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발러, 이별을 준비하다

by 울산의 카프카

그토록 바라던 연애를 시작했지만 내 마음은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마치 내가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내 머리를 벗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선물을 줄 테니 손을 달라고 하고 내가 그 손을 잡으며 내가 너의 선물이다라는 개똥 같은 소리를 하며 그녀에게 고백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선물인가. 가발 쓴 탈모인 남자 친구가 어떻게 선물이 될 수 있는가. 정말 개똥 같은 소리다. 더 늦기 전에, 그녀가 더 상처받기 전에 어서 탈모임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꽈리를 틀었다.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하면 정말 그녀의 입장에서 ‘개똥 밟았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깊어지면 서로가 그만큼 더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이런 나의 고민을 모르고 단지 내가 데이트 도중 때때로 고민하는 모습만을 보고 편지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내게 전했다.


[나는 너와의 연애가 처음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결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그 편지를 받은 그날 밤 서른을 넘은 나이에 어린아이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녀의 그 마음이 애달프고 그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해서 그저 서글펐다.


가발을 쓴 나와 가발을 쓰지 않은 나와의 싸움은 승자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와의 불안한 관계는 그렇게 지속되었다. 어느 날은 가발을 쓴 내가 이긴다.

‘그래 뭐 어때, 지금 이 모습이 내 모습이야. 그녀도 널 좋아하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도 결혼 생각이 없어 괜찮다고 했잖아. 지금처럼 좋은 관계로 만나는 거야. 만약 탈모의 ㅌ이라도 얘기하는 순간 앞으로 너의 그녀는 핸드폰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될걸’


또 다른 날은 가발을 쓰지 않은 내가 이긴다.

‘이야. 이놈 이거, 머리카락만 없는 줄 알았는데 양심도 없네. 네놈 머리에 날 털은 머리에 안 나고 양심에 났냐? 그녀는 서른이라고.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야. 지금이라도 솔직히 얘기하자.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돼. 진정 그녀를 위한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녀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해. 물론 그 선택의 기회가 이별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사실을 얘기하지 않은 네가 감내해야 할 벌이야’


차라리 도망이라도 치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도, 같이 여행을 갈 때도, 영화를 볼 때도 그 모든 즐거운 시간의 이면에는 치열한 내적 갈등의 연속이었다. 웃으면서 울고 그녀를 밀어내면서도 반대 손으로 다시 잡아당기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헤어짐을 상상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고민의 결론이 내려졌다. 내 가슴속 어딘가 남은 일말의 양심의 승리로 나는 그녀에게 진실을 고백하기로 한 것이다.


진실, 대머리를 고백하는 것은 내게 있어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았다. ‘나 대머리야’는 ‘우리 헤어지자’와 동일한 문장이다. 그래도 지금껏 그녀와 쌓아온 정과 시간이 있는데 카톡으로 이별을 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름 배운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바, 시작과 끝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이 사랑하는 그녀와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그 끝을 최대한 아름답게 매듭짓고 싶었다. 단순히 거짓말쟁이 대머리 사기꾼으로 기억되기보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대머리, 마지막까지 뜨겁게 불타올랐던 대머리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이별여행을 준비했다.


20170527_181501.jpg 그녀와의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를 담양에서. 그녀가 내린 오르막길의 빈 자전거가 내 미래라 생각했다


keyword
이전 10화09. 대머리, 연애를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