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번 추석 연휴에 가발 예약을 잡을 수 있을까요?”
수화기 너머로 좋다는 대답이 들리자 심장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5만 원 하는 패션 가발이 아니라 유명 브랜드의 맞춤형 가발을 맞추게 된 것은. 예약만 했는데도 벌써 내 진짜 머리가 생긴 것만 같았다. 스물일곱의 가을, 나는 그렇게 광양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로 몸을 실었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나는 취업에 실패하고 대신 인턴사원으로서 광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인턴에 불과했지만 숙소와 1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주었고 무엇보다 일자리 체험 학습형 인턴이었기에 업무적인 것보다는 업무를 대하는 기본태도와 사회생활의 마음가짐 등에 대한 배움이 주였다. 다시 말해하는 일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심각한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새로이 들어선 정부에서 청년들을 위한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 또 취업을 위하여 소위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한 정책이었다. 내가 속한 팀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게 별다른 업무를 지시하지 않고 대신 근무시간에 공부를 시켰다. 업무를 지시하자니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을 사람에게 회사의 정보를 오픈하기가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고,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실상 일을 가르쳐서 업무에 활용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취업에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단순 복사 또는 식당 예약 등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첫 월급이 나왔다. 세금을 제하고도 백만 원이 넘는 돈이 내 명의의 통장에 입금이 되었다. 기쁘기도 하였지만 이 돈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불편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하기에는 여기에서 나란 사람이 조직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월급이 공돈처럼 느껴졌다. 길바닥에서 주운 500원처럼. 그리고 주운 공돈은, 불편한 돈은 빨리 써버려야 한다는 미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푼도 남김없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 써버리기로 다짐했다.
인턴 동기들은 첫 월급으로 부모님 선물을 사던가 아니면 저축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구차한 변명 같게도 이런 공돈으로 아버지 선물을 사거나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은 나중에 내 피와 땀이 묻은 돈으로 하겠다는 바보 같은 신념, 위선이 그때 당시의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찰나 동기 중 한 명이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던 명품지갑을 샀다고 했을 때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명품지갑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던 고가의 명품이 내게도 있지 않는가. 바로 가발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24살부터 착용해왔던 패션 가발. 4년 동안 적게는 5만 원에서 많게는 7만 원까지 하는 패션 가발을 십여 차례 바꿔 쓰면서 늘 광고 속에 나오는 유명 브랜드의 자연스러운 가발을 동경해오지 않았던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인모의 부드러움. 실제 두피와 같은 정수리 스킨 처리, 무엇보다 자기 머리에 맞춘 자연스러움. 그런 것들은 내게 있어 닿을 수 없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었다. 몇 달이 지나면 수명을 다한 고목나무 갈라지는 듯이 갈라지는 패션가발의 머릿결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컨디셔너를 바를 때마다, 여름날 통풍이 되지 않아 땀으로 흥건했던 정수리를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찬물로 식힐 때마다, 내 머리에 맞지 않아 늘 화가 난 듯 떠 있던 패션가발의 옆머리를 매일 아침 드라이로 볼살 뜨겁게 누를 때마다, 그 순간순간마다 브랜드 가발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그러나 그렇게 소망했던 브랜드 가발을 곧장 떠올리지 못한 것은 최소 백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 늘 걸림돌이었고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큰돈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지금 이 순간, 모든 조건이 맞춰졌다. 당장 써야만 하는 딱 그 정도의 돈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인턴 첫 월급을 브랜드 가발을 사는 것으로 내 남은 머리에 맹세했다.
어렵사리 브랜드 가발을 사는 것까지 결심은 했지만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가발을 갈아 끼우는 타이밍이었다. 지금까지 대학생이었기에 대학생의 특권인 방학을 이용하여 가발을 바꿔왔었다. 그러면 머리가 길어졌든, 짧아졌든, 펌으로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든 사람들은 ‘아, 방학 동안 머리가 길었구나’ 또는 ‘안 본 사이에 머리 했네.’라고 생각을 해주었다. 방학은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내게 가발 갈이를 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턴 생활 중이었고 그 정도의 시간을 가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5개월 동안 헤어스타일이 하나도 변화가 없다면 그것 또한 의심을 살 일이다. 그럴 바에는 다가오는 일주일 정도의 추석을 이용하여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면 어떻게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내 도전정신에 불을 지폈다.
추석 연휴 첫날. 드디어 서울 논현역 인근의 브랜드 가발업체에 입성했다. 지금까지는 패션 가발을 인터넷으로 사서 동네 미용실에 가서 자르거나 아님 서툰 가위질로 직접 자르고 했었는데 대한민국의 수도, 게다가 그 중심인 강남에 가발을 맞추러 오다니 말 그대로 감개가 무량했다. 고작 미래가 불확실한 인턴사원, 게다가 첫 월급 전부를 털어서 이곳에 왔으면서도 이것이 성공인가 하는 허영심까지 들었다.
처음 가발업체에 방문하게 되면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피와 모발 상태를 확인한다. 어느 곳에 모발이 없어 이곳을 보완해야 하는 등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가발 형태를 결정한다. 그리고 두발을 측정하고 맞춤형 가발 제작에 들어간다. 제작에는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가 소요되는데 제작이 완료된 후에 다시 업체를 방문하여 자신이 원하는 머리 스타일로 스타일링한다. 이후 정기적으로 업체를 재방문하여 관리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나는 추석 기간 동안 가발을 맞춰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제작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두발을 측정하고 그날 바로 두발에 맞는 기존의 커스텀 제품을 착용 후 스타일링에 들어갔다.
“고객님, 혹시 희망하시는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아, 그건 정말 믿고 맡기셔도 되시고요. 그것 말고 스타일에 대해서는 원하시는 거 없으세요?”
“자연스러움.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습니다. 아! 감히 바라자면 지금 쓰고 온 기존 가발의 기장을 고려해서 크게 티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지만 가발러가 바라는 가장 최우선 순위는 자연스러움이다. 누가 봐도 어색하지 않고 가발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투블럭이든, 솔리드 컷이든 스타일은 차후의 문제다. 아니, 차차차차차차차 차후의 문제다. 일단 멋이 있기 전에 자연스러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나의 경우에 자연스러움 앞에는 하나의 단서조항이 더 붙었다. 지난 머리와 비교해서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 이를 위해 업체 실장님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고 가위를 잡은 손은 매섭게 움직였다.
한 시간 후 완성된 나의 머리는 상상 속에서 꿈꿔왔던 용과 다를 바 없었다. 손길을 스치는 부드러운 인모의 감촉과 최신 과학기술의 접목한 두피 스킨은 흡사 실제 두피와 같았는데 바람이 얇은 스킨층을 뚫고 들어가 정수리가 숨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지난번 머리보다 길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실장님. 너무 마음에 들긴 하는데, 지난번 머리보다 티가 나게 길지 않을까요?”
“고객님.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머리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아서, 이 정도 길이 변화는 잘 모를 거예요. 그리고 고객님도 잘 아시겠지만, 가발이란 것이 일반 머리처럼 자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너무 많이 잘라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지금은 이 정도로 컷 하시고 다음 관리받으실 때 본 머리랑 같이 조금씩 커트하시는 게 맞으실 것 같아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회사에서 자기 일 하기 바쁘지, 누가 인턴 나부랭이의 머리를 그렇게 신경 쓸까. 또 이와 같은 고급 가발 샬롱에 처음 온 나보다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근무해온 실장님의,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 맞춘 가발을 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광양으로 돌아갔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나는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친한 동기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잡았다. 인간적으로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바뀐 내 머리를 동기들에게 먼저 검사를 받고 싶었다. 외모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20대들이므로 이상하면 바로 눈치를 챌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사전 점검 차원이었던 것이다. 우려와 달리 동기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머리 했냐는 동기들의 질문을 준비했던 답변, “명절이기도 해서 기분전환으로 조금”라며 능청스럽게 넘기며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난 5점 만점의 4점짜리 평점으로 평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망의 추석 연휴 후 첫 출근날이 되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준비를 해서 30분 더 거울 앞에서 머리를 가다듬었다. 꾸며낸 자연스러움일지라도 극에 달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는 법. 죽은 머리카락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그 어느 때 아침보다도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네’가 튀어나왔다. 출동 신호였다.
오늘 아침 기숙사 내 방 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는지 같은 팀 내 누구도 내 머리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단지 의례적인 연휴 인사 및 덕담을 주고받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머리에 대한 무관심이 되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건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반증일 테니까 말이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성종 씨 머리가 왜 이렇게 길어졌지? 연휴 기간 동안 머리가 이렇게 길어질 수가 있나?”
그는 같은 부서에 속하는 다른 팀의 과장이었는데, 처음 인턴 발령 인사를 건넨 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같은 층, 같은 부서에 바로 옆 팀의 사람이기는 했어도 그는 현업이 바쁜 과장이었고 나는 타 팀의 인턴이었기에 서로 마주칠 일도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연휴 인사를 하러 우리 팀에 온 그에게 눈에 띄고 만 것이다.
“명절이기도 해서 기분 전환으로 스타일을 조금 바꿨습니다. 하하.”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준비된 답변이 아닌 먼젓번 동기들과의 평가전에서 써먹었던, 현재의 대화 문맥상 맞지 않는 답변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머리 스타일을 바꾼 건 알겠는데, 일주일 만에 사람 머리가 이렇게 한 번에 길어질 수 있냐는 말이지. 이상하게 말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내가 내 표정을 보지 않았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를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마치 천적을 만난 것처럼. 머리 전체를 날카롭게 훑는 그의 눈빛에 나는 뱀 앞에 개구리처럼 쪼그라들었다. 어느새 꽉 쥔 손에서는 땀이 배어 나오고 이마에 붙여놓은 가발 고정 스티커는 식은땀에 젖어 접착력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때마침 나타난 팀장님 덕분에 대화 주제가 바뀌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먹잇감을 놓친 것이 못 내 아쉬운지 자기 부서로 돌아가는 중간에 나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난 너의 머리의 비밀을 밝혀낼 거라고. 저격수의 등장이었다.
그가 보낸 의미심장한 눈빛과 달리 나는 그때의 그 위기를 벗어난 것만으로 이 모든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와 내가 마주칠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처음으로 내 변한 머리를 봤기 때문에 입을 댄 것이지, 다음에 볼 때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오십이 다된 그 과장이 내게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서 내 머리의 인위성을 탐정 코난처럼 파헤치고, 아니 벗겨내려고 혈안이 되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그 저격수를 오판한 아주 안일한 생각이었다.
당분간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예전처럼 나는 팀의 망부석으로 존재했다. 누구도 나의 머리에 대해, 아니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저격수와의 관계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 면에서 쓸데없이 크다고 생각했던 사무실이 도움이 되었다. 바로 옆 팀이라고 해도 한참을 떨어져 있으니 쉬이 말 걸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였던가.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사실이 못내 아쉬웠는지 출퇴근길에 마주치면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나는 그가 괜한 말을 붙일까 두려워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황급히 도망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성종 씨, 성종 씨도 이리로 와서 떡 좀 먹 지그래”
오래간만에 팀에서 일이 생겨 우편물을 수령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부서장이 나를 불렀다. 사무실 한 중간의 원형 테이블에 떡이 올려져 있고 그 주위로 부서 전 인원이 둘러서서 떡과 차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 누가 떡을 돌려서 말이야. 잠깐 모여서 같이 먹지”
가벼운 목례와 감사인사를 드리고 챙겨주시는 떡과 차를 받아 모임에 끼었다. 인턴이지만 그래도 막내라고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아님 이야기 주제가 필요했었는지 주변에서 있던 여러 사람이 질문을 해왔다. 회사생활은 어떤지, 타 지역에서 이렇게 먹고 생활하는 것에 불편함은 없는지, 동기들 중에 관심 있는 여자 친구는 없는지 등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고 나는 어떤 질문에는 과장되게, 또 어떤 이야기에는 우스꽝스럽게 대답하면서 사람들을 웃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때였다.
“그런데 그거 성종 씨 머리 맞아?”
웃고 떠들며 방심하는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던 그가 질문을 던졌다. 실수였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한순간 그의 위치를 놓친 것이다. 십여 명이 모여있었기에 앞줄에 없던 그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멀치감치 떨어져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환상적인 공간 침투였다.
“네? 잘못 들었습니다?”
‘네’라니! ‘잘못 들었습니다?’라니. 무너진 수비라인에 맞이한 1:1 위기였기 때문일까. 너무나 당황한 나는 군대에서 쓰던 말투로 되받아치고 말았다.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리라. 그래도 나름 4년의 가발러 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겪어온 탈모인인데 정말 쉽게 패닉에 빠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때도 얘기했잖아.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빨리 자랐는지 궁금하다고. 혹시 가발 아니야?”
그의 입에서 마침내 가발이란 단어가 나와버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완벽한 결정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단 둘이 있는 자리도 아닌 부서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나의 가발을 저격하는 그의 독심이. 내가 진정 가발임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던지길 바랬던 걸까.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나 역시도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먼저 공격을 허용했지만 서둘러 정신을 가다듬고, 4년의 가발 경험과 그리고 첫 월급을 때려 박은 브랜드 가발을 믿고 일생일대의 연기로 방어에 나섰다.
“무슨 말씀이세요 과장님. 아니, 이런 가발이 어딨어요? 제 머리가 반곱슬인데 이번에 스트레이트로 피면서 조금 길어진 것처럼 보이시는 거예요.”
말을 하며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머릿결을 날려 보였다. 그 후 손가락 끝으로 자연스럽게 앞머리를 위로 살짝 올려치며 이마를 보였다가 다시 정수리에서 윗머리를 대각선으로 내려 깔며 내 머리임을 필사적으로, 그러면서도 무리하지 않도록 표현했다.
“아닌가? 아님 말고. 하하하하.”
가발에 갇혀 정수리 끝에 고인 땀이 순간의 정적이 불러온 냉기에 차갑게 식었다.
“어머, 과장님은 괜한 소리를 해서 성종 씨를 난처하게 하고 그러세요. 가발은 무슨.”
시기적절하게 나온 인사팀 대리의 수습으로 분위기는 정리되고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슈퍼세이브였다. 내 말이 맞거나 말거나 어쨌든 너는 막아봐란 식의 툭 던져진 과장의 말에 혼신의 힘을 다한 나는 최소 5분 정도의 수명이 줄어들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대리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지만 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또 도움을 준 대리님께 가발임을 인정하는 모양이 될까 싶어, 감사의 눈인사도 전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날 이후 그와 같은 공개적인 공격은 없었다. 아니,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나의 눈부신 노력의 결과였다. 최대한 그의 눈에 띄지 않는 것, 그와 함께 하는 미팅에 최대한 참석하지 않는 것,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함께 하는 자리라면 최대한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 등. 나만의 저격수 대응 원칙을 세워 철저히 지켜나갔다. 그리고 이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또 그만큼 자유가 있던 인턴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원칙이었다.
그렇게 저격수와 함께 했던 다사다난했던 5개월의 인턴생활이 끝났다. 그리고 대망의 인턴 마지막 날.
“그래도 마지막인데 다 같이 사진이나 한 번 찍지 그래, 여기 다들 모여봐”
부서장 님의 이야기에 전 부서 인원이 사무실 중앙에 모였다. 식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5개월의 조직생활이 이렇게 마무리된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부서장 님의 지시였기 때문일 테지만 그래도 업무로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한 두 마디 덕담을 건네는 부서 인원들과 한분 한분 눈을 마주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이때는 다과회 참사 이후 지켜왔던 나름의 원칙을 어기고 그 과장님께도 악수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과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냐 아냐, 성종 씨가 고생했지. 그런데 성종 씨, 진짜 솔직하게 한 번만 말해줘. 어차피 가는 마당에. 가발 맞지? 응? 이마 한 번만 까 봐”
아! 가는 마당에 이놈의 머리를 한 번 까버릴까. 참 징글징글할 정도로 빌어먹을 인간, 아니 가발 저격수였다.
어린 시절 우리네 할머니들께서는 어린 손주들을 무르팍에 앉혀놓고 이르곤 하셨다. 강가에 함부로 돌 던지지 말라고. 장난 삼아 던진 돌멩이에 멀쩡히 잘 살던 개구리들은 맞아 죽다며 말이다. 그에게는 일종의 유희였을 것이다. 당황하는 나를 보는 것과 자기 말에 주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상상을 하며 무언가 대단한 비밀을 발견한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
그래,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알아야만 했다. 별안간 날아온 돌멩이에 비명횡사하는 개구리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발을 저격받은 가발러는, 대머리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도 모른 척, 머리카락 유무를 떠나서 서로가 같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나는 한숨을 쉬며 그를 무시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날 그에게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하고 한숨으로 날려버렸던 나의 마지막 질문을 이제 그에게 던진다.
과장님, 저 탈모에 가발을 썼었습니다. 당신이 맞았습니다. 이제 시원하신가요?
도대체 진짜 당신에게 제 머리는, 제 가발은 무엇이었나요?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