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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Dec 19.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팬케이크를 굽다.

 다음날 아침.     

 꿀잠을 잤다. 내 몸은 게스트하우스의 2층 침대가 딱 맞는 것 같다. 아침 먹고 화장실에 다녀와서야 하루가 시작되는 나인지라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 숙소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팬케이크를 기대하며 미국에서 팬케이크도 먹어 보고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식당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굽고 있는 경훈이를 발견했다. 역시 열정맨은 하루 시작도 빠르다.    

 

 “이거 뭔데?”

 “팬케이크요.”     


 가까이 다가가 뭘 하고 있나 봤더니 경훈이는 팬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옆에는 커다란 바구니에 팬케이크 반죽이 아주 한가득 담겨있었다. 그렇다. 무제한으로 제공된다던 팬케이크는 반죽상태로 제공되는 것이었고 그 반죽을 각자가 잘~ 구워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약간의 당혹감과 함께 나도 영훈이를 따라 난생 처음 해보는 팬케이크 굽기에 나섰다. 웍 같이 생긴 커다랗고 꽤 무거운 후라이팬에 반죽을 대충 적당한 양을 떼어 내어 올리고 내 생각에 알맞아 보이는 불에서 구워냈지만 타고 들러붙고 다소 처참해진 밀가루 구이가 한 덩어리 생겼다. 일단 맛이야 시럽 맛이겠거니 하고 접시에 담아 약간의 시럽을 붓고 적당한 과일과 함께(여긴 캘리포니아니까 오렌지는 꼭 담고...) 한 접시 아침식사를 만들어냈다. 경훈이가 자리 잡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서로의 못난이 팬케이크를 보며 웃었다.


 “근데, 어제 그 여자애는 아직 자고 있던데 깨워야 할까요? 저러다 약속 시간까지 못 나올 것 같은데...” 경훈이가 말했다.

 “응?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우리 방은 mix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둘이 같은 방이었구나.”

 “네. 저희도 몰랐어요. 가서 깨워야 할까요?” 출발 시간이 지연될까 걱정스러워 하며 경훈이가 물었다.

 “애매하네. 아침 먹고 올라갔는데도 자고 있으면 살짝 깨워 봐. 어지간하면 자기가 알아서 시간 맞춰 일어나겠지만...”

 “네, 그래야겠어요. 오늘 일정도 많은데...”

 “열심히 움직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역시 캘리포니아에서 먹는 오렌지는 신선하고 맛있었고 밀가루 덩어리는 역시 시럽 맛으로 ‘그래도 이정도면 먹을 만하다. 내일은 좀 더 잘 해봐야 겠다.’ 생각하며 그냥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해진 마음으로 방으로 올라갔다. 부른 배와 늘어진 몸으로 침대에 앉아 딱딱한 벽을 등으로 느끼며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가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시간 맞춰 나왔다. 먼저 나온 경훈이가 있었고 역시나 여자아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제가 안 깨웠으면 완전히 늦어질 뻔 했어요.”

 “하하핫! 그래, 잘 했어. 보기에는 똑 부러져 보이던데 약간 허술한 구석이 있네.ㅋㅋ”     


 15분정도 늦게 나온 그 여자아이 은주는 멋쩍은 얼굴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다들 귀한 시간 내서 어렵게 온 여행에서 시간 약속을 지켜지 않는 건 큰 실례다. 먼저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으면 분위기가 싸해질 수도 있었지만 경훈이도 나도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넘기며 길을 나섰다.


 첫 번째 목적지는 UCLA였다. 미국을 여행하며 한국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듣고 보던 이름의 장소에 직접 가본다는 감격을 여러 번 느꼈는데 여기도 정말 그랬다. 별 생각 없이 입고 다니던 나의 베이지색 맨투맨 티에 적혀있던 이름이고, 농구 게임할 때 자주 보았던 농구팀 이름이었던 곳에 내가 직접 가본다 생각하니 흥미가 돌았다. 어리고 열정 있는 일행들 덕분에 스스로 이리저리 찾아가는 수고 대신 따라다니는 편안함을 누리며 버스를 탔다.     


 어디가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비버리 힐즈를 지난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디로 가면 헐리우드 라고도 들은 것 같다. 잠깐씩 졸며 가다보니 경훈이가 내리자고 했다. 탁 트인 도로와 쨍한 햇살 속에서 길을 찾아갔다. 꽤나 더운 날씨에서 걸어 다녔는데도 땀이 많이 나진 않는 것이 신기했다. 애들 말로는 습하지 않아서 땀이 덜 나는 거라고 하던데 진짜 그런지 궁금했다.     


 UCLA로 들어가기 전에 다소 이르지만 일정 상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나는 잘 모르지만 경훈이가 인앤아웃 버거가 유명하다며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나도 한 번 따라가서 먹어보겠다고 했고 어제 먼저 맛을 본 은주는 자기 스타일은 아니라면서 다른데서 식사를 하고 올테니 밥 먹고 정문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와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아이가 보여 준 어제의 나와는 사뭇 다른 독립적인 모습에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훈이와 인앤아웃 버거집으로 향했고 씩씩한 은주는 반대방향에 식당 몇 군데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넓고 깔끔한 매장의 인테리어와 캐주얼한 분위기가 대학교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주문할 때 점원이 어니언을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먹었지만 양파야 어찌됐든 별 상관 없을 것 같아서 대충 오케이라고 얼버무리고 주문을 마쳤다. 앞으로도 미국 여행을 하는 동안 햄버거와 콜라를 자주 먹게 될 것 같고 대충 한국에서 1년치 정도는 먹고 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옆 테이블에선 이곳에 유학을 온 것으로 보이는 남자와 그를 만나러 온 듯한 부모님같은 한국 가족이 있었다. 부모님께 이 곳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듯했다. 대학을 입학한 뒤로 제 때에 졸업하기 바빴던 나는 유학이나 어학연수와 같은 외국에서 몇 개월씩 생활해 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여행하면서는 알 수 없는 현지의 삶을 통해 다가오는 느낌들이 궁금했다.

      

 주문한 햄버거를 받아 들었다. 크기도 크지 않고 아기자기한 모양의 햄버거였다. ‘햄버거는 다 한 통속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 그래도 꽤 맛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걱우걱 다 먹고 나왔다. UCLA철제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은주를 다시 만나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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