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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Feb 18. 2022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주말부부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그의 마음이 담긴 진솔한 편지 덕분이었다

6년을 뜨겁게 연애, 결혼을 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알았던 거 같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까지도 글로는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래서 특별한 날이면 우리는 편지 다. 주말부부를 하면서 그는 루가 멀다 하고 내게 편지를 써줬다. 그 편지를 받아 든 나는 풀이 죽어 있다가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깔깔 웃기도 했다. 편지를 읽을 때면 꼭 그의 곁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느낌 들었다.


그가 보내 준 편지는 내게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는 커피 같은 존재였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잠 못 드는 밤 해롭지 않은 수면제였다. 홀로 두 아이를 돌보면서 실수한 일들이 떠올라 자책하는 밤이면 그의 편지는 잘하고 있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로 인해 나는 다시 자신감을 가지고 활력을 얻어 아이들을 더 잘 볼 수 있었다. 그가 써준 편지가 아니었다내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주말부부로써의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까? 


피치 못할 이유로 장거리 연애나 주말부부를 하게 된다면 편지는 그 둘을 이어주는 가장 튼튼한 줄이 돼줄 것이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는 서로의 마음에 닿아 오랫동안 빛날 것이다. 주말부부 끝 났지만 그의 진심이 담긴 편지만은 억하고 싶어 편지의 일부를 기록하려 한다. 그리고 그걸 읽으며 느꼈었던 감정을 글로 남겨 보려고 한다. 




요즘 자기는(복숭이 걸음마 연습할 때 손을 잡아주면서 걷게 할 때처럼) 한 발짝씩 내디뎌서 나한테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뭘 알고 어디까지 알고 무슨 감정인지는 몰라도 쑥쑥 커나가는 복숭이같아. 더 안 커도 더 잘 안 해도 엄청 사랑해. 고마워. 노력해주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가 내게 느끼고 있다니. 아직도 나를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이 꺼지고 내 마음속에도 환한 불이 켜졌다.


외로움과 고요함 속에서 홀로 싸우는 아가야. 나도 정말 힘들었지만 자기 안위부터 늘 걱정이되.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데도 둘 다 힘든 시기잖아. 아가라서 많이 이해가 안 되고 힘들겠지만 자기가 이렇게 고생한 것들 누군가에게는 다 양분이 될 거야. 그게 나도 복덩이도 복숭이도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포함이니까 엄청 많은 수치야. 혼자 외롭게 힘들어하지 말고 복숭이처럼 포효하고 복덩이처럼 짜증 내 아가야.

그는 내가 될 수 없는데, 신기하게도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가 날 생각하는 것만큼 날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걸. 신랑과 복덩이와 복숭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다 양분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니. 나는 숙연해졌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정말  따뜻하고 고마워서 자꾸 눈물이 툭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받아주는 사람이었는데, 신랑은 날 받아주겠다고 했다. 내게 짜증도 내고, 포효도 하라고 했다. 그에게 그럴 수 없었지만, 속이 시원했다. 마음속 엉킨 실타래가 다 풀어진 것만 같았다.


얼마나 절망적이고 힘들었겠어. 게다가 마음은 여리디 여린 아기인데. 애들이 협조적 일리는 없으니. 부모의 무게를 자기 어깨에만 올린 것 같아서 미안해. 이미 틀어진 자기의 하루를 바로 담아 줄 순 없지만, 열심히 일하면서도 계속 빌고 있어. 아가 밤이라도 온전히 잘 잘 수 있게 해 달라고. 아가의 고통스러운 하루가 헛되지 않도록 평생을 우리 가족 받치는 거목이 될게. 사랑하는 하영, 복덩이, 복숭이 다 너무 보고 싶어. 하나같이 찹쌀떡 같은 볼을 가졌지. 사랑해. 오늘은 꼭 잘 자야 해.

나의 고통스러운 하루가 헛되지 않도록 평생을 우리 가족 받치는 거목이 된다는 그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날은 유독 힘든 날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낳은 아이들을 보는 게 고통스럽기까지야 하겠냐는 생각을 하며 그의 과한 표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게 칭찬할 일이 있어도, 위로할 일이 있어도 과한 표현을 사용하여 기분을 좋게 해주는 그가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 나는 그런 든든한 짝꿍이 있었지. 다시 내일을 잘 살아갈 힘을 얻었다.


복덩이는 너무 걱정하지 마 자기야. 정말 착해 우리 복덩이. 복덩이가 조금만 더 알게 되면 스스로 좋아질 거야. 복덩이 입장에서는 모든 사랑을 뺏어간 동생, 파리처럼 달라붙어 귀찮게만 하는 동생일 테니. 내가 복덩이 아기 입장이 돼보면 정말 밉고 쥐어박고 싶을 거 같아. 같은 남자라서 더 이해되는지는 몰라도ㅎ 위험한 행동하는 건 철저하게 혼내고 행동들 많이 체크하고 말로 가르칠게. 우리 가족 중에 사랑이 제일 많은 건 우리 하영이야. 사랑이 많아 가족들에게 상처도 실망도 많겠지만 우리 가족들 다 이어서 행복하게 해주는 게 자기인 것 모두 알 거야. 적어도 나는 알아.

적어도 나는 안다는 그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첫째 복덩이와 둘째 사이에서 나는 한창 애를 먹고 있던 때였다. 너무 위험하다 싶은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내 심장은 쪼그라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같은 남자의 시선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었나 보다. 내가 좀 예민했었나 보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치고받고 싸워봤자 7살과 2살의 대격돌인데 무슨 그리 큰일이 생기겠어. 조금 더 마음을 비워보자 마음먹은 날이기도 했다. 그의 편지는 내가 좀 더 나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사랑이 가장 많다는 그의 말을 믿고 더 큰 사랑으로 가족들을 대하자 마음먹었다.


나의 작은 노력이 힘들고 괴롭기만 한 게 아니라 의미 있게 쓰인 거 같아서 좋아. 자기가 결혼하고 안정 적여 보여도 한 번도 마음 안 졸이고 휴가를 가거나 돈을 쓴 적이 없을 텐데 그나마 조금 보완이 돼서 다행이야. 너무 기뻐 그 점이.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의욕이 생기고 에너지가 생겨. 내 아가들이 이렇게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게 내 행복이야. 엄청 사랑하고 고마워.

매일같이 10시나 11시에 퇴근하던 그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기쁘다고 한다. 아빠가 된다는 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려놓는 일일까? 어떤 마음을 먹으면 힘듦이, 고생이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새삼 그가 대단하고 커 보였다.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내가 돈을 많이 벌어다줘서 편하지?"가 아니고, 이렇게 내게 말을 건네는 신랑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나도 나중에 같이 상황에 처하더라도 저렇게 상대에게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고 생각한 날이었다.  


아가. 작은 것에도 늘 만족하고 생기 넘치는 에너지 줘서 고마워. 자기는 가진 게 풍족함에도 작은 것에도 늘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왔던 게 느껴져. 정말 아기같이 착하고 이쁜 심성이야. 방실방실 웃으면서 늘 같은 탈춤 추는 자기 모습이 생각난다. 음악이랑 비트만 다르고 움직임은 비슷해 ㅋㅋ

내가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드는 걸(흐느적거리는 걸) 아무 거리낌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움직임이 비슷하다는 신랑의 말처럼 아주 미세하게 다르게 춘다고 추지만 모든 같은 춤사위다. 나는 즐겁게 사는 게 좋고, 그래서 자주 신랑 앞에서 깨방정 춤을 췄다. 그와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다. 머리가 하얗게 샌 그의 앞에서 깨방정 춤을 추며 그를 웃게 하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사랑하는 자기야. 자기랑 같이 없는 순간은 늘 불안하고 걱정이 돼. 애초에 아가란 호칭 자체가 착하고 여린 자기 심성에 반해 지은 애칭이었는데, 사회생활도 곧 잘하고 보통 어른들보다 훨씬 뛰어난 부분이 많아서 아기라는 애칭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난 늘 물가에 내놓은 귀여운 아기처럼 걱정이 돼. 슬픈 목소리로 날 찾을 때면 아프지는 않은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안절부절못하게 돼. 비록 몸이 멀어져서 크게 울어도 나한테 들리지 않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니야. 바로 손 뻗어 안아줄 수 없어 안타까울 뿐, 곁에서 내가 다 해서 생글생글 웃는 모습 보면 그걸로 항상 행복해.

처음에 그와 사귀었을 때, 나를 아기라고 부르는 그가 신기하고 그렇게 불리는 게 마냥 좋았다. 그래서 왜 날 그렇게 부르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1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모든 걸 다 해서 내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좋다니. 나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사랑했던 그이는 더 많은 걸 품는 커다란 사람으로 변해 있다. 그의 변화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고맙다. 비록 몸이 멀어져서 크게 울어도 나한테 들리지 않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이 날 안심시켰다. 일이 바빠 연락이 바로바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런 그의 마음을 떠올리며 나는 더 의젓하게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복숭이가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서서 있는 모습이 오늘따라 감격스러웠어. 늘 회사에 앉아 일에 시달리지만 누구보다 관심이 많거든. 우리 아기 셋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자랐는지 돌이 지나도록 밤새 자기 목청 뽐내던 녀석이 이제는 덜 울고 자기 다리로 세상을 지탱하겠지. 고생 정말 많았어.

마지막에 적힌 고생 정말 많았어가 내게 등불이 되어 주었다. 아기가 크는 건 시간이 하는 일이라 여겼던 내게 내덕분이라 말해주는 그가 있었다. 떨어져 있지만 우리 셋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늘 궁금해해 주는 그가 있었다. 그의 격려에 하루의 고단함도 잊고 복숭이도 복덩이도 더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샘처럼 샘솟았다.


일주일을 어떤 맘으로 버텼어 아가. 오늘 괜찮다고 하는데도 기어코 도시락 시켜줬지 자기가. 나는 영양 맞춘 회사 밥 두 끼씩 먹고 별로일 때는 외식도 하면서 잘 먹고 다니는데 뭐가 그렇게 안쓰러웠어. 집에만 있는 자기가 많이 외롭고 힘들지. 늘 나 먼저 챙겨주고 생각해줘서 고마워. 자기도 원하는 거 잘 말해주면 좋을 텐데 너무 아기라서 결정하기가 힘들지. 그런 아기라서 더 좋아 나는. 사랑하고 고마운 맘 평생 가지고 잘해줄 게. 큰 한방보다 잔잔한 파도처럼 풍경처럼 자기 곁에 있어줄게. 사랑해.

정말 가뭄에 콩이나 듯 회사가 조금 일찍 마친 날이었다. 그런 날이라도 제대로 된 밥을 먹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술을 한잔 곁들이며 마음 편히 쉬었으면 했다. 맛있는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에 그를 위해 메뉴를 고르고 배달을 시켜주었다. 비록 멀어서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었지만,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의 사랑과 온기를 느꼈으면 했다. 잔잔한 파도가 된 그를, 풍경이 된 그를 생각하며 그날 밤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나는 자기가 그 누구보다 무엇보다 최우선이야. 정말 진심이야 이건.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내가 평생 책임질 거야. 가장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가장 잘해주고 싶었던 이번 결혼기념일 이렇게 무민이 또 사랑했던 것만큼 해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야. 평소보다 못하겠지만 자기 사랑하는 마음은 늘 커져가. 우리 자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정말 사랑하고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늘 내 부족함 깨닫게 해주는 자기가 아내라서 정말 고맙고 사랑해. 나 만나고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옆에 있어줘. 내가 항상 지켜줄게. 우리 아기는 아프지만 않으면 돼. 사랑해.

아무리 많은 걸 해줘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어서 기적 같단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떻게 신랑 같은 심성이 고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복을 복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늘 그를 귀히 여기고 살고 싶다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결혼기념일을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마음이 한결같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의 편지는 내게 주말부부로 살면서 알게 된 고단함 속에서도 또다시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귀한 편지를 받을 자격이 되는지를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편지에 적힌 나는 늘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나는 사실 그러지 못했는데. 나는 종일 울기만 했고, 투정을 부렸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는데라고 생각한 날들조차 그는 나를 좋게 써주었다. 그래서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 편지 속에 내가 되고 싶었다. 꼭 그러겠다 다짐했다.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이고 울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주말부부의 안정기가 괜히 온 게 아니라는 걸 그의 편지를 되뇌면서 알게 됐다.


신랑의 편지 한 통이면 힘들었던 날이 꽤 괜찮았던 날로 변했고, 다음날 떠오를 해도 기쁘게 맞을 준비가 되었다. 그의 편지는 내 마음이 어떤 상태였던 간에 늘 더 나은 지점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가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건 상대를 아깝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나를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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