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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02. 2021

아버님한테 된장찌개 끓이는 비법을 전수받긴 했는데

써먹지를 못했네.

시댁에 가는 날을 잡고 나면 가기 전부터 어머님께 연락 다.


"아가 먹고 싶은 거 없어?"말이다.


나는 어머님께 문자나 전화로 "괜찮아요. 뭐든 좋아요"고 말한다.


그러고는 신랑을 통해 내가 먹고 싶은 걸 신랑이 먹고 싶은 것처럼 게 한다.


나는 거절에 취약해서 혹시나 거절당했을 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미리 파놓는 함정 같은 거다.


그런데 내가 먹고 싶은 게 신랑이 본가에 살면서 즐겨 먹던 것들이 아니라서 아마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두 번 정도 그랬을 때 눈치를 채셨을 것 같다. 뛰는 며느리 위에 나는 시부모님이 계실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이 먹고 싶은 것처럼 낯선 먹거리를 줄줄 외울 때마다 눈 지그시 감고 속아주시는 속 좋은 분들이 내 시부모님이다.


같은 맥락으로 시댁에 내려가기 전에 가도 되는지 여부를 묻는 것도 신랑 하게 만든다. 신랑이 물어서 거절당하면 내가 부탁한 내용이라도 신랑이 거절당한 것처럼 느껴져서 난 아무렇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신랑부모님이라서 신랑은 실제로 거절을 당해도 아무렇지 다)


그래서 시댁에 가는 일은 소풍가는 것처럼 늘 설레고 기분이 좋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것들 중에 잡채도 너무 맛있고(그런데 잡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 너무 내가 좋아하는 게 티가 나기도 하고 나만 즐겨먹는데 7인분 가까이해주셔서 자주 말씀드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너무 맛있긴 하다) 꼬막무침도 새우튀김도 수육도 다 맛있다.


그중에 말씀드리지 않아도 항상 아버님이 며느리를 위해 해 주시는 요리가 있다.


거기다 아버님이 어머님보다 그 요리는 더 잘하시기까지 다.


그건 바로 장찌개다.


살면서 그리 특색 있게 맛있는 된장찌개는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감칠맛이 엄청나고 생각만 해도 침이 꼴딱 꼴딱 넘어다.


그걸 각종 나물이나 저래기와 함께 넣고 슥슥 비벼먹으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그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 정갈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그 밥상을 받을 때면 치유되는 느낌마저 든다.


나도 저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턱 하니 끓여 퇴근하는 신랑에게 짠하고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내 된장찌개에도 아버님의 된장찌개처럼 감칠맛이 나기만 한다면 맛 본 신랑은 엄지 척을 할 테고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한쪽 눈을 찡긋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버님의 된장찌개 비결을 여쭤볼 때가  것이다.


아버님은 내 질문에 수줍게 웃으시더니 어마어마한 비결을 알려주셨다. 다시를 내고 된장을 풀고 채소를 넣는 것까지도 같은데 마지막 포인트에서 우리는 입에 머금은 된장찌개를 뿜을 뻔했다. 그리고 깔깔 웃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도 그 비결이 생각나 포복절도했다.


바로 미원 한 숟갈을 꼭 넣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듬뿍. 그래야 맛있어진다 하시면서.


우리 집은 어렸을 적부터 미원을 쓰지 않아서 나는 요리를 할 때 미원을 쓰는 게 어색하다. 그래서 아버님의 된장찌개 비결은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기억에 간직하고만 있다. 하지만 쓰는 거에 대해서는 거부감은 전혀 없다. 바깥 음식 그렇게도 잘 먹으니까. 그래서 아버님의 된장찌개도 그렇게 감칠맛이 뛰어났나 보다.


언제라도 비결을 실행에 옮길 수 있지만, 옮기는 날 신랑이 바로 알아차리고 우리는 다시 뒤로 깔깔 넘어가겠지. 지쳐서 웃음이 필요한 날이나 아버님이 몹시 그리워지는 날 비결을 실행에 옮겨 볼 생각이다.


나는 결혼하기 전에는 시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알았다. 시아버지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인 걸. 며느리를 보면 하회탈처럼 예쁘게 웃어주시고, 며느리에게 먹이려 비 오는 날 비를 맞으시며 텃밭에 있는 상추를 뜯어주신다는 걸.

집으로 돌아갈 때면 차가 골목으로 꺾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마중을 해주시는 줄도.


나는 신랑과 결혼을 하면서 내게 가족이 더 생겨서 너무 좋았다. 그 따뜻함과 내편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그 포근함 좋았다.


그리고 상처나 실수도 가족이기에 서로가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누가 돼도 나와 똑같을 순 없으니까. 가끔 상대가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도 또 내가 상대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도 눈 지그시 감아 못 본체 해주는 그 포옹력도 우리는 꽤 잘 갖춰져 있다.


나는 신랑과 결혼해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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