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대신, 결혼 전 약속을 지키는 남편을 만났다.
신랑과 6년의 연애기간 동안 함께 여행을 가 본 횟수가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나보다 신랑이 취업 준비를 좀 더 오래 했는데, 스스로가 벌어서 가는 여행이 진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을 하기 전 내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동안 여행을 너무 못 가서 미안하다며 결혼을 해서 그동안 못 가봤던 곳들을 다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 어떤 곳도 내가 원하면 다 가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제 이 사람과 사는데 이게 여행 가는 것보다 더 좋은데 그게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 후 정말 달라졌다. 결혼 후 우리는 주말만 되며 집에 붙어있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함께 맛있는 걸 먹고, 구경하고, 넋 놓고 자연을 바라보고 같은 소소한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은 꼭 차로 한두 시간을 달려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바라는 게 없었다는 건 순 거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못 가본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쉬는 날마다 나갔다.
결혼하고 몇 달 되지 않아 첫 생명이 찾아왔다. 첫째 복덩이는 뱃속에서부터는 물론이고, 태어나고 100일 때부터 우리와 함께 숨 쉴틈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한 끼는 거의 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김밥이나 행사하는 햄버거를 사들고 갔는데 가면서 먹는 그 맛이 얼마나 꿀 맛이던지. 당일치기로 갈 때도 많았다. 경광이 아름답고 실내가 예쁜 곳들을 굳이 예약하지 않아도 나갔다 온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가 꽉 차 버렸다. 살짝 출출한 채로 집에 돌아와 퍼질러 놓고 먹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다.
오며 가는 차 안에서도 그렇게 좋았다. 그와 함께 있기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차가 움직일 때마다 바깥 풍경이 실시간으로 바뀌니 정말 너무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차바퀴가 닿는 그 모든 곳이 우리의 여행지였다. 차 안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이라고는 뒤통수뿐이었지만 뒤통수에도 표정이 있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게 마냥 즐거웠다. 백미러에 비친 눈이 보일 때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다시금 실감이 나기도 했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한정된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낄 새도 없이 서로의 이야기에, 바깥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고개만 살짝 돌리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가 방실방실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목적지에 빨리 가는 건 아무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길을 잃어 다른 곳으로 새도 불평하는 이 하나 없었다.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목적지였고, 곁에 서로가 있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었다.
정말 추운 날, 항구에 대어진 차 안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았다. 차 안은 온도차 때문에 김이 서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손으로 쓱쓱 닦아내고 나니 야경이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와 다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들이,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점점 늘어갔다. 여행지에서 유명한 시장들을 가는 것도 좋아했는데 이것저것 사서 강변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먹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서로만을 보고 서로를 의지한 채 하는 여행은 서로를 더욱 귀하게 만들었다.
나와 신랑은 둘 다 자연을 좋아했다. 사방이 탁 트인 곳, 한 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곳, 고즈넉하게 걸을 수 있는 곳.
신랑은 너른 품보다도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밤하늘의 별이 보고 싶다 하면 자신의 무릎을 내어주었고, 구름이 보고 싶다 하면 뒤로 젖힌 내 허리를 받쳐주었다. 그랬던 그의 다정함은 아이를 낳고도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아이를 위해 특별한 곳이 있으면 관람을 하기도 했고, 동물들과 교감을 하기 위해 목장 같은 곳도 갔다. 나는 아이가 자연에서 놀면 자연의 품만큼 마음의 품이 넓은 아이로 자랄 거라 믿었다. 함께 한 여행이 아이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거라 믿었다. 우리의 소중한 경험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포토북도 여러 개 만들었다.
그는 불평 한 번 없이 우리를 데리고 전국을 다녔다. 그가 변함없는 모습을 내게 보일 수 있었던 건 자신의 편함을 지우고 쉬고 싶음은 내려놓고 오직 나를 먼저 염두에 두고 살기 때문일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가지 말자고 조를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낮잠을 자자고 했다. 그럼 신랑은 잠은 밤에 자면 된다며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대며 나가자고 날 일으켰다.
나는 살면서 신랑의 모습 중 그 어떤 것도 바뀌기를 빌어본 적이 없다. 늘 지금 이대로의 신랑이 내게는 가장 멋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랑의 관한 소원을 빌 일이 있다면, 지금처럼 변함없기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그가 내색하지 않지만 힘든 게 있다면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그가 내 감정을 보살피고 배려해주는 것만큼 그에게 있어 표현이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편한 만큼이라도 그의 마음이 편하기를 바란다.
나는 로또 대신, 결혼 전 약속을 지키는 남편을 만났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매주 여행을 다녀줘서 나는 주말이면 한 주를 살아갈 긍정 에너지를 다시 재충전한다. 지치지 않는 마음을 불어넣는다. 지친 심신을 위로한다.
실은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겐 힐링이고 기적이란 걸 그도 알까. 모른다면 그가 느낄 수 있게 언제나 살가운 아내가 되어주고 싶다. 나도 그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싶다. 앞으로는 그와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그와 함께 하는 이 삶이 여행 그 자체이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자신보다 그가 더 아깝고, 내 건강보다 그의 건강이 더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