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우리 부부는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게으름뱅이가 되곤 한다.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마치 어린 시절 즐겨먹던 국자 위에 달고나처럼 침대 또는 소파에 눌러붙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누가 먼저 씻을 것인가. 먼저 씻는 사람은 씻고 나와서 아직 씻지 않은 사람을 비웃을 자격이 주어진다. ‘에이 더러워’ ‘뭐야, 이제 내가 너무 편해진 거야? 씻지도 않고. 냄새 나’ 등등. 가히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주말이란 마법 때문에 일어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둘만의 소리 없는 눈치게임을, 달리 말하면 아이 없는 부부의 애정 어린 장난을 매주 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주말에서 승자는 내가 된다. 가끔씩 나조차도 혐오스러운 가발 벗은 나를 이쁘다고, 귀엽다고 쓰다듬어주는 와이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일까. 아니면 가장이란 책임감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조급한 성격 탓인지 평일 출근 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간단한 청소와 분리수거, 빨래를 알아서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집안 정리가 되면 욕실로 향한다. 집안일을 하며 묻은 먼지를 씻어냄과 동시에 욕실 청소까지 하면 스스로 정해놓은 주말 오전에 해야 할 의무는 끝이 난다.
이번 주 역시도 내가 승리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방을 보며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인 와이프를 어떻게 깨울까. 또 무슨 말로 놀릴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안방으로 향했다.
방문 너머로 청소하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정말로 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못 듣고 싶었던 건지 와이프는 이불을 꼭 껴안고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또 얄밉기도 해서 볼과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잠을 깨웠다.
“일어나. 남편은 벌써 일어나서 집안일 다 했는데 왜 아직 자고 있는 거야?”
누르면 녹음된 소리가 나오는 어린 시절의 곰인형처럼 와이프는 눈도 뜨지 않고 자동반사처럼 대답했다.
“여보 너무 멋있어. 여보가 최고야.”
알고 있으니까 어서 일어나라고 보채도 지난밤 몇 시에 잠들었는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땐 역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더티, 여보! 냄새나. 어서 일어나서 씻으라고. 아이고 냄새야.”
그 말에 슬그머니 와이프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며 목소리에 생기에 담긴다.
“여보는 씻었어?”
“그럼, 당연히 씻었지. 방금 전에 딱 씻고 와서 얼마나 뽀송뽀송한데.”
이불을 감싸 안고 있던 와이프의 한쪽 손이 풀리면서 더듬더듬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내 말이 진짜인지 점검을 하는 모양새였다. 그럴 시간에 눈을 떠서 제대로 보면 되겠건만 굳게 내려앉은 눈은 올라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어느새 제2의 눈이 된 와이프의 손은 내 팔을 쓰다듬으며 올라와 얼굴을 만지고 머리카락을 두들겼다.
“머리도 감았어?”
“당연히 감았지.”
“그런데 왜 머리에 물기가 없지? 그것 참 이상하다. 이상해.”
잠꼬대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는 와이프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용히 일어나 안방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혼자 있고 싶었다.
탈모가 안 좋은 점이 뭐 한 두 개겠냐만은 그중에 하나가 씻어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머리를 통해서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 확 티가 나는데, 탈모인은 머리를 통해서는 시각적으로 구분이 어렵다. 특히 나와 같은 중증 탈모는 가운데 머리카락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소위 머리가 떡질래도 떡질 수가 없고 씻어도 물기가 금방 머리에서 증발되어 버린다. 머리를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거울만 보면 나조차도 헷갈릴 정도이니 말 다했다.
몇 시간 뒤 푹 자고 일어나 씻고 나온 와이프의 얼굴은 밝았다. 풍성한 머리카락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주말 오후의 눈부신 햇살을 만나 허공에서 빛으로 쪼개졌다. 찬란한 머리카락의 향연이었다. 오전에 잠결에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와이프는 머리를 흩날리며 내게 늦은 점심을 재촉했다. 나 역시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중국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평범한 주말 오후로 돌아온 것이다.
짜장면을 비비며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했지만 말하면 되려 더 구차해질까 싶어 하지 못했던 말을 짜장면과 같이 삼켰다.
“여보, 고민하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집중해서 자세히 머리를 만져보면 아침이슬 같은, 가습기 구멍 끝에 맺힌 습기 같은 것이 느껴질 거야. 그게 물기야. 나 머리 감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