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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pr 19. 2021

둘째를 낳고 나서는 안 싸울 줄 알았다.

나만의 착각이었나.

둘째를 낳기 전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절대 신랑과 싸우지 않겠다고.


그리고 자신만만했다. 한 번 겪어봤으니 같은 상황에서도 싸움을 요리조리 잘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 번 겪어봤어도 아기가 다르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니 또다시 싸울 일이 생겼다.


니, 어쩌면 싸울 일을 만들었다.

(왜 이런 쪽에서는 이리 부지런하고 생산적이게 사는지)


매일같이 이어지는 수면부족에 극도의 피로 누적됐다. 다크서클이 지금보다 밑으로 더 길어지고 더 검어질 수도 있을까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재돼있던 파이터 기질이 신랑을 향해 불쑥불쑥 나왔다.


신랑도 일하고 퇴근해서 오면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아이들도 나도 신경 써 줘야 하니 더 이상 쥐어짤 체력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 둘은 정말 별 거 아닌 일에도 예민해졌고 그러다 보니 싸움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둘째임에

더 세련되게 싸우지 못했고, 더 조리 있게 싸우 못했다.

어쩌면 그동안 살면서 누적된 벌점이 있어서인지 더 치열하고 더 치졸하게 싸웠다.


싸워도 그 순간만 그러고 바로바로 풀던 우리였는데 두 번 정도 질질 끌면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소금을 뿌려댔다. 각자 내 입장만 고수했다.


떨어진 체력에 서로에 대한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고 누군가 한 명이 진심으로 상대의 아픔을 인정하는 한마디만 하면 끝날 싸움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다만 우리에겐 늘 지켜보는 첫째가 있었다.

일곱 살인 첫째는 이제 말도 너무 잘해서 우리가 싸우는 걸 목격한다면 양가 어른들께 고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우리는 싸움을 끝내면 그만이지만 어른들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아이에게도 우리의 싸움은 천둥 벼락이 치는 것만큼 충격적일 것이다.


우리는 첫째가 보고 있으니 최대한 숨어서 싸워야 했고, 최대한 조용한 톤을 유지하며 싸우지 않아 보이게끔 싸워야 했다. 


지나고 나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저렇게나 신경 쓰며 열심히 싸웠다.


화해할 때는 또 얼마나 격렬했는지 둘 다 눈물을 터뜨리며 서로 미안하다고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벚꽃이 지 듯 시간 앞에서 우리의 싸움은 늘 상대에게 져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희망이라도 있으니 싸우는 게 절망의 구렁텅이로만 밀어 넣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싸우는 걸 원치는 않지만 서로 꽁하게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건 더 싫었다.




요즘 7살 어린이 천사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또 아기 천사 한 명이 우리 집에 있다.

아이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리 아이들의 존재가 늘 기적 같고 감사하다.


신랑도 매일 집에 오면 육아에 지쳐있는 날 돌보고

다리를 주물러주고 신경을 써준다.


그러니 문득 싸울 일이 뭐가 있으며, 서운할 게 뭐가 있을까 떠올려다.


다 내 탓이다.

바라는 게 없으면 서운할 게 없는 데 뭘 그렇게 바라는지 욕심이 끝이 없다.


이번 싸움을 끝으로, 나는 이제 우리 부부 사이에

안정기를 만들려고 한다. 싸울 일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풀고 거의 안 싸우 안정기!


그러면서 내가 이번 싸움에서 깨달은 걸 메모장에 적봤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싸우지 않으려면 이번 싸움에서 원인을 찾고 고쳐나가야 했다.


*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수록 바라지 말고 해달라고 하지 말. 바라거나 해달라는 걸 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서운함이 생기고 그게 싸움이 씨앗이 될 수 있으니까.
바라는 게 없고, 해달라는 마음이 없으면 서운함도 생길 수 없다.

* 간섭하지 않기. 그 사람이 그 행동을 하는 데는 내가 모르는 이유도 있을 수 있으니 함부로 내 기준에서 판단 내리거나 잔소리하지 않기.


나는 엄마이기 전에 이 아이들이 생기기 고대하고 꿈에 부풀었던 우리 둘을 기억한다.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예뻤고, 이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도.


지금도 그 누구보다 소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때로는 피곤한 현실 앞에 무너질 수는 있어도 그도 함께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나는 아이와 함께 커나가는 엄마이기 전에 착하고 마음결 예쁜 아내가 될 것이다.


내편을 위해 반성도 하고 노력도 하는 그런 아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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