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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n 27. 2022

너만큼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아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작은 천사야.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시큰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그건 내가 아이에게 진 빚이 많아서 일 것이다.


첫째 복덩이는 나를 굉장히 많이 닮았다. 남자아이, 여자아이라는 구분을 짓지 않더라도 무척이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복덩이는 다른 이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길 줄 아는 아이다. 내가 다치거나 속이 상한 상태로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다가와 내 상태와 기분을 살핀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 의젓하게 나를 달랜다. 아이의 다독거림이 정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복덩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신랑과 나는 입을 모아 복덩이가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착한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둘째 복숭이는 아직 두 돌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의견이 뚜렷하다. 말을 하는 게 익숙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져", "안가"같은 단어들을 배워서 부지런히 한다. 들어줄 수 없는 일 앞에서 떼를 쓰지는 않지만, 원하는 게 있으면 쟁취할 때까지 애교를 부려 얻어낸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복숭이 같은 아이는 열명도 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집에서의 복숭이 영상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집에서는 얼마나, 얼마나 개구쟁이인데. 높은 모차 발판에 올라가 위험하게 달려있는 건 기본이고 의자를 어디든 끌고 가서 올라가고 까치발을 들어 높은 곳을 탐색한다. 질투도 많아서 형아가 하는 것은 다 해보아야 하고 손에 쥐어보아야 한다.


복덩이는 그맘때 정말 순둥순둥 그 자체여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복덩이가 어린이집에서 짜증을 한 번도 내질 않아요. 혹시나 그게 감정을 드러내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걸까 봐 걱정이 돼요."하고 말이다. 천성이 여유롭고 수더분해서 그렇다는 걸 선생님께 설명해주고 나서야 선생님은 걱정을 멈추셨다. 신랑 또한 나에 비해 유순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지만 신랑 자신이 생각해도 우리 집에서 가장 착한 건 복덩이라고 했다.


첫째 복덩이는 학교에 가는 길에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한다. 하루는 동생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몇 분을 찍지도 않았는데 인사를 여러 번 하는 복덩이를 발견했다. 나는 복덩이가 인사성이 밝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인사를 많이 하는 줄 몰랐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모르는 아이가 인사를 하는데도 기꺼이 받아주시는 어른들이 계셔서 우리 복덩이가 이렇게 인사성이 밝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인사를 받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세상은 언제나 더 따뜻한 곳으로 느껴졌다.


복덩이는 주변에 자신보다 어리거나 약한 상대가 있으면 절대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가서 도와주고 놀아주고 돌봐줬다. 그래서 우리 둘째 복숭이는 옳고 그름이 벌써부터 확실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형에게 맞거나 제지를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좋은 복덩이가 허허실실 하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첫째 복덩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내게 가장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것도 우리 복덩이다. 나는 복덩이의 칭찬을 들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 되어 반짝것처럼 껴진다.


내가 육아에 지쳐있으면, 동생에게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복숭아, 형아랑 놀까?"하고 말을 건네고 내게는 좀 쉬어도 좋다고 안심을 시킨다. 내가 기운이 빠져 한기를 느끼고 떨고 있을 때면 그런 날 발견하고 이불을 살포시 덮어주기도 하고 복덩이의 기저귀를 갈다가 위급상황이 오면 물티슈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복덩이는 늘 내 곁에서 날 지켜주는 작지만 큰 존재이다. 내게 그 까맣고 예쁜 눈을 뜨고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말을 해주고, 스무 살이 넘어도 엄마와 평생 살고 싶다는 말을 건네고, 내가 힘들어 보이면 안마를 해준다.


하루는 복덩이가 차로 이동하는 중 로드킬 당한 동물을 보았다. 너가슴 아프다고 했다. 곁에 있던 신랑은 왜 동물들이 로드킬을 당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해주었다. 개발이 되어 살 곳을 잃는 동물들, 먹을 게 없어 마을까지 내려오는 동물들의 상황 말이다. 그날 복덩이 크면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다. 대통령이 되어야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걸 들어줄 사람도 많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런 연설을 하겠다고 했다. 


"여러분, 가엾은 동물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대로 보고만 계실 겁니까? 우리는 동물들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와야 합니다. 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그들이 살 곳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하고 말이다.


신랑과 나는 둘 다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 복덩이가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아프고, 죽는다는 뉴스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커서 코로나를 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코로나로 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할 거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복덩이는 그거 말고도 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아이다. 또 그만큼 궁금한 것도 많아 자주 질문을 한다. 왜 자동차들은 엔진으로 가야 하냐는 질문 같은 것들 말이다. 복덩이는 과학자가 되어 환경을 위해 공기로 가는 차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덩이의 꿈은 홍익인간의 뜻과도 닮아있다. 어쩌면 더 포괄적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넘어 동물, 자연도 아끼고 사랑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꿈이 많은 복덩이가 내 아이로 태어나줘서 신기할 때가 많았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할 때도, 눈물 나게 좋을 때도 매일이었다. 가끔은 그런 복덩이를 보며 내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소중하다고 말하는, 아이와 싸울 때가 다. 티격태격하는 것까지 합하면 거의 매일일지도 모르겠다. 심할 때는 분을 못 이기지 못하고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다. 나와 너무도 닮은 아이이기에 내가 더 많은 이해를 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러지를 못하는 거 같아 자주 자괴감이 들었다. 오히려 어떤 말을 하면 가장 상처받을 줄 알기에 싸울 때 더 큰 상처를 주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한 일이 늘어만 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얼마 전에도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신랑이 오고 나서야 방에 들어가서 내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복덩이 그런 날 보고 오열을 했다. 그러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울면서 서로 자신이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미안하다고를 수 없이 되뇌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렸다. 가장 사랑해서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은데 싸우고 상처를 줘서 자꾸만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나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자주 복덩이에게 한 행동들에 대해 반성을 했다. 반성을 하는 행위가 잘했다는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오히려 반성할 행동을 했다는 게 후회스러웠다. 아직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았는지, 너무 많은 걸 시킨 건 아닌지, 또 그걸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았는지, 나는 더 자주 그런 것들을 걱정했어야 했단 생각을 했다. 복덩이가 "엄마는 내 마음을 진짜 몰라."라고 하는 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을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다. 나 같은 엄마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게 겁이날 때가 많다. 때로는 내가 아이보다 더 유치하고 속이 좁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면 이런 내가 복덩이의 엄마라는 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엄마라는 이름을 처음 붙여준 것도 우리 복덩이였는데... 나는 그 작고 소중한 아이를 가장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복덩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 어떤 고난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어떤 일에도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엄마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복덩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나는 복덩이에게 "하지 말아.

"라는 듣기 싫은 말 대신 지긋이 눈 감아주는 일을 할 것이고, 무언가를 해달라는 귀찮은 말 대신 더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사고를 치고 난 후에도 뒷수습을 하지 않는 동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는 복덩이에게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것이다. 복덩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복덩이가 처음 걸음마를 했을 때처럼 쳐다보며 감격할 것이고, 들판에 핀 꽃밭을 발견했을 때처럼 복덩이를 바라볼 것이다. 비록 말을 듣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복덩이가 왜 저런 표정과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복덩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한 아이인지 매 순간 일깨워줄 것이다.  언젠가는 조금은 더 좋은 엄마가 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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