 아주 넓은 푸드 코트였다. 야외 푸드 코트. 약간 야시장 같기도 한... 수많은 소규모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가게에서 음식을 사와서 테이블이 모여 있는 곳에서 먹으면 된다. 메뉴의 종류가 많으니 종류가 많으면 고민이 또 많아진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스테이크. 원하는 양 만큼의 스테이크를 떼어주는 곳에서 스테이크를 떼다 먹기로 했다. 접시를 들고 배식대를 따라 줄줄이 움직이며 고기, 야채 등을 원하는 양을 얘기하면 내 손에든 접시에 올려 주는데 앞사람의 대답을 참고하여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입으로 튀어 나오는 대답으로 오늘 저녁 식사가 결정 되었다. 스테이크 접시를 준비하고 음료를 사러 갔다. 그래도 맥주를 곁들여 먹자 싶어 눈에 보인 아주 싼 가격의 bear라는 이름이 씌여있는 맥주처럼 보이는 음료를 한 병 주문했다.
각자 배식처럼 받아온 접시를 갖고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점심은 햄버거에 저녁은 스테이크. 진짜 미국에 있는 거 맞네. 스테이크도 아는 맛이다. 특별한 것이 있었어도 몰랐겠지만 일단 다 아는 평범한 맛이라 만족했다. bear라는 맥주라고 생각하고 사온 음료는 마치 맥주병에 박카스를 담아 마시는 것 같은 맛이었다. 평소에 내 입맛의 허들은 아주 평균이하라고 생각해 온데다 나를 지배하는 경제관념에 의하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스테이크에 박카스를 곁들여 먹는 그 맛은 정말이지 이겨내기 힘들어서 몇 모금도 겨우겨우 마시고 너무너무 아까웠지만 거의 한 병을 그대로 남기고 나왔다.
미국에서 스테이크를 먹어서 그런지 식사를 하고 나니 힘이 좀 생겼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LA의 경치가 보인다는 그리피스 천문대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파머스 마켓을 나와 다시 한번 Uber택시를 불러 천문대로 출발했다. 천문대는 역시 어느 언덕 위에 위치 해 있었고 사람들 모이는 곳은 늘 그렇듯이 차로 붐볐다. 가다가다 너무 지체되어 우린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흙길을 자박자박 20분가량 걸어서 천문대 앞에 도착할 때 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나중에 라라랜드라는 영화에서 여기가 나오는 걸 봤을 때 얼마나 반갑고 황홀하던지...정말 다녀오기를 너무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라라랜드가 내 인생영화가 되는 데는 이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언덕에 올라 저 멀리로 보이는 LA 중심가의 높은 빌딩 숲과 그 주위의 낮은 건물들의 대비가 만들어 내는 전경은 미래 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멀리 보이는 뿌연 도시의 모습에 예전 수업시간에 LA스모그에 대해 배웠던 게 생각났다. 뭔가 교과서에서 형광펜 쳐가며 외우고 시험 문제에서 보던 곳을 직접 본다 생각하니 지금까지의 여행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천문대 앞뜰에는 토성을 바라보는 망원경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도 한 번 들여다볼까 하다가 너무 긴 줄에 바로 포기했다.(토성은 예전에 우리나라 천문대에서 한 번 본적도 있으니까) 죽 늘어선 줄을 지나쳐 천문대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학생들이 많이 와야겠다 싶게 우주 과학 교육이 이루어 질 듯한 내용이 죽 배열되어 있었다. 우주과학이라니 그것도 영어로 풀이 된... 뭔 내용인지 모르고 천정에 그려진 그림을 올려다보며 일단은 기가 막히다 생각하고 뭔가 금빛의 흔들거리는 커다란 추 같은 것도 보았다. 버튼도 있으면 한 번씩 눌러보고 그래도 중학교 때는 내 꿈이 우주비행사였는데 하며 추억 생각도 하면서 실내를 구석구석 대충 둘러보고 2층에서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미 깜깜했다. 햇빛이 완전히 사라진 LA야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갔다. 음양 반전의 모습이 이토록 다를 수 있던가. 주변의 낮은 건물의 불빛들이 높이 솟은 빌딩 숲을 떠 받쳐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우주선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야경을 봤지만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나의 부족한 사진 촬영 기술에 안타까워하며 어렵지만 눈과 가슴에 담아 두고자 애썼다. 나와 일행은 야경의 아름다움과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애틋함에 한참을 그 곳에서 서성이고 두리번거리고 떠나기를 주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난 하늘보다는 도시에 더 감탄했다.
마음이야 밤새 여기서 밤하늘에 별을 헤고 싶지만 그 아쉬운 마음은 천문대 앞 뜰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이 깔끔하게 접어 넣어주었다. 이거 놓치면 다시 택시 불러서 가야한다 생각하니 쉽게 마음이 돌아섰다. 천문대 앞에서 출발하는 거의 마지막 시간의 버스를 타고 언덕을 내려와 곧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경훈이 덕에 미국에 온 후로 가장 열심히 돌아다닌 꽉 찬 하루 일정을 보냈다. 오늘을 끝으로 이별하는 은주와 오늘 가이드하느라 고생한 경훈이와 맥주 한잔 할 법도 하지만 몰려오는 피로에 서로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게스트하우스 침대가 나랑 잘 맞나보다. 잘 자고 일어난 느낌으로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 아침 다시 한번 팬케이크 굽기에 나섰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대강 떼 내어서 이정도면 됐겠다 싶은 정도로 구워냈지만 속은 덜 익고 겉은 약간 탔다. 오늘 아침도 밀가루 덩어리로 배를 채웠다.
오늘은 또 다른 동행들을 만나 샌디에고로 가기로 한 날이다. 렌트카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은 한 남학생이 렌트카를 찾아 자신과 가까운 순으로 일행3명을 픽업해서 출발하기로 했고 내가 마지막 순번이었다. 운전을 해주기로 한 남학생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나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내 호스텔 앞으로 나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의 한 차량이 도착해서 나는 조수석으로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