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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06. 2021

엄마. 엄마가 옳았어요

1부

나 지금 차와 함께 버려진 걸까? 그런데 차는 엄청 비쌀 텐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일하러 가는 엄마를 기어이 따라나섰다. 엄마는 내가 가더라도 차에서 혼자 기다려야 한다며 미리 알려주었지만 매일 잘 때가 다 돼서야 들어오는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어딜 가서 무얼 하든 상관없었다. 따뜻한 집에 있으라며 극구 말리던 엄마 얼굴이 왠지 초조해 보였다.

엄마가 차를 운전해 도착한 곳은 높은 아파트들이 빼곡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들어가는 입구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자동문이 없었기에 수많은 세대가 모여있는 아파트는 방문판매 꽃피울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 엄마는 방문판매사원이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왔으니 그저 친구를 만나러 가는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왜 나데리고 가지 않고 차에 있으라고 하는 거지 하고 의아해했던 거 같다. 차 안은 후덥지근할 정도로 히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차가운 바깥 날씨와 온도 차이 때문에 창문에는 김이 서렸다. 그 덕에 낯선 창밖 세상이 뿌옇게 가려져 나와는 더 동떨어진 곳처럼 느껴졌다. 

초등학생인 나는 따로 전화기를 가지고 있질 않았다. 얼마나 혼자서 차에 있어야 하는지 몰라 좋아하는 책 한 권도 챙겨 오지 못했다. 엄마가 들어간 아파트 통로만 하염없이 지켜다. 나는 엄마가 그곳에서 나와 다시 내게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느끼기에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손톱 밑을 물어뜯기 시작할 때도 엄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낯선 그곳에서 나는 엄마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처음부터 안된다고 했는데 내가 우겨서 여기에 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안 그래도 너무 바쁜 엄마인데 오늘따라 내가 더 성가셨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어? 혹시 나 지금 여기에 버려진 게 아닐까?'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내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올랐고 대낮에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엄마 차 속에서 나는 꺼이꺼이 울며 엄마를 찾았다. 얼마 안 되는 그 시간에 '내가 집을 겨우겨우 찾아가도 내가 찾을 수 없게 이사를 갔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 엄마가 다시 오지 않을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다 문득 또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고 있는 차 굉장히 비쌀 텐데. 내가 아무리 성가셔도 이렇게 비싼 차도 같이 버렸을까?'

엄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엄마의 애정에 목말라 있었고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상태였다.


다시 나타난 엄마는 엉엉 울고 있는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그 차 안에서 돌아온 엄마를 만난 이후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억의 파편은 내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기 십상이고 불리한 건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내 유년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우리 엄마는 무척 바빴고 그래서 엄마의 자리는 부재의 순간들이 많았던 것만 기억했다. 엄마의 부재는 살면서 내가 엄마에게 서운한 걸 언제든 토해내도 되는 무기처럼 여겨졌다. 잔뜩 당겨진 활시위처럼 나의 불만은 언제든 엄마에게 튕겨져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가 엄마의 마음을 후벼 팠다. 엄마는 그런 내게 화를 내는 대신 정말 죄를 지은 것처럼 속으로 묵묵히 삭히는 걸 선택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죄를 짓지 않아도 언제든 미안하다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내 모든 걸 쏟아붓고도 매일 자책과 반성을 하는 존재가 엄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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