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도저히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자기 전에 문득문득 떠올라서 이불을 뻥뻥 차게 만드는 기억. 길을 걷다가 불현듯 떠올라서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를 휘젓게 만드는 기억. 아니, 그런 건 기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왜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 행복한 추억은 쉬이 잊히면서 도대체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히지 않는 것일까. 스물다섯 12월의 어느 날, 그날 나는 그 저주에 걸렸다.
여긴 어디지? 깨질 듯한 두통에 눈이 떠졌다. 눈앞에 보이는 핸드폰을 열었다. 아침 8시였다. 낯선 천장, 낯선 벽지가 인사를 건네 왔다. “너 여기서 뭐하냐?” 정신을 차려야 했다. 바닥에 달라붙은 몸을 억지로 떼어 앉았다. 몸을 지탱한 손에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 가발이었다. 가발이 벗겨진 채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다행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서둘러 가발과 핸드폰을 챙겨 들고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연 나를 맞이한 것은 복도였다. 이곳은 콘도 같았다. 복도 맞은편에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제일 끝에 위치한 대변기실로 들어갔다. 바지를 입은 채로 대변기에 걸터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여긴 어디고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그리고 왜 목숨같이 생각하는 가발을 벗은 채로 자고 있었는지를. 생각정리라고?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머리를 죄어오는 숙취통을 참아가며 나는 지난밤을 회상했다.
스물다섯, 당시 나는 대학교 대외활동으로 한 공공기관의 홍보대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 어울리지 않게 해당 지역의 팀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난밤에는 1년 간의 활동에 대한 뒤풀이 겸 하여 전국에 있는 활동팀들이 모여 1박 2일 동안 활동결과 발표 및 친목도모를 진행했다. ‘그래, 맞아. 그래서 우리 팀원들과 함께 주최사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었지.’ 콘도에 도착 후 강당에 모여 수료식을 진행하고 식당에서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더라’
머리가 하얗다. 화이트보드에 쓴 글씨를 낡은 지우개로 대충 지운 느낌이다. 닦다만 글씨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제대로 보이지 않아 해석되지 않는 기분이다. 핸드폰에 무슨 힌트가 있지 않을까? 통화목록을 살피고 메시지를 뒤진다.
[준병 : 야 적당히 마시라. 머리 안 벗겨지게 조심하고] 친구 준병이로부터 온 메시지를 보자 거짓말같이 지난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악몽이 덮쳐왔다.
이십 대 젊은 청춘들이 모인 날이다.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남녀로 수백 명이 모였기에 지역별로, 또 층별로 삼삼오오 술 마시는 방을 정해 방에 모여들었다. 누구의 권유였던가. 우리 팀도 술 마시는 방에 초대받아 술자리에 참석했다. 어색한 사이를 풀기 위해서, 한 잔 두 잔 술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흥을 돋우기 위해 술자리 게임이 시작됐다.
“오빠, 죄송한데 벌주 좀 마셔주면 안 돼요?” 술자리 게임이 그렇듯 벌주가 있었다. 그날따라 나는 왜 이리 술이 달았을까. 그리고 왜 하필 그 방에 우리 팀원들은 나를 제외하고 다 여자였을까. 나는 흑기사를 자처했다. 미모의 팀원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스스로 대머리임을 인정하고 여성이나 연애에 대한 마음을 포기했던 터였다. 단지 팀장이라는 책임감, 그리고 남자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나는 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술을 마시다 보면 가끔 스스로 취했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괜찮은 것 같지만 그때는 이미 만취한 상태다.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스물다섯의 나는 몰랐다. 그래서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가 친구 준병이에게 전화를 걸고 복도에 서서 고민을 했다. 이쪽은 잠자리 방, 저쪽은 술자리 방. 어디로 갈 것인가. 일어나는 나를 보며 ‘빨리 오세요’라고 말하던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지금 술자리 방에 들어가면 진실게임도 하고 오랜만에 여자들과 얘기도 하고 즐거울 텐데라는 유혹이 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금이라도 자야 가발을 쓰고 자도 벗겨지지 않게 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성이 일깨운다.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는 가발러. 복도에 선 탈모인은 선택을 하고 문고리를 잡는다. 술자리 방이었다. 그리고 방문에 들어간 이후 필름은 끊겼다.
역시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지금 이게 무슨 꼴인가. 화장실 대변기에 앉아 한 손에 가발을 부여잡고 지난밤 기억의 파편들을 억지로 조각모음 하고 있는 이 꼴이. 제일 중요한 기억을 다시금 애써서 복원하고 있을 때 노력을 덜어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 2명이 소변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 어제 그 사람 기억나냐?”
“누구? 대구 팀장?”
“어, 어. 술 잘 마시는 척 흑기사 하면서 까불더니, 나중에 술 취해서 가발 벗겨졌잖아.”
“헐, 진짜? 난 왜 못 봤지?”
“너 그때 이미 술 취해서 자러 간다고 가고. 아! 진짜 웃겼는데. 너도 봤었어야 했어. 자기도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기절한 척하더라고. 그래서 몇 명이 가발이랑 들고 잠자는 방에다가 업어다 줬잖아”
“미쳤네. 야. 이제 그 사람 쪽팔려서 어떻게 사냐? 그 방에 여자들은 없었어?”
“당연히 있었지. 아! 생각할수록 진짜 웃긴다. 혼자 폼은 다 잡더니. 나 같으면 자살한다. 대머리 새끼”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대변기에 앉아 있었다. 이대로 대변기 위의 배관에 목을 매달아 삶을 마감할까 하는 생각이 목을 조여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뜬금없이 김치 왕뚜껑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해장은 좀 하고 술 깨서 다시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 사람들의 대화로 추측컨데, 지금은 아침식사 시간일 것이다. 식사 후 해단식도 하고 하면 출발은 더 이후의 일일 것이었다. 이미 보여줄 것 다 보여줬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이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해단식에 참가하면 들릴 그 수군거림,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느껴야 할 지옥 같은 시간들. 답은 정해졌다.
[담당자 님, 대구팀 노성종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지금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외활동 주관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준병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지금 자다가 머리가 벗겨져 이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대머리임을 보여줬다고. 지금 화장실에 숨어서 내 대머리 욕하는 걸 듣고 있다고. 내가 차라리 실수로 성기를 노출했어도 이렇게까지 부끄럽고 죽고 싶지는 않을 거라고 울먹였다. 말없이 내 얘길 듣고 있던 준병이는 말했다.
“야이, 병신아. 그러니까 내가 술 적당히 마시라니까. 넌 왜 이렇게 내 말을 안 듣냐. 너 지금 돈 없지? 택시비 줄 테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가발 잘 챙겨서 택시 타고 와라.”
나는 그러겠노라고 주억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한 번 터진 울음은 쉬이 그쳐 지질 않았다. 가발을 다시 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속된 말로 남자가 술 먹고 필름을 끊길 수도 있는 건데 왜 대머리한테는, 가발러한테는 그조차도 욕심이고 이토록 큰 잘못이 되는 것인지 너무 서러웠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가발을 손에 든 채로 화장실을 나섰다. 복도에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나를 쳐다봤지만 애써 무시하며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그래, 봐라. 실컷 봐라. 이게 대머리다. 너희는 안 빠질 것 같지? 너희 남자 친구는 탈모가 안 올 것 같지? 두고 보라고!’ 그렇게 심성도 벗겨진 대머리는 벗겨진 머리로 가발을 손에 든 채로 도망을 쳤다. 지난밤의 흑기사, 다크 나이트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미친놈 뜀박질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오는 내내 눈물로 범벅이 된 내게 준병이는 꾸깃꾸깃한 지폐와 모자를 건넸다.
“택시비 계산하고 모자 쓰고 따라온나.”
준병이는 나를 이끌고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김치 왕뚜껑 컵라면 하나면 된다는 내게 순대국밥을 시켜줬다. 나는 순대국밥을 바라보며 첫마디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순대국밥은 먹어라.” 그러고는 순대국밥을 다 먹을 때까지는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고는 공격적으로 순대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복스럽게 순대국밥을 먹는 그를 보며 나도 순대국밥을 한술 뜨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입안에 퍼져가는 순대국밥의 깊은 맛과 몸으로 흘러가는 순대 국물의 혼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죽고 싶다는 녀석이 순대국밥을 싹싹 긁어먹은 상태였다. 민망했지만 다시금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일단 한숨 자라.” 준병이와 같이 원룸 집으로 돌아와 준병이가 깔아준 이불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배도 부르고 창문에 비치는 햇빛이 기분 좋게 몸을 덮어왔다. 잠이 솔솔 왔다. 그렇게 잠이 든 채 눈을 떠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일어난 나를 보며 준병이는 말했다.
“마, 지금도 죽고 싶나?” 배불리 먹고 푹 자다 일어난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니 자살의 반대말이 뭔지 아나? 살자다, 살자. 죽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거꾸로 보면 또 살자는 마음도 강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또 막상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한숨 자고 나면 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널 처음 본 사람들, 앞으로 네가 살면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죽으려고 네가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왔나? 5년만 지나 봐라. 그 사람들은 너도, 그리고 그날 일도 기억도 못할걸. 그리고 너 역시도 언젠가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 이런 일도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며 웃을 때가 올 거다. 그때까지는 한 번 살아봐라.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하니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날을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찬다. 그러나 이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날 무모하게 술을 마셨던 나를 떠올리며 반성하고 가발을 주섬주섬 주워 들고 도망치던 나를 회상하며 헛웃음 짓는다. 자살의 반대말인 살자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결과다. 그날의 욱하는 수치심과 분노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 절망에서 주저앉고 감정의 되새김질을 계속했다면 누릴 수 없는 사치일 것이다. 인생은 아름답다. 똥밭에서 굴러도 살아있어야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날 묻었던 똥의 냄새가 이제는 아주 조금은 구수하게 느껴진다.
아, 그리고 내가 흑기사를 했던 그분들께서는 그날 가발 도주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물론 나도 살면서 다시는 흑기사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