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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13. 2021

생일, 다들 어떻게 보내셨나요?

내 생일에 진심인 사람들.

생일 전날,

신랑이 퇴근하는 길에 아름다운 꽃들이 있는 작은 꽃다발과 아담한 케잌을 사 가지고 왔다. 정성스레 적은 편지와 함께.


이제부터 생일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후끈 달아오르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드디어 내일진짜 생일이다. 실감이 다.


신랑이 오고 나서 7살 첫째 아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아빠가 잔뜩 가져온 선물을 보고 마음 급해진 듯 했다. 신랑의 팔을 잡고 흔든다.


"아빠! 나도 편지 쓸래. 나 좀 도와줘. 엄마는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조금만 기다려줘 엄마."


신랑의 손을 잡아끌고 들어간 방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들이 걸어 나왔다.


내게 편지라며 스케치북 한켠을 오려 마음을 빼곡하게 채운 쪽지를 건넸다.


"엄마. 내가 돈이 없어서 이것밖에 못줘서 정말 미안해."라는 말 함께.


나와 신랑은 엄청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첫째의 존재만으로도 너무 귀하고 고맙다고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때는 돈이 없는 게 당연다는 말도.


사람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말을 잘해주는 첫째답다는 생각을 했다. 어리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룰 줄 아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아이의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내 이름 뒤에 반장님 (아마 사촌누나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이번에 반장이 되었다고 칭찬을 받는 걸 보고 반장이란 칭호를 붙여주면 엄청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 적은 듯하다. 우리 앞에서 반장이 뭔지에 대해 말 한 번 꺼낸 적 없던 아이가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혼자 저렇게 생각을 했다는 게 우선 너무 신기하고 귀여웠다)

엄마. 사랑해. 어버이날 축하합니다. 엄마를 제일 사랑합니다.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마랑 결혼하고 싶습니다

코로나 끝나면 제주도로 이사도 가줘요(유치원 친구들 중에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 온 친구들이 제주도가 좋다고 얘기를 했는지 언젠가부터 제주도 여행을 한 번 가자고는 했지만 이사는 처음 듣는 말이다)

엄마 사랑해요. 다음에는 인형 뽑기도 해요. 엄마의 사랑 첫째 아이 이름.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니!

처음에는 너무 감동해서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몇 번 더 읽어보니 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편지에 적절하게 아이가 원하는 걸 섞어서 적어놓은 게 너무 웃겨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첫째는 편지로는 아직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내가 지금 엄마를 위해서 돈이 없어해 줄 수 있는 게 없지만 만들기를 해주겠다며 블럭을 한아름 들고 거실로 나갔다. 다 만들기 전까지는 비밀이라며 철통 보안을 유지한 채 열심히 블럭을 만들었다.


블럭 만들기는 편지보다 조금 더 걸린 것 같다. 정확히 둘째 크기만 한 블럭을 만들어서 들고 왔다. 얼굴에는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함께 섞여 있었다. 나는 아이의 자랑스러운 표정만큼이나 아이가 만든 이 선물을 소중히 다뤄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다 만져보고 다니는 둘째가 블럭에 관심을 가지고 다다다닥 기어 오기 시작했다. 첫째가 보고 있단 생각에 "이게 얼마나 귀한건데 안돼" 하면서 블럭을 뺏어 드는 연기를 했다. 둘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가던 길을 갔지만, 내 연기가 우리 첫째의 마음에 쏙 들면 좋았을 텐데 봤는지 못 봤는지 모르겠다.


이제 신랑의 편지가 남아있었다. 신랑의 편지는 읽을 때마다 눈물샘을 자극해서 저녁을 먹기 전에 읽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얼른 저녁을 먹고 혼자 방에 들어와 신랑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처음에는 산뜻하게 읽기 시작다. 그러다 방에서 나올 때는 코가 딸기코처럼 빨개지고 눈이 충혈돼서 나온다.


4장이나 되는 신랑의 편지에는 둘째가 태어난 그날의 일도 담겨있었다.


처음 둘째를 대면할 때 10개월 간 자기를 못살게 굴고 나올 때도 그렇게 애를 먹여 원망 섞인 눈으로 들어갔었지. 미처 닦아내지 못한 피와 태지로 범벅된 얼굴.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입을 벌려 엄마를 찾고 있었어. 자신과 똑 닮은 엄마를. 동이 틀 때 짙게 깔린 어둠을 이겨 내기엔 턱없이 작은 빛줄기가 서서히 뻗어 나가듯, 자기를 닮은 듯한 작은 세계가 꿈틀꿈틀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순간이었어. 나는 작은 자기에 대한 분노를 거두고 가장 좋은 친구이자 조력자가 돼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그게 내 첫 진짜 아기인 자기가 바라는 일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야.


이 부분을 읽는데 코끝이 찡해왔다. 대학생 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들로 만나서 이제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는데 신랑은 둘째가 태어난 순간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이래서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지는 부분도 감동 그 자체였다.


첫째 때 그렇게 생사를 오가며 무서웠을 법도 한데, 겁도 많은 아기가 두 번이나 씩씩하게 엄청난 일을 해냈어. 기나긴 밤 잠 설치며 아기 돌보느라 목도 아프고 얼굴도 붓고,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만신창이가 돼서도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자기는 천사야. 요구사항을 온몸으로 목이 찢어져라 울며 표현하는 아기에게 화 한번 안 내고 안아주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꼭 감싸주는 자기는 천사야. 가장 밉다는 7살 농간에도 더 잘해주지 못한 부분을 자책하고 염려하는 대천사야.


육아는 집안일과 같아서 매일 붙어서 아기들을 보느라 전전긍긍 씨름을 해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적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 고됨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다행히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편지를 읽고 딸기코와 충혈된 눈으로 나가도 다시 날 기다리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신랑이 선물 배송이 늦어져서 내일 도착을 못할 거라며 엄청 풀이 죽어 얘기했지만 나는 정말 더 이상의 선물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작고 예쁜 케잌에 초를 붙였고, 연수원에 일정이 있어서 집에 없는 엄마를 빼고는 케잌 앞에 모여들었다.


내일 제대로 할 건데 오늘은 너희끼리 하라는 아빠였지만 마지못해 첫째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우리와 같이 살면서 시끄럽고 정신없긴 하겠지만 이렇게 북적북적해서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에 안긴 둘째까지 가족이 모여 초를 불고 왁자지껄하게 생일 전야제를 치렀다.


신랑은 내일 내 생일을 잘 보내겠다고 월차까지 썼는데 첫째는 꼭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며.


그런데 나는 신랑 짠 열정이 가득한 일정을 들으며 

'이 일정대로면 우리 쉴 수 없을 거 같아'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컨디션이 떨어져서 연달아 잠만 자고 싶단 말도 할 수 없었다.


내일은 몸이 조금 피곤하더라도 신랑이 짠 일정에 몸과 마음을 내맡겨볼까 한다. 


나보다 내 생일에 진심인 사람들, 가족들이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 통잠을 모르는 둘째를 키우느라 몸이 축났다고 산낙지에 전복, 소고기까지 잔뜩 사서 엄마까지 내일 오면 이번 해 생일도 정말 생일답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도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 내년에도 이번 해만큼 행복했음 좋겠다는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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