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2)

어린 날의 회상

by 시나브로

그때는 차도 많지 않았고 텔레비전도 없어 미리 일기예보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라디오를 듣거나 달력을 보며 절기를 자주 따지기도 하셨다.


구름의 움직임과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으로 다음 날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다. 그때의 어린 시절, 시간의 흐름엔 민감하지 못했던 작고 순수했던 아이는 열매가 익어가듯 소소한 추억들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나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주 특별했던 하루가 떠오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씩 아련한 그림이 되어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 순간이.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그때, 등굣길 자갈길을 걸으며 갑작스러운 비를 맞닥뜨리기도 했었다.


어떤 날엔 운 좋게도 길 지나는 모르는 누군가가 깨끗한 우산을 활짝 펼쳐 그 작은 공간을 함께 나누었던 기억도 생각난다.


이미 비를 맞아 옷이 조금 젖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도 "내 옷이 그분의 옷에 닿아 젖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은근 조바심을 내며 평소보다 몸이 굳은 채 걸었던 날이다.


그날의 기억은 전혀 퇴색되지 않은 채 지금껏 또렷하게 남아 이따금 그날의 조심스러웠던 마음을 일깨우곤 한다. 반듯하게 잘 다려진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받쳐주는 우산을 쓰고 걸었던 날을 고스란히 불러내곤 한다.


곧게 쭉 뻗은 신작로를 말없이 걸으며 학교 근처까지 도움을 받았던 날이다. 그날은 최대한 숨소리까지 죽이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던 날이다.


또 어느 날이었던가. 나보다 더 어린 어떤 학생에게 그 고마운 우산이 되어 주었던 기억도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언제나 학교를 오가며 걷던 시골길은 한쪽은 낮은 산자락이 다른 한쪽으론 큰 냇가가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신작로로 잇닿은 언덕 위로는 계절을 따라 잡초들 사이사이에 활짝 피어나던 크고 작은 들꽃이 시선을 붙잡곤 했다.


유난히 환한 연보랏빛으로 피어났던 쑥부쟁이꽃은 비바람에 몸을 맡긴 채 지금껏 내 가슴속에 남아 기분 좋게 살랑대며 흔들리고 있다.


들꽃들이 진한 초록에 묻혔어도 그 풀꽃들은 끊임없이 피어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던 날의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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