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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n 02. 2021

아빠 그 돈을 건네지 마요.

아빠는 포장도 뜯지 않은 돈뭉치를 내게 건넸다.

아빠는 6시쯤, 퇴근시간이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신랑은 7시 40분이 돼서야 집에 온다. 아빠는 아빠의 짝꿍인 엄마가 있으니까 나는 배고파도 기다렸 신랑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그날은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이었다. 젖먹이 아기들은 왜 엄마, 아빠가 밥을 먹으려고만 하면 울고 안아달라는지 어김없이 그날도 밥을 으려고 앉자마자 발목에 매달린 채 뒤로 넘어가게 울기 시작했다.


아직 밥 한 술못 떴는데 또 시작이란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지고 오늘 저녁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녁을 드시고 방에서 쉬고 있을 아빠가 생각났다. 나는 구세주를 기억해낸 것처럼 아빠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소리를 크게 내면 들릴만큼 아빠방은 주방에서 가까웠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른 거 하느라 못 들으셨나 보다 싶어 신나게 달려가 저녁 먹을 동안만 아이를 좀 봐달라고 했다. 나도 반찬들과 흰쌀밥의 맛을 느끼고 싶었다. 하루 한 끼 만은 좀 편하게 먹고 싶었다.


그런데 방에 가서 부탁을 하며 보니 아빠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몇 번 같은 말로 부탁을 하니 일어나서 나오는데 씨라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며 피곤한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졌다.


안 그래도 우리 아빠는 아이들이 무슨 만지면 안 되는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처럼 눈으로만 예뻐하고 보는데 그것 때문에 쌓였던 서운함이 폭발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집에 도착할 때와 잠깐씩 거실로 나올 때뿐이어서 더 화가 났다. 내가 방으로 안아서 데려가야 침대에서 떨어지려 할 때 잡아주거나 손을 좀 만진다거나 한다.


나는 손주 잠깐 보는 게 그렇게 신경질 낼 일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에게 손주 보는 게 그렇게 싫은 일이냐고도 했다. 엄마랑 왜 그렇게 분위기가 다르냐는 말도 했다. 엄마는 집에 있을 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돌봐줘서 엄마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우리가 느끼는 이가 있었다.


저녁 먹을 때 앞으로 아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어기장까지 놓으며 우리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씩씩거리며 주방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데 슬그머니 걱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 아빠 고혈압 있는데 내가 소리 질러서 아빠 혈압 올랐으면 어쩌지.


이제는 밥을 먹는데, 돌아가며 한쪽 팔에 안겨 있는 아기보다 아빠가 더 신경이 쓰였다.


아빠에게  그러고 나서 오분도 안 돼서 아빠가 평소에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아이들을 일부로 찾으러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는 게 떠올랐다. 내가 아기를 데려가면 반가워하며 예뻐한 모습들도. 그런 모습들은 오 분이 지나 떠올랐지만 화는 내자마자 후회가 됐다.


아니, 사실 화를 내면서도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나는 요즘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 화가 나면 조금 주체가 안 됐다. 엄마와 비교하는 얘기는 진짜 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혼자 내가 한 말을 곱씹으며 후회를 했다.




나는 그나마 다행으로 아빠가 크레인에서 추락한 날 철이라는 게 좀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자존심을 세우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쉽게 사과도 못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빠방으로 가 살짝 방문을 닫았다. 신랑과 아이들이 보는 게 부끄러웠다.(실은 아빠에게 화내는 모습이 더 부끄러운 모습인데)


"아빠 고혈압도 있는데 내가 미안해. 아빠가 진짜 힘들어서 그런 걸 텐데 내가 화내서 정말 미안해.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얼마나 힘들겠어. 나중에 컨디션 좋은 날 아빠가 먼저 나와서 아기 한 번 돌봐줘"하고 말했다.


처음부터 저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리를 주어 뜯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빠는 이미 날 이만큼 키워준 걸로 아빠의 몫을 다 했는 건데 서운함을 느낀 건 다 내 욕심 때문이었다.


혹시나 아빠가 내 행동에 화가 나서 사과를 받아주기는 커녕 싸늘한 상태일까 봐 말을 하면서도 너무너무 떨렸다.


그런데 아빠는 내 말이 다 끝나자마자


"그래 괜찮아. 아빠가 오늘은 진짜 너무 피곤해서 그래"라며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착한 아빠에게 무슨 짓을  야하고 말이다.



아빠 그 돈을 건네지 마요.


어버이날을 맞아 두 분께 드릴 봉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별개로 하나를 더 준비했다.

그동안 우리집에는 아이와 개를 키우면서 건조기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생필품은 아니기에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 엄마, 아빠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건조기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사실 따로 살면 그건 선물이었지만 우리도 똑같이 쓰는 거라 말만 선물이지 집에 가전을 하나 장만하는 거와 같았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큰돈을 쓰냐며 건조기를 사는 것에 대해 치켜세워 줬다.


그리고 오늘 건조기가 설치되었다. 나만 집에 있었기 때문에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 가족들이 있는 단톡 방에 올렸다. 다른 가족들은 예쁘다거나 눈에 하트가 달린 이모티콘을 보내거나 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 가장 먼저 온 건 아빠였다. 건조기를 구경하던 아빠가 얼마냐고 금액을 물었다. 나는 신랑이 사서 잘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아빠는 한 번 더 내게 금액을 물었다.


그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리고 아빠가 지금부터 하려 하는 일을 막았어야 했는데. 나는 아빠보다 언제나 생각이 짧았다. 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아빠는 잠시 후 날 부르더니 내가 아빠 방에 다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방문 앞으로 돈뭉치를 가지고 나와 있었다.


아직 중간을 빳빳하게 감싼 포장을 뜯지도 않은 돈뭉치였다. 그리고 그 돈뭉치 위에 또 돈이 한 움큼 올라가 있었다. 나는 순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어버버 했다. 아빠의 얼굴과 돈만 번갈아 쳐다봤다.


왜 이걸 내게 주는 거지? 라는 생각 체 하기도 전에 아빠가 "자" 하며 돈다발이 포함 된 돈뭉치를 내게 넸다.


나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돼서 온 몸으로 저항했다. 강하게 저항했다. 받지 않으려 상체를 반대로 돌리며 손사래를 쳐 보았지만 결국 돈뭉치는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다시 드리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연히 우리가 사 드린다고 했었기에 정말 아빠에게 건조기 값을 돌려받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 돈을 우리 방으로 가지고 오는데 울컥했다.


아빠는 중장비 일을 하며 휴게소를 자주 들르는데 돈이 아까워서 자판기 커피만 마셨다. 그래서 정말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아니까 눈물이 났다.


우리는 할 거 다 하고 쓸 거 다 쓰면서 모은 돈이지먀 아빠는 우리보다 더 힘들게 일하면서도 본인을 위해 쓰지 않고 아끼고 아낀 돈이었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성실하게 같은 일을 한 아빠기에 우리보다 더 잘 버는데도 그랬다.


난 지금도 이 돈을 너무 죄송해서 받을 수가 없다.


아... 난 자꾸 왜 아빠를 울릴까.


아... 아빠는 왜 자꾸 울릴까.


내가 아빠 딸하는 대신 아빠가 내 딸이 되어 속을 썩인다면 기꺼이 당신의 아빠가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이 다시없다.


그러니 정답은 하나다. 지금부터라도 더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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