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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l 24. 2022

너의 모든 처음이 너를 웃음 짓게 만들었으면.

너의 모든 처음을 엄마가 격하게 응원해!

오늘은 복덩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방학식날이다. 처음이란 건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더군다나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의 첫 방학이라니. 하지만 소와 른 건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째를 태운 모차를 끌고 첫째를 학교 데려다줬다 둘째까지 차에 태워 보내면 바로 출근이었다. 퇴근은 둘째의 하원 시간에 맞춰져 있었는데 둘째 받아 숨을 돌리면 바로 첫째가 왔다. 두 아이들은 안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나이에 요구사항들은 얼마나 많은지 엉덩이를 붙일 새가 없었다. 이렇듯 아무 변화가 없었던 건 엄두를 내지 못해서였다.


그랬었는데 점심때쯤이 돼서 여느 날처럼 둘째 아이의 알림장이 작성됐다는 알람이 울렸다. 사진을 보니 어린이집에서는 과자를 종류별로 담아놓고 뻥튀기를 접시로 쓰는 과자 뷔페가 열리고 있었다. 과자가 담긴 접시 뒤에는 오징어 두루치기부터 해물찜까지 뷔페에 온 것처럼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익숙한 방하나에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관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과자를 배불리 먹고 영화감상까지 코스가 기가 막혔다. 모두가 익숙한 공간에서 그런 이벤트를 했다는 게 더 기가 막혔다. 나는 그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걸 기획한 분은 천재 일리가 틀림없어.'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 여기고 눈을 질끈 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생각이 없었는데 원에서 이렇게 신경을  걸 보고 있자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번뜩 첫째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서도 오늘 과자 파티 열린다는 게 떠올랐다. 마음이 일렁였다. 


문득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매일 첫째가 학교에 갈 때 얼린 물을 챙겨주는데 미리 얼리지 못했을 때는 각얼음과 시원한 물을 넣어 보냉 가방에 넣어준다. 그런데 보냉 가방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거였다. 결국 찾아낸 곳은 신발주머니 안이었다. 실내화와 함께 들어 있었는데 보냉 가방과 물통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도 신발주머니에 다른 물건을 넣어 그러는 거 아니라고 알려줬는데 결국 이 사달을 내다니. 나는 를 참지 못해 소리까지 질렀다. 등굣길에 자신을 위해 준비해준 보냉 가방이 무겁다며 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가는 내게 보냉 가방을 떠넘기던 무수한 날들이 떠올라서 더 화가 났다.

그렇게 나는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만 피웠는데...


오늘을 이대로 넘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서라도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다. 욕심은 없었다. 작은 감동을 주는 정도에서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나도 어린이집에서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종류의 과자를 사서 접시에 담아 진열을 해 놓을까?' 

근데 그러기엔 아이들이 오늘 과자를 너무 많이 먹었음 떠올다. 과자파티를 하고 온 두 아이에게 그것도 좋겠지만 더 좋은 게 없을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계산기도 굴렸다. 요즘 물가가 치솟아 피자와 치킨을 시키면 돈이 꽤 들 텐데. 


감정에 잘 휘둘리는 내 또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건 아닌가 싶어 신랑에게 상의를 했다. 골라놓은 내역을 캡처해서 보여주며 이걸로 파티처럼 해주는 건 너무 과한 지 물었다. 신랑은 바로 하라고 하며 "추억 만들어주는 건데, 우리 아이들한테 해주는 건데 그 정도는 큰돈도 아니잖아."하고 덧붙였다. 나는 간지러운 데를 긁어주는 듯한 그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실행에 옮겼다. 이미 맛이 검증된 만원 후반대의 피자와 배달비가 붙어도 만 이천 원에 살 수 있는 닭강정을 시켰다.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였다. 아이의 흥을 돋울만한 다른 것들이 더 있었으면 했다. 거실 바닥 한편에 한쪽면이 이미 그려진 도화지가 있었다. 그래 이거야! 뒤집었는데 반대편은 다행히 그리기 전 상태였다. 분홍 색연필을 '복덩아 첫 방학을 축하해♡' 하고 썼다. 아이가 들어오면 현관 앞에 서서 이 도화지를 펄럭거릴 예정이었다.


한 번 고개를 든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낳았다. 곧 다가 올 둘째 두 돌을 위해 주문해놓은 풍선 꾸러미까지 손을 댔다. 원래대로라면 그날이 올 때까지 택배 상자 속에서 꼼짝도 않고 있어야 할 풍선들이었다. 막상 뜯긴 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마음 급해졌다. 불기 전 상태의 풍선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러브'라는 글자로 된 풍선이 네 글자에 만만해 보여 가지고 나왔는데 한참을 씨름해도 바람을 넣는 구멍조차 찾지 못했다. 다시 평범한 풍선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막상 불려니 풍선 두 개로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더군다나 두 돌 당일에 그 풍선 두 개가 없어 다 꾸며도 엉성하진 않을까. 도로 가서 풍선은 넣어놓고 여분으로 하나 더 시킨 홀로그램 실버 커튼을 가지고 나왔다. 화려함에 비해 가격은 저렴했다. 2천 원대였다. 다행히 크고 화려하기까지 해서 흥을 돋우기에 제격이었다. 그런데 그걸 들고 나오는데 첫째가 왔다. 나는 손에 들린 걸 팽개치고 바로 달려 나가 도화지를 흔들었다. 아이는 어리둥절 해 하더니 함박미소를 지었다. 아직 음식이 도착하지 않아 상에 차려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문 밖에 있던 피자까지 본 모양이었다.


"우리 복덩이 파티해주려고 엄마가 시켰지." 하며 도화지를 다시 흔들었다. 복덩이는 신이 나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홀로그램 커튼을 달려고 문 앞에서 까치발을 들고 있는데 둘째가 와서 홀로그램을 만지기 시작했다. 힘을 주고는 잡고 흔들기까지 했다. 그러자 홀로그램 커튼은 속절없이 다 찢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문은 그야말로 휑했다. 런데 그걸 아쉬워할 새도 없이 둘은 뜯겨 나온 홀로그램을 온몸에 두른 채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서로에게 뿌리며 깔깔 웃고 있었다.

'그래. 저거면 됐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 문에 달려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닭강정 때문에 피자도 열지 못했다. 복덩이가 가져온 과자까지 상에 올렸지만 상이 꽉 차보이지 않았다.

'파티는 뭐든 푸짐한 게 최고인데.' 

집에 있는 과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포도, 복숭아, 참외, 자두까지. 아이들이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다 보니 마침 종류별로 조금씩 다 있었다. 이제는 진짜 파티였다. 복덩이는 기분이 좋아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었다. 그러고는 계속 반전이라는 말을 했다.

"아침에 혼나고 가서 슬펐는데, 또 이렇게 날 위해서 준비해줬을지 몰랐는데, 정말 너무 좋아."라고 했다. 그렇게 감정을 표현했다. 엄마한테 무척이나 감동했다며 내게 애교를 부리고 춤까 춰주었다. 정말 파티 그 자체였다. 별 거 아닌 거에도 이렇게까지 기뻐해 주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행복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급하게 준비했지만 하지 않고 넘어갔다면 아이의 첫 방학도 기억에서 희미하게 지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는 꽤 오랫동안 첫 방학의 해사한 풍경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웃게 할 수 있다면 엄마인 나는 못할 것이 없다. 추억도, 가족과 함께 하는 집에서의 따뜻한 느낌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기에 자꾸만 해주고 싶다.


저녁에 신랑이 오자 아이는 아까만큼 들떠서 엄마가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상상도 못 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냥 평소랑 똑같을 줄 알고 집에 왔었는 데부터 그게 아니었다며 파티에 관이야기했다. 떠올리며 이야기하는데 그 표정이 무척이나 신이 나 보였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더욱 들떠 방학 때마다 이리 해주겠다 말을 해버렸다. 그러자 아이는 "우리 가끔 케이크도 자."라고 다. 가끔이라는 말을 붙인 것만으로도 날 배려한 게 느껴져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 그러자."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살아가며 아이의 모든 처음 내가 함께 하며 챙겨줄 수는 없겠지만,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좋았던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내가 곁에 없을 때라도 아이가(그때는 성인이 되었겠지만) 처음을 잘 맞이하고, 잘 헤쳐나갈 수 게 되었으면 겠다.


네게 복덩이가 있었기에 초등학생이 된 자식의 첫 방학을 나도 처음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고 싶다. 내게도 너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처음이라고 말이다. 별처럼 반짝이고 달처럼 내 마음을 환히 비추는 복덩이는 내게 있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다. 복덩이가 온전히 자신의 빛깔을 찾고 찬란하게 그 빛을 낼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복덩아. 엄마 아가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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