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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Nov 14.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페리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서울에서 물 건너 온 카메라와 바람막이를 걸치고 로비로 내려갔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날따라 약속시간 보다 약간 일찍 내려가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호스텔 식당에서 잠깐 마주쳤던 한 외국인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무언가 호감적으로 다가온 외국인덕에 난 드디어 미국에서 외국인과 대화다운 생활영어를 마음껏 써보게 되었다. 괜히 나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제스쳐가 과해지는 느낌이 스스로 들며 얘기했다. 으레 그렇듯이 이름을 묻길래 내 이름은 발음이 좀 어렵다고 미리 얘기하고 또박또박 알려줬더니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쉽게 발음했다. 생각보다 내 이름을 수월하게 발음한 그는 25살의 다니엘이며 미국사람이었는데 처음 들었을 때 미국사람이 미국여행을 하는 게 왜 이상하게 들렸는지 내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어디서 왔냐, 언제 왔냐 등의 이야기를 괜히 들뜬 목소리로 나누고 나의 오늘 일정을 듣더니 자기도 우리 일행에 동행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또 다른 일행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그때부터 나는 종일 영어 듣기 평가를 하면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미국에 여행 와서 미국사람과 동행을 하게 되다니 ‘와! 되게 기분이 신기하면서 좋다.’하면서 영어 듣기 말하기를 하고 있자니 나머지 일행들이 하나 둘 로비로 모였다. 아르헨티나 여성을 보자마자 나는 갑자기 일정을 바꾸게 되어 빵집에 들렀다 골든 브릿지로 가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했더니 그녀는 쿨하게 ‘노프라블럼’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쿨하게 대화를 나눈 후 나와 예정되었던 일행 현이, 호스텔 식당에서 조금 전에 만난 지혜의 룸메이트들인 아르헨티나 여성과 한국 여성, 방금 로비에서 만난 미국 남성까지 이렇게 우린 우루루 베이커리로 몰려갔다.


 3개국의 사람들이 일행이 되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참 이색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5명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었지만 주로 한국 사람들끼리 얘기하고 나머지 외국인 두 명이서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서양인들은 언어 중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성은 영어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어도 할 줄 안다고 했다. 내가 살면서 만나본 몇몇 서양인들은 어릴 때 부터 교육을 받았다 손 치더라고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수준이 내 기준에서 보면 아주 높았다. 그런걸로 봐서 서양인들은 언어 능력을 타고 나는 게 분명했다.   

  

 처음에 내가 가자고 한 베이커리로 향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길잡이가 되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을 옆에 두고 이리저리 길을 안내하고 그 뒤를 아르헨티나 사람이 따르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내가 참 글로벌한 인재가 된 기분이었다. 길을 가는 동안 나란히 걸으며 어렵사리 나눈 대화 끝에 알게 된 건 25살의 다니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일을 하며 LA에서 업무 차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놀랐지만 서양인의 나이에 놀라는 일이야 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덕길을 오르며 이리저리 길을 돌아 그 베이커리에 도착했다. 나는 가본 적 없지만 우리나라의 가로수 길에도 있다는 베이커리라며 유명한 집이라고 무리들에게 가이드처럼 소개하고 마치 내 가게인양 자랑스럽게 입장했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아니면 다들 일찌감치 빵 먹고 출근해서 그런지) 잔뜩 소개해줄 손님을 이끌고 온 내가 무안할 정도로 다른 손님은 없었고 가게는 생각보다 조촐하고 다소 휑하게 까지 보였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네온사인으로 된 간판 말고는 딱히 인테리어가 이쁘지도 않은 그냥 심플한 베이커리였다. 일행들의 반응을 보니 휑한 가게에 약간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일단 왔으니 빵 하나를 주문하고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다들 그래도 왔으니 각자 빵을 하나씩 사들고, 누구는 먹고 가게를 나왔다. 결국 물 건너 유명한 빵집에서 먹어 본 빵의 맛은 ‘와 부드러운 빵이다!’ 였다. 여기서 아르헨티나 여성과는 헤어지고 우리 넷은 골든 브릿지로 향했다.


 여기서부턴 현이가 앞장섰다. 이리저리 버스 노선을 알아보고 골목들을 돌아 정류장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여행의 효율성을 높이기로 합의 한 우리는, 나는 알지도 못했던 우리나라의 콜택시 격인 우버 택시를 불러 골든 브릿지로 갔다. 처음 건너는 미국의 다리. 이름도 멋진 골든 브릿지. 낭만 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 다리의 운치를 온몸으로 느끼며 건너가고 있었지만 전혀 부럽지 않았다. 그 도전 정신과 적극성을 높이 사긴 했지만 정말 온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한참을 페달을 밟거나 걸어야하기 때문에 하나도 부럽지 않았고 택시 안에서 본 사람들의 얼굴은 낭만 보다는 고역스러움이 묻어나 보였다. 택시를 탄 우리는 모두 만족했다.   

  

 시원하게 다리를 건너 맞은편 조망이 좋은 언덕에서 내렸다. Golden gate bridge. 금문교. 불어오는 바람, 멋진 언덕의 풍경, 파란 바다, 주위의 낯선 사람들과 분위기. 벅차 올랐다. 이대로 바람을 타면 바람이 어디론가 데려다 줄 것 같았다.(바람이 강해서 좀 만 더 세게 불면 진짜 바람을 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너무 멋진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마음이 풍성했다. 이렇게 멋진 풍경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 감격 스러웠다. 생각없이 셔터를 눌러댔고 그 탓에 이동이 더뎠다. 느릿한 마음으로 언덕을 걷고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다리를 향했다. 

    

 한참을 걸었고 금문교 중간에 위치 한 휴게소 같은 곳에 도착했다.  근처에 있는 예쁜 마을인 소살리토로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한 현이의 말에 우리를 업어 줄 버스를 알아보다 마땅한 버스가 없어 다시 우버를 불러야 하나 하고 있었다. 정차 중인 여러 투어 버스들 사이에서 어쩌나 하던 중 어쩌다 눈이 마주친 한 버스기사에게 우리의 든든한 다니엘이 다가갔다. (깡마른 녀석이었지만 어찌나 뒷모습이 든든하던지...)

 버스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내심 기대에 찬 우리에게 돌아온 다니엘은 기사가 그 투어 버스는 소살리토까지 가며 원한다면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우와 현지인과 동행하게 된 덕을 보는 건가’ 이게 여행에서의 랜덤 럭키 구나 싶은 생각으로 진심 고마운 마음으로 “땡큐!! 땡큐 베리 머치!!” 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 멋진 흑인 기사는 소살리토까지 가지 가는 동안 유년기 시절에 웅변학원에서 배웠을 것 같은 발성으로 여기저기 안내를 해주었고 나는 대충 어디어디가 맛있는 식당이다 정도만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해안을 낀 풍경에 감탄하며 도착한 소살리토는 아기자기하고 너무너무 이쁜 마을이었다. 바닷마을이라 부르면 딱 좋을 것 같은 그 곳은 예쁜 식당들이 늘어선 해안 도로를 시원한 바다가 감싸고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진동을 하는 정말이지 예쁜 동네였다. 미국인을 비롯한 우린 한참을 감탄하며 눈에 다 담아가지 못할까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구경하다 배고프다며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햄버거의 나라에 와서 처음 먹어보는 현지의 햄버거. 각자 하나씩 햄버거를 시켰고 푸짐한 비주얼의 햄버거가 한상 가득 나왔다.


 왁자지껄한 식당의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일행과의 대화, 과한 손짓이 절로 나오게 되며 알아서 공부도 되는 다니엘과의 대화. 며칠 사이에 나의 생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게 바로 여행의 재미가 아닐까, 이렇게까지 일상의 반전을 주는 것은 여행만한 게 없다.

     

 식사를 마치고 멋지게 음식값과 팁을 두고 나왔다. 각자의 계산서를 한명한명 따로 주었다. 'seperate' 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구나 하나 배우고 계산대 앞에 서서 차례대로 계산한 게 아니고 테이블에 돈을 그냥 놓고 나왔는데 와 이것도 누가 가져가는 거 아닌가 사실 불안했다. 그리고 팁이 어찌 그리 아까운지...팁 문화에 아직 한참 적응이 안 됐는데 웬걸 다니엘도 팁 문화에 대해 불만이라고 했다. 아무튼 우리 선에서 적당한 비율로 합의한 금액을 팁으로 포함한 음식값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식당을 나와 쏘다녔다. 공원을 지나고 거리를 지나고 알록달록 예쁜 가게들을 흘낏 흘낏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추 동네 구경 할만큼 했다 싶을 때 페리를 타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린 선착장으로 갔다. 표를 끊고 선착장에서 바람을 맞으며 있다 보니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배가 들어왔다. 환한 햇살이 내리쬐는 배 위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는 기분은 그야말로 미국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 그 자체였다. ‘지구는 크고 여긴 내가 있던 곳이랑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 푸른 하늘과 하이얀 구름과 바디감이 느껴지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주는 평화로움은 지금까지의 나를 녹이고 나의 껍질을 깨 버리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가량의 항해를 마치고 페리는 피셔맨즈 워프에 다다랐다. 내릴 때 즈음 현이가 나에게 와서 ‘다니엘은 어떻게 할 거야?’라고 하며 이제 그만 같이 다니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지도 영어 회화 시간이 많이 피곤했나보다. 미안했다. 내 첫 미국인 친구였는데... 차마 그만 같이 다니고 싶다는 말은 못하고 다니엘이 피어39로 갈 예정임을 알고 있었던 나는 우리는 이제 카스트로 거리로 갈 꺼라고 말하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즐거운 여행 되라며 페이스북 계정을 교환하고 그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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