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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18. 2021

남편의 몸이 축난다면 나 때문일 것이다.

아침 대용으로 먹을 

낱개 포장 떡 두 개를 넣려고

열어 본 신랑의 가방에 약봉지가 어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병원 갔다 왔냐고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감기약이라고 했다.


왜 얘기 안 했냐고 물었.(사실 이게 뭐가 중요할까. 몸이 아파서 약을 타 왔을 뿐인데)


"자기가 맨날 아프다고 하는데 내가 거기다 어떻게 얘기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덧붙여서 자기 아픈 거 뻔히 아는데. 자기가 아픈데 나까지 아프면 안 되니까 예비용으로 받아온 거라며 너무 아파서 받아 온 약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마음 하고는 달리(마음으로는 매일 아프다고 하는 게 미안하고 어디가 아파서 타 온 약일까 얼마나 아플까 걱정밖에 안 되면서) 나도 그럼 앞으로 병원 갈 때 얘기하지 말고 갈까 그러면서 오히려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내게는 신랑의 아픔보다 나는 사소한 거 하나하나 다 얘기하는데 병원에서 약 타올만큼 아파놓고도 나에게 아픈 걸 말도 하지 않았다는 배신감이 컸던 걸까?


하지만 이런 건 아픈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할 뿐이었다.


신랑도 괜히 약봉지를 내가 봐서 이렇게 됐다며 가방은 근데 왜 뒤졌냐고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기분 나빠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 대용으로 먹으라고 떡 넣으면서 봤다고 쏘아붙였다. 아침 대용으로 먹으라고 떡 넣은 내 행동이 죄냐면서.


사실은 깨워주고 반찬 꺼내고 만들어 놓은 국이나 찌개 데워서 아침차려 주지도 못하면서 가끔씩 챙기는 아침대용 떡으로 괜히 생색내는 내 모습이 나도 우스웠다. 


나는 또다시 이제 나도 병원 갈 일 있어도 얘기 안 할 거라고 말했다. 아픈 걸 왜 얘기 안 하냐고도 했다.


맨날 아프다고 하는데 나까지 아프다고 뭐하러 얘기하냐고 한 말이 날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억지라는 걸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고 있는 날 보며 오히려 신랑은 알겠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제 아파도 얘기하고, 아파서 병원 가더라도 얘기한다고 했다.


내가 정말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왜 나는 신랑의 가방에 있는 약봉지를 보고 어디가 아파? 많이 아파?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지 못했을까.


육아처럼 부부 사이에도 자칫 노선을 벗어나면 후회와 자책이 뒤따는 걸 알면서도.


약봉지를 보고 걱정되면 걱정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로 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의 남은 힘까지 다 빼 버다.


나는 그날 불량 아내가 됐다.




7살 첫째 잠드는 시간 대략 10시에서 11시 사이이다.

둘째는 보통 새벽 1,2시가 돼야 겨우 잠이 든다.


둘째가 어두워지면 잠시도 엄마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 첫째를 재우는 건 신랑 몫이다.

그리고는 1시에서 2시가량까지 둘째를 돌보고 재우는 내 곁에서 있어준다.


빈말이라도 자기 피곤한데 얼른 자러 가라고  얘기하지만 신랑도 그게 영혼 없이 들리는지 자기랑 하루 종일 못 있어줬는데 이제부터라도 좀 있어줘야지 하고 곁에 는다.


그 시간의 신랑은 나와 하루 동안 못 나눈 얘기를 나눌 수도 있고, 부은 내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해서 내게 끊기 힘든 커피보다도 중독성이 강하며, 금붙이보다 더 희소성이 강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신랑을 돌려보낼 때가 왔다.


신랑의 평균 수면시간 5~6시간.

이렇게 짧은데도 낮에는 일을 하니 나처럼 행운을 노릴 수도 없다.


그런 신랑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신랑의 수면시간에 반성해야 될 사람은 첫째도 둘째도 아니고 바로 나다.


지금보다 둘째가 더 자주 깰 때도 12시부터는 내 몫이라며 돌려보내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터 12시 넘어까지 신랑이 나와 둘째의 곁을 지키고 깨어있는 게 당연한 게 되어 버렸을까.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건데 말이다.


첫째를 재우면서 잠들면 그 잠이 얼마나 꿀같이 달까. 첫째를 재우면서도 억지로 버텨서 나에게까지 걸어오는 그 길이 거리는 짧아도 심적으로는 천리길이 아닐까. 그런 그의 마음을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고 배려했어야 하는데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하루는 신랑이 자세를 바꾸면서 악하고 소리를 내길래 "어디 아파?"하고 물었다.


"아. 허리"


"많이 아픈 거야?"


"괜찮아.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안 아프고 움직이거나 하면"


"언제부터 아팠던 거야?"


"한 세 달 됐어. 직업병이야. 걱정하지 마."  


세 달이나 됐다는 그의 아픔을 생각하며 내가 어떤 방식으로 그의 아픔을 대했는지 곱씹었다.


나는 사실 그동안 지속적으로 그의 허리가 아팠단 걸 몰랐다. 가끔 아팠다고 알고 있었다.

그럴 때면 호들갑을 떨며 귀찮을 만큼 허리가 아픈 데 어떤 걸 해주면 좋을지에 대해 묻고 또 묻고 자꾸 무언가를 해주려고 했다. 해답을 주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대부분 내가 하고 좋았던 것들이라 그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그는 몸에 열이 많아 뜨거운 찜질도 별로 안 좋아하고 마사지도 안 좋아한다. 불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가 좋아질 때까지 그런 것들로 치료를 해보자고 계속 얘기하는 편이다.


나는 내가 아플 때 치료제를 내주기보다는 아픔에 공감해주고 곁에 가만히 있어주길 바라면서 그에게는 그런 사람이지 못했다.


사람은 역시 반대의 상황에 놓여봐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보다.


내가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주사라도 맞고 쉬는 게 낫다는 그의 말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당장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이 아파 죽겠는데 무슨 병원인지. 약 먹으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나 하고 속으로 불평한 적도 있다.


랬어놓고 나는 신랑보다 더하면 더했지 내 방식대로 고집스럽게 그의 아픔을 대하고 있었다.


매일 아프다고 하면 퍽이나 시끄러웠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라도 얘기를 안 했겠구나 싶었다.


신랑의 몸이 축난다면 나 때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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