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Sep 04. 2022

한 번 더 월급이 들어온다면.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에 집니다.

우리 부부는 정말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랫동안 평화로웠다. 그런데 요즘 신랑과 나는 자주 투닥거린다. 여느 부부가 그렇듯 시작은 말 한마디였다. 평소랑 다르게 말을 한 것 같지 않은데 그게 상대를 자극했다. 우리는 며칠만 지나도 왜 싸웠는지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면서 또 싸웠다. 심지어 한 번은 아이들 앞에서까지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못난 모습을 보여버렸다. 그리고 오늘, 다시는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십 년을 넘게 내 곁을 지킨 그는 왜 요즘 내가 더 예민하고 날카로워졌는지 이유를 알고 있을까. 우린 곧, 삼 개월 간을 주말부부로 지내야 하는데 그 때문이다. 내겐 맑게 개인 하늘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도 여느 가을과 같지 않다. 자꾸 서럽고, 내가 이 사람 없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하고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그걸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면 그가 너무 아파할 테니까. 그는 돈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며 모두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할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돈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그가 평일에 집을 떠나 있는 그 3개월 동안 매달 월급만큼의 돈이 한 번 더 들어오는데 그 돈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어려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테니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벌어야 한다.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 한다.


주말부부가 시작되면 익숙지 않은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나는 저녁만 되면 그가 들어오던 현관문을 습관처럼 쳐다볼 것이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걸 나 혼자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이런 것들은 이제 두렵지 않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없다는 그 사실이 두려울 뿐이다. 그가 없는 집에서 나는 점점 무뎌지다가 무너지는 날도 오겠지. 그날은 아이들을 다 재우고 베개를 붙잡고 펑펑 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예 연습이 안 된 것도 아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신랑이 회사 근처에 방을 잡아 자고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 집 모든 규칙이 무너지는 날이기도 하다. 아빠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9시에 자러 가는 첫째가 더 늦게 자고 싶어 하고, 일찍 들어간다 치더라도 둘째가 자지 않고 있어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가 침대 밑에 누워있는 첫째의 위에 뛰어내린다거나 불 꺼진 방에서 "다다다다"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통에 첫째를 재울 수가 없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늦게잔다. 그가 3개월 간 매일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셋은 어떤 형태의 평일을 보내고 있을까. 벌써부터 두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30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고작 3개월인데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는 정말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견디는 그 삼 개월 동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해질 것이다. 그러면 가끔씩 생필품이 아닌 사고 싶은 걸 사고도 꽤 많은 돈이 남을 것이다. 나는 그럼 그에게 당신도 좋지만 돈도 좋아요 하고 고백 것이다.


삼 개월 동안 나는 뭐든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대신 아이들과 익숙한 우리 집에서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 볼 것이다.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이 들다는 말 대신 씻기고, 먹이고, 챙기는 모든 걸 놀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해 볼 것이다. 이렇게 내 마음만 바꾼다면 주어진 일도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신랑에 대한 믿음이 있고, 우리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거리가 멀어지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다. 더 자주 그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더 빈번히 그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매일 집에 돌아올 때보다 더. 아끼지 않고 뭐든지 다 표현할 것이다. 그리움이든 애틋함이든 사랑이든 그를 향해 표현할 것이다.


힘든 순간이 온다고 해도 '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각홰 봐. 그는 놀고 있는 게 아니야. 이 돈이 그냥 벌어지는 게 아니야. 그도 우리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도 얼마나 쉬고 싶을까. 나는 익숙한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그는 혼자잖아.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은커녕 온기 하나 없을 거잖아. 투정을 부릴 건 내가 아니고 그일 텐데 그러지 않잖아.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 빼고 내게 다 준다고 했는데 나는 가만히 앉아 돈을 받으니 복권을 맞은 거나 다름없잖아. 복도 많지. 그가 이렇게 벌어다주지 않으면 어디서 이런 큰돈을 얻겠어.'하고 다 좋게 좋게 생각할 것이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그는 한 번도 빠짐없이 현관문을 벌컥 열고 우리 곁으로 올 것이고, 시간은 흘러 언제 그런 날을 보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우리 곁으로 돌아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을 쳤다. 아직 그가 간 것도 아닌데 자꾸 외롭고 서럽기까지 했다. 큰 일을 앞두어서 그런지 그도 나도 예민해졌다. 그러다 보니 별 거 아닌 일에도 열을 내고 싸우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다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곧 꽤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후회를 남기는 일을 만들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가지고 미리부터 예민해지고 서글퍼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스스로 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힘이 든 날은 혼자 끙끙 앓는 대신 차라리 주말부부가 되기 전 두려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실컷 어리광을 피울 것이다.


이제 남은 한 달. 더는 그를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예민함을 이해해줬음 하는 이기적인 마음 대신 어떡하면 가기 전 그와의 좋은 추억을, 가족 모두에게 기억될 좋은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까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가는 날, 울지 않을 것이다. '주말이면 보는데 뭘'이라는 생각으로 마음 굳건히 먹고 그를 보내줄 것이다. 그래야 그도 가족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그의 재능을 뽐낼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부터 그의 마음이 편한 게 최고로 편한 거라는 좋은 생각만을 가질 것이다. 가화만사성. 이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게 맞다. 




작가의 이전글 시어머니에게 택배를 하나라도 더 보내려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