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Jan 09. 2021

산후풍

산후풍

출산 후에 관절이 아프거나 몸에 찬 기운이 도는 한의학상의 증세

-네이버 백과사전-


웃풍보다 심한 게 산후풍이라고 했던가.

아이스크림이 이에 닿으면 이가 시리다 못해 그대로 얼어 부서질 거 같고,
에어컨 바람이 꽁꽁 싸맨 옷 사이로 살결에 닿기라도 하면 바늘로 콕콕 찬바람을 쑤셔 넣는 거 같다.

웃풍도 에어컨도 어디서 시작된 바람인지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알아 도망가거나 끌 수 있다.


산후풍은 어디서 시작서, 어디서 불어오는지 어디로 오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이 그대로 맞아야 한다.


손가락을 잘 펴고 굽히지도 못한다. 가장 가늘고 많이 쓰이는 뼈들부터 뻣뻣하게 굳어간다. 내 손이 내 손이 아닌 거 같고,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거 같다.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삐걱거리며 사는 것 같다.


그만큼 내 몸속 뼛조각 하나하나까지 목숨 걸고 바뀌어야 할 수 있는 게 육아인 것도 같다.

내려놓고, 양보하고, 포기하고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아이에게 맞춤형 엄마가 되니까.


산후풍은 몸속에서 쉼 없이 콸콸 솟아나는지 관절 마디마디까지 닿지 않는 데가 없이 쑤시고 아프다. 뼈 사이에 구멍을 숭숭 뚫는지 뼛속까지도 시리다.

때로는 내 온몸의 뼈마디에서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처럼 찬 기운이 살결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죽을 때가 되면 몸의 기운이 차가워지고 뻣뻣해지는데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게 그렇게 죽을 만큼 힘이 들었나 보다.

겉으로 보기에는 피부색도 괜찮고 아무렇지 않지만 속은 죽어가는 이처럼 차갑게, 차갑게 식었나 보다.


추우면 이가 달달 부딪히듯 온 몸의 뼈들이 추위에 어그러져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낸다.
그때 뼈들이 맞물리면서 살아라, 살아나라 소리를 내는데 그게 온몸에 땀이 되어 베갯잇을 흠뻑 적신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땀이 흠뻑 나와 온 몸이 젖고 나면 어지럽고 정신이 아득하다.


아기 낳을 때도 아득할 만큼 정신이 없다. 산후풍은 출산할 때 아팠던 걸 잊지 말고 다시 아기를 가지지 말라고 몸이 하는 걱정이 아닐까? 아이가 크면서 출산의 고통도 기억도 희미해지지만 산후풍도 점점 사라져서 몸의 걱정이 무색해져 버린다.

육아를 하다 보면 냉탕탕을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오가는데 산후풍도 하루에 몇 번씩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우리가 겪을 육아를 미리 몸으로 알리려 산후풍이 우리에게 오는 것일까?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앞으로 겪어야 할 게 훨씬 더 많다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