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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Feb 26. 2021

나는 지금도 그와의 만남이 운명이라 믿는다 <1>

그가 반한 건 사진 속의 나였다.



나는 몸통에 비해 얼굴이 작아서 사진 속 얼굴만 보고는 내가 얼마나 통통한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매일 거울로 내 모습을 보고 사는 나조차도 전신 거울이 아니면 살이 별로 찌지 않았다고 속을 정도였으니. 사실 그때 내 몸무게는 인생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그는 내 친구의 싸이월드에서  사진을 보고 소개를 부탁했다.

굳이 나가서 그의 환상을 깨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 의견을 들어주던 친구가 그때만큼은 날 붙잡고 다시 설득에 들어갔다. 그를 만나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같은 과는 아니지만 교양수업을 함께 듣고 같은 조가 되며 친해졌다 했다. 너무 재밌는 오빠라고, 그 조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라 절대 불편하게 있을 일 없을 거라고 했다. 설사 인연이 아니더라도 만나는 내내 재미있을 거라고.


친구가 이렇게 날 붙잡고 얘기하니 다시 거절하기가 그랬다. 제대로 된 연애험이 없던 내가 이성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하길 바라는 친구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람이고 날 편하게 대해줄 거라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안심도 되었다.


하지만 그가 반한 건 사진 속 내 모습이어서 그와 실제로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었다.



 이름 따위는 ○○○입니다.



그와 만날 약속을 잡기  친구가 내 번호를 알려줘도 되는지를 물어봤다. 만나기로 한 이상 괜찮다고 했다. 


곧바로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의 문자는 몹시 친절했고 내게 호의적이었다.


그는 내 싸이월드에 매일 들어간다고 했다.

내 사진은 모두 비공개여서 볼 것 없을 텐데 왜 매일 들갈까 궁금졌다.


주말농장 처마에서 참새가 새끼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참새 새끼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참새의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나는 부러진 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떨어진 새끼를 애타게 찾고 있을 어미새를 생각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다시 참새집으로 올려주었다.

일화를 비롯해 몇몇 일상 글들 그가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글을 보고 내게 제대로 반했다고 했다.


 우리가 주고받은 문자는 그가 대화를 끌어내고 내가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한참 그러다 보니 나는 그에게 이름조차 아직 묻지 않은 걸 깨달았다. 바로 그에게 이름을 물었고 그가 한 대답은  기억이 날 것 같다.


제 이름을 궁금해 해주시다니요.

제 이름 따위는 ○○○입니다.


내가 뭐라고 저 사람은 자기 이름을 저렇게 알려주지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한 편으로는 하루 종일 그 말이 생각나서 피식피식 웃음이 날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름을 저렇게 알려주는 그의 유머감각 마음에 들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통성명 한 적은 처음이라서 내 마음에 그의 이름이 확실히 각인되었다.


주고받은 문자에서 기억나는 나머지 하나는 내가 답장이 늦으면 몹시 초조했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이다. 다른 일을 한다고 답장을 두 시간 정도 후에 보낸 적이 있는데 기다리다 애가 타서 살이 2킬로나 빠졌다고 했다. 연이되려고 그랬나 그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런 그가 귀여웠다.


그는 만나기도 전에 내게 푹 빠져었고,

나도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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