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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Feb 12. 2022

신랑 혼자 살던 집의 계약이 끝나간다.

주말부부는 진작에 끝이 났지만, 얻어 놓은 집 계약 기간이 남아 신랑은 평일의 이틀을 그곳에서 지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도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반 주말부부가 되어 지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생활이 좋기만 했던 건 주말부부가 끝나고 다음 주, 그리고 그다음 주뿐이었다. 그때는 평일에 두 번이나 더 신랑이 온다는 사실이 격스러웠다. 하루만 자면 다음날 그가 온다는 게 너무 좋아서 아이처럼 설레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져 있 불안감 없이  같이 살고 싶다. 둘째 아이는 여전히 잠을 잘 자지 않았고, 요즘 들어서는 첫째와 마찰도 잦았다. 첫째는 순한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혼을 낼 때면 이전과는 다르게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감당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신랑이 없는 날에 그런 일이 겹치면 안 그래도 주말부부를 하는 동안 혼자서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힘들었는데 주말부부가 끝났음에도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가 심하게 아프고 난 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주말부부가 되기 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나와 신랑, 어머님이 속한 단톡방에 어머님이 그 일에 관한 글을 올리신 것이다.


내용은 [아들. 방 없애지 말고 주일 한두 번은 거기에서 쉬는 걸로 하지~]였다.


어머님의 글을 봤을 때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껏 어머님이 날 대해주신 걸 보고 어머님께 나도 똑같은 귀한 자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으면서 이제까지 어머님과 맺어온 관계가 살얼음처럼 녹아버린 느낌이었다. 신랑이 오지 못하는 날은 내게 지어진 무게가 더 클 수밖에 없는데 그걸 모르셔서 하신 말씀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문제인데 나를 배제시킨 느낌이 들며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난 그날이 지나도록 그 방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았고, 아셨으면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적어도 이 방에 같이 있는 내게 먼저 물어봐주시면 좋겠다는 걸 말이다.


신랑은 그 글을 보자마자 바로 댓글을 달았는데 [상의해서 할게요 엄마.]였다. 그리고는 내게 바로 전화를 걸어

"엄마가 왜 그러셨지? 이해가 안 가네. 이번에는 정말 실수하셨네. 그건 우리가 상의해서 할 일인데."하고 나를 달랬다.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신랑이 내가 돼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내 마음을 저렇게 잘 알지? 그리고 신랑은 어머님께서 실수를 하셨다고 해도 자신의 엄마인데 어떻게 내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가 있지? '하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같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어머님이 이해가 돼가고 있었는데, 신랑까지 거드니 어머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금세 효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어머님께서 이제껏 내게 보여주신 모습 떠올다. 시댁에 간다고 하면 어머님은 우리에게 꼭 먹고 싶은 걸 물어보셨다. 잡채를 좋아하는 건 나 하나뿐인데도 가족들 모두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도 남을 양의 잡채를 해 주셨다. 집안일 중 자신 있는 건 설거지밖에 없는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부리나케 달려가면 어머님은 애들 있는데 가보라며 장갑을 뺏어 끼셨. 내가 일을 할 때는 더 했다. 그래도 나는 며느리니까 주말에 신랑보다 일찍 일어나 밥을 하러 나가면 번번이 등을 밀려 주방에서 쫓겨났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어서 들어가서 더 자라는 게 어머님의 말씀이셨다. 어머님도 직장이 있으시면서 아침밥을 차려 놓기까지 하시고 밥상보를 덮어놓고 가셨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고단한 순간이면 어머님께 전화를 걸거나 신랑이 포함된 단톡방을 열어 실컷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님은 "아구. 딱하지." 하고 날 안쓰럽게 봐주시고 다독여주셨다. 그렇게 따뜻한 말투는 처음이었다. 내가 전화를 걸 때도 "응. 아가"하고 전화를 받아주셨다. 내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 어머님을 떠올리면서 어머님은 분명 다른 뜻을 가지고 그 말씀을 하신 게 아닐 거라 각했다. 그저 이번에 너무 많이 아팠던 아들이 눈에 밟혀서, 정말 그러다 큰일 날까 싶어서 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하신 말씀이실 거라 짐작다. 40도가 넘는 열이 떨어지지 않고,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아들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이러다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시지 않으셨을까. 그러니까 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그 말씀이 내 가슴에 큰 일렁임을 가져온 것만은 분명했다. 그날 밤 잠을 한숨도 못 잤으니까 말이다. 나는 왜 어머님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할까, 나는 왜 그리도 신랑을 아끼고 사랑한다면서 이것저것 재는 걸까 생각했다. 신랑의 집을 그대로 두자고 말할 수 없는지 자책감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힘든 것보다 신랑의 고단함과 피곤함을 먼저 봐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느라 그날 밤에는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내게 그건 옳은 선택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머님이 내게 엄청나게 큰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어머님의 말을 선뜻 들어드리기에는 나는 너무나 지치고 힘이 빠져 있었다. 신랑이 일주일 간 많이 아프면서 마음을 졸이고, 긴장을 해서 그런지 요즘 뒷골이 자꾸 당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피로가 누적되어 낮에 더 정신이 없었다. 주말부부를 하는 동안 이미 있는 체력, 없는 체력을 다 갖다 써서 난 이미 방전 상태인데, 낮에 깨어 있어도 무엇에 집중할 체력이 되지 않는데. 그렇게 신랑 없이 더 버텨나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신랑을 돌봐야 하기도 했지만, 그런 나를 돌봐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신랑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얘기했다. 나도 진심으로 자기가 조금이라도 더 편했으면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너무 좋지가 않다고 말이다. 주말부부로 떨어져 있었던 기간이 지나 이제는 안정을 느끼고도 싶고, 그동안 느꼈던 불안감도 떨쳐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억울하다고도 했다. 주말부부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집을 정리하는 문제가 이리도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서로는 그 각자가 되어볼 수 없으니까.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당장 내게 다니라고 한다면 한숨이 나고 앞길이 막막할 것 같기도 해서 신랑이 안쓰럽고 대단하기만 하지 그에 대한 원망은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음을 참아내며,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단함을 참아내며 우리에게 오는 그이이기에 나는 그를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를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금 우리에게까지 사랑을 주시는 어머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번에 주말부부를 하며 나는 그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그의 고단함을 보았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더 내 몫을 잘 해내야 하는지를 실감했다. 집을 재계약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리 곤해도, 악천후에도 관계없이 매일 집으로 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랑에게 이주일에 평균 3일을 어머님 집에서 자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다. 어머님 댁은 차로 신랑의 직장에서 20분 거리였다. 적적하실 어머님을 위해 자주 들를 수도 있고, 좋은 방안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신랑에게는 지친 몸을 바로 뉘이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는데 그걸 정리하고 다시 20분을 달려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 반갑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차선책이 그것이었다. 이제껏 신랑과의 사이에서 자신 없는데도 그를 위해 한다고 했다가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낭패를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를 위한답시고 했던 일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적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 속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며칠을 끙끙 앓았던 문제를 드디어 놓아 버렸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부분에서 신랑에게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다른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그에게 맞춤형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덜 피곤할 수 있도록 그가 쉴 수 있도록 더욱더 배려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이 축나지 않게 몸에 좋은 음식도 더 많이 준비해줄 것이다. 말도 지금보다 더 예쁘게 하고,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관계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신랑이 많이 아프고 난 후, 내가 너무 잘 돌봐줬다며 날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르는데 생명의 은인이 이런 결정을 했으니 그도 이해해 주지 않았을까 여겼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우리의 관계였다. 누구 하나가 너무 힘들면 그 관계가 좋게 지속되기 힘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또 바뀔 수 있다는 걸 안다. 그가 더 힘이 들 때면 그에게 다시 집을 얻어줄 수도 있다. 지금은 나를 위해 집을 재계약하지 않은 신랑에게 신세를 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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