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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01. 2021

그와의 첫 만남

나는 지금도 그와의 만남이 운명이라 믿는다 <2>

그와의 첫 만남.


그와 처음 만난 건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였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그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그때 사람의 몸에서 후광이 비치는 걸 처음 보았다.  

약속 장소가 백화점 앞이라 지나는 사람도 많았그를 제외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흑백사진 속에서 그만이 색을 입고 움직이는 거 같았다.

내 눈에는 그만 보였다.


게 운명이 아니면 뭘까?


후에 알게 된 건데 그때 우리를 지켜본 건 서로만이 아니었다. 첫 연애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준비부터 만나는 순간까지 힘이 돼준 친구가 함께 있었다.

내 친구는 백화점 1층 로비 쪽에 숨어서, 그의 친구 두 명은 백화점 반대편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내게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물었다.

내게 맞춰 그가 온 거라 나는 웬만하면 모르는 곳이 없었다. 첫 만남에 술은 좀 그렇지만 분위기 좋은 곳을 알아왔다며 괜찮냐고 했다. 나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첫인상이 너무 강렬하고 좋아서 나는 어디여도 장전된 총알처럼  바로 튀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말한 곳은 내 단골집이었다. 

나는 처음 가보는 곳처럼 졸래졸래 그를 따라갔다. 그에게 잘 보이고 었다.


입구에서 가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들어와 앉기전에 의자를 빼주었다.

그런 호의가 계속됐다. 

는 공주님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겁도 많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낯도 가렸다.

아직 는 내게 낯선 사람이었다. 나는 앉을 때 의자 등받이에 최대한 등을 여 앉았다.

자연스레 그와 나 사이에 거리 생겼다.



그와 나 사이, 거리를 무너뜨린 건 릴케의 시였다. 



나는 잔뜩 긴장을 해서 속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티가 날만큼  있었다.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의자에 바짝 붙어 앉은 것도 있었다.


시원한 생맥주가 다. 그가 내 잔을 먼저 채웠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얘진 채로 그의 잔을 채우다 콸콸 넘치게 따라버렸다. 순식간에 넘친 맥주가 식탁을 덮었다. 나는 더욱 당황하고 긴장이 되어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

"죄송해요."


그때 그가 활짝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맥주는 쏟아야 제 맛이죠. 하하."

그 말과 함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신나게 맥주를 닦 있었다. 배려심 많은 그의 행동에 긴장이 풀어졌다.


그는 날 보고 자꾸 생글생글 웃었다. 웃는 모습이 맑은 사람이었다. 그가 점점 더 예뻐 보였다.


그가  내게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의 문이 10개가 있다면 9개가 이미 열려서 왔다고.


오 마이갓!

 

나는 분명 오늘 그와 처음 만났는데 벌써 내게 10개 중에 9개가 열렸다니. 내게 그런 이성이 나타났다는 게 환상같이 느껴졌다. 분명 눈앞에 있는데 신기루 같았다. 방이라도 사라질 말, 방이라도 사라질 사람.


희대의 사기극처럼 느껴질 만큼 그는 내게 너무 젠틀하고 너무 완벽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그의 말과 행동, 더 나아가 이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가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되나 혼란스러운 그 순간 그가 신을 차리게 해줬다.


내 앞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또박또박 뱉어내듯 릴케의 시를 읊은 것이다.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인 걸 알고 내게 잘 보이기 위해 릴케의 시 한 편을 그대로 외워왔다고 했다. 직 진도가 거기까지 나가지 않아 처음 듣는 시였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시보다 세찬 빗방울처럼 내 마음을 두드렸다.

 

나는 더 이상 그가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낯설어서 의자에 딱 붙어있던 등과 허리가 어느새 그가 있는 쪽으로 한껏 당겨져 있었다. 그와 하는 대화는 다 재미있었고, 유쾌했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상체를 당기 집중하고 있었다.


짧은 만남이 끝나고(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내게는 짧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가 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리 동네이기도 하고 그는 다시 한 시간 거리를 가야 했기에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그는 기어코 날 아파트 정문까지 데려다줬다.


나는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할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혹시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였다 느낀 건 아닌지 걱정할 새도 없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넘어지지 않고 잘 들어갔는지 걱정이 돼서 혼이 났다며 다정히 내 안부를 물어봐줬다.  

나는 그에게 벌써 푹 빠져버렸다.


2009년 12월 23일. 그와의 첫 만남.

그가 내 인생에 나타나면서 내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평생 한 번도 받기 힘든 큰 선물이 그날 내게로 걸어 들어 것이다.


그는 지금 내 곁에서 타닥타닥 거리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언제라도 내가 말을 걸면 그때와 같은 목소리로 내게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는 신기루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그와 똑 닮은 아이들이 자고 있다. 그는 내게 운명이었고, 기적 같은 존재이다.

그와의 첫 만남을 꼭 한 번은 글로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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