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술에 취한 나는 또 핸드폰에서 정석이 형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요 근래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빠져가는 머리카락에 자기 비하에 빠진 내가 혼자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한 내가 정석이 형에게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은 정석이 형은 달려와서 나를 위로하고, 그 위로에 나는 다시 또 술을 마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의 뫼비우스 띠였다.
“정석이 형. 혹시 집이야? 잠깐 나올 수 있어?”
“니 또 술 쳐 마셨나? 어디긴 어디야. 도서관이지. 내일모레가 시험인 거 니 까먹었나. 공부 안 할 끼가? 니 또 거기 있나? 알겠다. 금방 갈게. 있어라.”
이렇게 또 형을 불러내고야 말았다. 나쁜 놈아. 이 나쁜 놈아. 너만 인생 망치면 되지. 왜 멀쩡한 사람의 인생까지 파멸로 이끌고 갈려고 하는 거냐.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정석이 형의 인생에 어쩌다 나 같은 게 엮였을까. 역시 난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되는 민폐덩어리다. 이러니 머리털이 빠지는 것이다. 천벌이다. 천벌.
정석이 형은 대학 동기였으나, 재수하여 나이는 나보다 1살 많았다. 1학년 때는 아웃사이더를 넘어서 어둠의 자식이었던 나와 핵인싸였던 형과 전혀 접점이 없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사이였었다. 그랬던 우리가 친해진 것은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가고 대학을 복학하면서부터다. 제대 후 대학생활을 한 번 제대로 해보려는 나와 과거 친했던 친구들이 군대 등으로 떠나 홀로 캠퍼스에 남은 정석이 형. 우리의 만남은 나에겐 운명이었고 정석이 형에게는 저주였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정석이 형은 사람 냄새가 났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호감 가는 얼굴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늘 머금고 다녔다. 장난을 좋아했지만 선을 지킬 줄 알았고 덜렁될 것 같은 말투와 달리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나의 탈모 자기 비하에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당시 나는 부푼 꿈을 안고 복학한 캠퍼스에서 정석이 형과 함께 복학생으로서 좌충우돌하던 중 탈모를 깨닫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없는 돈을 털고 털어 약을 먹어도 보고 탈모약을 발라도 보고 치료를 받아봐도 점점 넓어져가는 정수리, 얇아져가는 앞머리에 자포자기했다. 형은 부인-인정-치료-실패-좌절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탈모인의 단계를 밟아가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했고 위로해 주었고 나는 그런 형에게 더 정신적으로 기대게 되었다.
전화를 걸고 나서 15분쯤 지났을 때 정석이 형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
“어이구. 이 자식아. 이 자식아. 이게 뭐 하는 짓이고. 저녁은 먹었나?”
천사 같은 정석이 형. 형은 내 주변에 빈 술병만 굴러다니는 걸 보고 밥부터 먹었는지를 물어봤다. 그리고 고개를 젓는 나를 보며 이럴 줄 알았다며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 온 안주거리를 풀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술만 마시다가 속 다 망가진다고 나중에 골병 들어서 켁켁되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며 말이다. 난 그런 형에게 다시금 또 똑같은 얘기를 내뱉었다.
“형. 내가 탈모다. 내가 대머리다.”
“인마. 그 얘기 벌써 몇 번째고. 다 안다. 니 대머리인 거. 인자 좀 있으면 이 대학 사람들 모두가 다 알게 되겠네. 허구한 날 그 소리고. 정신 차려라. 시험 쳐야지. 니 이래 인생 포기할래?”
“형도 이제 지겹재? 미안하다. 형. 그래. 나도 이제 그만하려고.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어? 평생 대머리라고 놀림이나 받겠지. 여자 친구도 제대로 못 만나고 사랑도 못 해보고. 취업? 누가 대머리 이력서를 보고 뽑아주겠어. 난 끝났어. 형. 이제 이 지긋지긋한 인생 끝낼 거다. 형. 나 죽을 거야. 고마웠어, 그동안 형님.”
딴에는 취중진담처럼 비장한 각오로 읇조리 듯 얘기했다. 진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평소처럼 형이 위로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괜찮다. 방법이 있을 거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너는 그래도 죽기에는 능력이 아깝다.’ 등등.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정석이 형은 지난 수개월 간의 자신의 위로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단으로 치달 아가는 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 새끼가? 뭐? 죽는다고? 머리카락 몇 가락 없다고 죽는다는 말이 그래 쉽게 나오나? 일어나. 이 자식아. 똑바로 서. 인마.” 형은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죽고 싶어? 그래, 죽고 싶으면 차라리 내한테 맞아 죽어라.” 그러고는 형은 내 뺨대귀를 풀스윙으로 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뺨 한 대귀를 칠 때마다 형은 말했다.
짝! “느그 아부지가 니를 우예 키웠는데”
짝! “뭐 죽고 싶다고?”
짝! “자살을 할끼라고?”
짝! “이런 못난 놈이”
짝! “누군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나?”
짝! “그래, 죽어라. 죽어. 이 대머리야.”
몇 대를 맞았는지 모르겠다. 형은 한 대를 맞을 때마다 비틀거리는 나를 바로 세우고 귀뺨 대기를 때렸다. 10대까지는 셌는데 그 이후로도 몇 대를 더 맞았다. 마지막 한 대를 맞고 땅에 쓰러진 내게 형은 말했다.
“왜? 아파? 맞으니까 막 억울해? 억울하면 살아. 그딴 소리 하지 말고. 네가 살 거면 일어나서 내 뺨대귀를 후려쳐 이 자식아.”
왜였을까. 형의 마지막 말에 죽고 싶다는 마음보다 아프다는 육체적 고통과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서 정석이 형의 귀뺨대기에 나와 똑같은 고통을 심어줘야겠다는 욕망이 들끓었던 것은. 나는 일어섰다.
“형. 똑바로 서.”
“뭐?”
“나 대머리인 채로 열심히 잘 살아 볼 테니까 똑바로 서서 귀뺨대기 대라고.”
형은 당황했다. 때린 게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진짜로 때린다고 할지 몰랐던 건지 형의 자세는 아까 나를 때리던 것과 달리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남아일언 중천금, 부산 사나이 정석이 형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던지며 맞을 준비를 했다.
“그래, 쳐라. 마음껏 쳐라, 이 자식아. 너 이 자식. 나 때려놓고 또 한 번 죽는다 어쩐다 그러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나는 형의 귀뺨대기를 올려치며 말했다.
짝! “형,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짝! “형, 나 살게. 살아볼게”
짝! “대머리면 뭐 어때. 안 죽을게, 형!” 형의 뺨을 3대를 후려쳤을 때 형이 말했다.
“그만 때리라. 아프다.”
“안 그래도 그만하려고 했어. 형. 미안해.” 나는 들었던 팔 그대로 형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우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서로를 부여안고 그렇게 한참을 같이 울었다. 누군가에게는 서로의 볼에 입맞춤하며 분홍빛 러브 캠퍼스였던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뺨을 후려치며 생의 의지를 다졌다.
그날 이후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기적처럼 완전히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날을 계기로 다시 손에 술병이 아닌 펜을 잡았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다시는 정석이 형 앞에서는 탈모로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행여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볼을 만지며 참았다. 그날 밤 야차 같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세월이 지난 후 형은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다. 축하 겸 해서 만난 술자리에서 형에게 축하인사와 감사를 전했다. 그날 밤 형이 내게 준 충격요법이 삶에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덕분에 가장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형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다.
“충격요법? 그날 밤에는 진짜 화가 나서 때렸다. 공부할라 하면 전화해서 불러내고. 안 그래도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잘 걸렸다 싶어서 시원하게 때렸지. 너 말 한 번 잘 꺼냈다. 요새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혹시 요새는 죽고 싶은 생각 없나? 이 대머리가 머리카락도 다 빠져가지고는 아직 살고 싶은 마음이 있나? 어때, 오랜만에 맞아 볼 생각 있나?”
천사 같은 정석이 형. 나는 형이 좋다. 내 머리카락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