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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l 06. 2022

자기 전, 숙제가 있다고 말했다.

너를 들여보다, 내가 비쳤다.

그날도 정해진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기고 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눕기 직전 아이가 말을 꺼냈다.


"아참. 숙제 있다. 엄마 오늘 숙제 있어."하고 말이다.


시간이 지난 걸 알면서도 속아줬는데 또 한 번 크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아이 둘 중 하나라도 잠이 들면 휴식의 질이 달라지는데, 이제와 숙제라니. 나도 이제부터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을 줄 알고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감정은 뒤로하고 선택 해야 했다. 왜, 하필, 지금, 숙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냐고 아이를 다그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없던 일이 되지는 않다. 내일까지 내야 하는 숙제를 안 할 수도 없다. 나는 침착해질 필요가 있었다.


애써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아이의 숙제가 어떤 것인지 들여다봤다. 분명 내 휴대폰에도 문자로 와 있었는데 대게 아이가 학교에서 다 해 와서 그날도 그런가 보다 넘겼었었는데,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래. 이번에도 날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어.'


당연한 듯 화살을 내게로 돌렸다. 그래야 맘이 편했다. 내게로 돌리면 화를 낼 상대가 사라져 버려 소리를 지를 일도 화를 낼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나는 묵묵히 아이의 숙제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다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장착했다. 학교 준비물을 챙기거나 시험지에 사인을 하는 건 해봤지만 아이의 숙제를 곁에서 봐주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껏 집에 숙제를 남겨오지 않고 학교에서 혼자 해낸 게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숙제를 내지 않은 적 몇 번이나  의문도 들었다. 덜렁대는 엄마 밑에서 산다고 이 아이도 쉽지만은 않겠구나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지다가도 숙제를 하지 않고 학교에 가는 대범함이 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나는 아이의 숙제를 곁에서 봐주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늦었던, 그게 자기 직전이었건 이제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주어야지 마음먹었다. 한글을 쓰는 숙제였는데 꽤 분량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는 곧잘 따라와 주었다. 책의 그림과 한글을 다름없이 여기던 아이가 어느덧 한글을 배우고 글을 읽고 쓴다는 게, 또 그걸 내가 본다는 게 마음이 벅찼다. 언제 이렇게 컸지 싶어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도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지금 이대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는 데 그건 아이와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단어나 받침은 내가 다른 종이에 쓰며 순서와 글자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엄마가 선생님이면 참 좋겠다. 엄마는 다정하니까."


그 어떤 사탕보다도 달콤한 말이었다.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마음 행복으로 가득 찼다. 자다가 깨워 숙제가 있다고 말해도 참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묵묵히 숙제만 하는데도 양이 꽤나 많았다. 시계를 한 번 보고 다시금 속에서 화가 꿈틀댔다. 되새김질을 하듯 나와 아이를 위해 좋은 대처가 어떤 것인지를 떠올렸다. 지금 내가 화를 내버리고, 아이가 속이 상한 채로 숙제를 하게 된다면 잠든 내내 악몽을 꿀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일수록 잠들기 전 감정상태가 하루를 대변할 수 도 있다는 걸 이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속이 상한 채로 잠이 들거나 꾸중을 듣고 잠이 든 날이면 악몽을 꾸는지 괴로운 몸짓을 하며 잠꼬대를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국 30분을 넘겨 1시간 가까이가 지나 숙제가 마무리되었다. 아이를 재우고 편히 쉴 수 있을 거란 바람도 시간과 함께 건너가버렸다. 이제는 나도 잠이 와서 그냥 자버리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숙제를 다 끝냈다는 자부심이 들어 왠지 어깨가 으쓱하고 마음은 편안했다.


아이를 재운다고 누워있는 동안 선생님이 보내준 문자를 제대로 보고 미리 체크를 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를 되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나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내 숙제를 봐준 적 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는 숙제에 관한 슬픈 기억이 있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너무 바쁘셨으니까 혼자서 그 답을 찾으러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물어도 나처럼 모르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숙제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숙제를 하지 않고 간 그날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은 사람을 불러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왜 숙제를 해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듯이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 많은 시선들 앞에서 물어볼 부모님도 안 계셨고, 아무리 생각해도 몰라서 하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고작 1학년이었고, 학교 생활이 익숙한 때도 아니었다. 우물쭈물하다가 숙제를 했는데 집에 두고 왔다는 얼토당토 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당장 그럼 집에 가서 숙제를 다시 들고 오라고 수업시간에 날 집에 돌려보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갔는데 어제도 몰랐던 숙제를 오늘 할 수 있진 않았다. 나는 숙제를 했다는 할머니의 사인이라며 할머니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가져갔다.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숙제를 해올 수 있었느냐며 물었었다. 전과라는 게 있는데 그 책에 답이 다 적혀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 덕분에 그 이후로는 전과의 도움을 받아 착실히 숙제를 해갈 수 있었다.


내가 숙제를 했다는 사인이라며 할머니의 성함이 적힌 종이를 가져간 후 선생님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한 걸 보면 내게 그날은 상처로 남았던 거 같다. 따로 불러서 왜 할 수 없었는지 한 번만 물어봐 주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주목 받음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랬기에 우리 아이가 자기 전에 숙제가 있다는 말을 했을 때도, 내 감정보다 숙제를 해야 하는 그 일이 우선이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혹시나 우리 아이가 나 같은 상황을 겪을까 봐 무의식 중에 두려워했던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알면서 나는 왜 미리 숙제를 체크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던 걸까 다시 그 생각을 했다. 그러엄마, 아빠가 몹시 이해가 되었다. 그때는 두 분 다 사업 초기여서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던 시기였기에 내 세세한 것까지는 챙기지 못하셨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아이들을 키워보니 아이들 돌보랴, 일하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어련히 하겠지 아이를 믿어버리고 있으니 두분도 그쯤은 혼자 할 수 있었을 거라 날 믿은 게 아니실까. 


부모의 손이 닿지 않으면 사소한 일이라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자식일 때는 몰랐다. 이제는 숙제를 봐주지 않았다 뿐이지 이제껏 부족함 없이 잘 자랐으니 그것만으로도 두 분을 존경한다.


가 존경하는 두 분이 날 키웠어도 내게는 이런 기억이 있다. 하물며 내가 키우는 나의 아이는...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더군다나 엄마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덜렁대고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나도 복덩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복덩이의 곁에서 세세한 것들을 챙겨주며 다정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어렸을  그런 경험을 한 걸 이제는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 . 내가 겪어봤으니 아이가 곤란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복덩이가 혼자서 종종거리며 불안해하는 일 없도록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 는 복덩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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