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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n 15. 2022

아침에는 훨씬 더 깔끔했는데요.

나는 매일 엄마가 된다.

아이의 등굣길은 걸어서 편도 15분에서 20분이 걸는데, 하필 등교시간에 맞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유모차를 타는 둘째를 데리고 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건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누리는 호사 같았지만, 바람이 불어 옆으로 내리는 비가 매섭게 느껴졌다.


둘째를 한 팔로 안느라 겨우 우산을 들고 서 있는데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흩뿌리는 비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야무지게 우산을 든다고 들었는데도 첫째의 가방, 우리의 팔, 다리까지 서서히 젖어갔다. 그날따라 자주 보이던 택시까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만에 발견한 택시는 예약에 불을 켜고 달리고 있었다. 둘째를 든 팔이 점점 버거워질 때쯤 겨우겨우 택시를 타고 아이의 학교 갔다. 안 쪽에 탄 첫째가 내리기 위해 내가 둘째를 안고 잠시 내려야 했다. 빗발이 거세서 잠시  있었는데도 머리가 다 젖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손이 모자라고,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비 오는 날에는 택시에서 내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기를 한 손으로 안고 우산까지 챙겨 겨우 내렸다. 내려서도 힘겹게 우산을 펴고 집으로 재빨리 달려갔는데 계단을 올라가려다 슬리퍼에 발이 미끌해서 크게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아 넘어지지 않았지만 신이 번쩍 들 정도로 아찔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위험한 순간에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물론 행복감까지 느꼈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별 탈 없이 첫째 등교를 끝마칠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내가 넘어져 다기라도 했음 둘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텐데 그러지 않을 수 있어 너무나 안도하였다. 나중에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봤다.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둘째는 애착 대상이 내 머리카락이었다. 그래서 안겨있는 내내 단정하게 하나로 묶여있는 내 머리카락을 야금야금 풀어놓았다. 나는 그러면 머리가 점점 풀리는데 반 묶음처럼 손질되어 풀리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뭉텅 빠져나왔다. 그런 모습을 우연히 거울로 보게 되면 내 모습에 내가 흠칫 놀래기도 했다. 지금이 그랬다. 둘째가 내 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머리카락은 점점 풀리고 헝클어져서 우스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속도 없는지 나는 그것까지 좋았다. 아이를 보내고 매일같이 어깨에 묻어있는 아이의 아침 메뉴를 보고도 실없이 웃음이 나오던 나였다. 


머리가 헝클어질 수 있는 것도, 단정하게 입은 옷을 버리는 것도 이 아이를 키우며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라고 여기기 했는지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것들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첫째와 외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이가 단정할 수 있게 돌보다 보면 손으로 아이의 운동화 바닥을 만지기도 하고, 내 옷을 타고 오를 때면 내 옷에 발자국이 묻기도 다. 깨끗하게 손을 씻고 남은 물을 내 옷에 닦기도 고, 손에 이물질이 묻었을 때 장난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보며 올 때도 있는데 그러면 나는 어느새 단정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버다.


그럴 때면 이 아이의 오동통하면서도 따뜻한 손을 매일 잡을 수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잡으면 다시는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보들보들한 아이의 손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내게 해주는 한 손이었다. 눈을 맞출 때도, 이야기를 나눌 때도 아이는 내내 반짝거렸지만 내가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나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었다.


학교 앞에서 첫째가 택시에서 내리는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했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 재촉을 한 것조금 더 기다렸다가 아이의 우산을 펴주고 오지 못한 것까지 다 후회가 되었다. 첫째가 우산을 펴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또 펴는 동안 비는 많이 맞지 않았는지 하루 종일 마음에 걸다.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에 관한 일들은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못했다.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도 없고, 대신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어느새 자연스레 나의 일이 되어 있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고단해도 고단하지 않은 그런 일들. 그 일은 내가 이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엄마라고 불릴 수 있는 거 또한 이 아이들이 있어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한 손으로 안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몸집에 순두부처럼 몰캉거리는 둘째는 바라만 보아도 이쁜 나이였다. 침을 흘려도, 잠을 자도, 밥을 흘려도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첫째는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매일 예상치 못한 말로써 날 감동시켰는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걸 보고만 있어도 그저 든든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둘과 볼을 비비기만 해도 좋고 눈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두 아가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게 나는 가끔 믿기지가 않아 이게 꿈 인가하고 볼을 꼬집어 봐야 할 정도였다.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밖에 비가 내려도 내 마음엔 언제나 햇볕이 쨍쨍했고,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생겨도 별 거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었다.


이 두 아이가 있어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가 죽지 않았고, 부끄럽지 않았으며 늘 당당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나의 긍지이고, 내가 살아갈 이유이자 어쩌면 내 전부였다. 이 아이들을 만나고는 나는 같은 상황에 맞닥뜨려도 전혀 다른 생각과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선택은 늘 아이들을 만나기 전보다 나은 것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대각선으로 내리는 비에 옷도 젖고 가방도 젖었는데 내 마음은 젖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는 걸 알기에 불평, 불만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대신 그 상황을 즐다. 아이들과 함께 초조하게 택시를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각선으로 내리는 진귀한 비 구경을 하고, 혹시나 조금이라도 비를 맞지는 않을까, 움직이다 자전거에 치이지는 않을까 온 신경을 아이에게 쏟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온 신경을 쏟을 수 있는 경험 또한 이들을 통해서 하는 귀한 경험이었다. 나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정말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라는 걸 아이들을 키우며 매일같이 느다. 나는 아이들과 살며 매일 엄마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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