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오늘도 출근 전 가발을 쓴다

by 울산의 카프카

최근에 드디어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날은 송년회 겸 조촐하게 팀 회식을 진행한 자리였다. 그 해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안주삼아 한 병, 두 병 테이블 위에 술병이 쌓여갔다. 사과와 용서, 화해와 이해가 이어지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나는 잠시 숨을 돌릴 겸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노 대리, 혹시 가발인가?”


벼락 같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벼락맞은 듯 움찔거렸다. 자리에 앉아 술 잔을 찾던 고개가 반사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 질문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내 맞은편에 앉아 계신 팀장님이었다. 재빠르게 테이블의 분위기를 살폈다. 4명이서 시작한 자리였는데 팀장님과 정 과장님만 앉아 있었다. ‘아, 박 과장님은 내가 화장실 갈 때 담배를 피우러 갔지.’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두분이서 무슨 얘기를 나눴던 것일까? 이런, 생각이 너무 길었다. 이런 질문은 오래 끌면 끌수록 불리했다.


“네?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팀장님. 하하.”

일단 모르쇠다. 이미 그간의 숱한 경험으로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의 경우 내가 가발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고 확신을 가지고 질문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네 그렇습니다. 가발입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정한 순간 다음 질문은 뻔하다.

‘이것 봐. 내가 가발이라고 했잖아.’ 또는 ‘한 번만 보여줄 수 있겠나? 너무 궁금한데. 한번만 벗어봐’

어떤 말이든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내가 지난 8년을 가발을 쓰고 어떻게 이 회사에서 버텨왔는데!

멋쩍은 미소로 부정하는 나를 보며 팀장님은 말했다.


“아니, 노 대리 머리가 가발인 것 같아서. 허허”

그 말을 하는 팀장님의 눈은 연신 날카롭게 내 머리를, 가발을 훑어보고 있었다. 아! 어디서 들통난 것일까? 그간 8년의 무사고로 내가 너무 방심한 탓일까? 지난 번 고깃집 회식 후 다음날 피곤한 탓에 가발을 안 빨고 그대로 출근해서일까?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지난 1년 간 내 머리스타일의 이상함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특정부위, 즉 옆머리와 뒷머리만 자라나는 노 대리의 마법의 머리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지난 연말 연휴 때 가발을 교체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지난 8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추석 또는 설날 명절 등 긴 연휴기간을 기회로 적어도 1년에 1회 이상 가발의 퍼머 또는 새로운 가발을 구입하며 주위 이목을 속여왔다. 그러나 올해는 자금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떨어진 주식이 회복되면, 아니면 회사 연말 성과금을 받으면 하고 차일피일 미뤄왔었는데 30년 인사경력의 날카로운 인사부장의 눈썰미에 들통나버리고 만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수능장 바깥에서 생각난 정답이었다.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저 어서 빨리 마무리부터 지어야 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제 머리입니다.” 하고 비장의 수로 두 손으로 앞머리를 밀어올렸다. 감춰둔 이마를 깐 것이다! 그러나 가발이 벗겨질까 두려워 애처롭게 떨리며 올라간 내 손. 그리고 하늘을 향해 180도 머리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90도 언저리에서 자유의 비상을 끝낸 채 다시금 땅으로 떨어진 머리카락. 한계다. 다만 이 행동을 통해 내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제발 모른 척 이제 여기까지만 합시다. 제발 팀장님. 그만 합시다. 제발.’


“참, 팀장님 지난 번 그 프로젝트는 언제 진행하기로 전무님과 말씀하셨습니까?”

팀장님과 나, 단 둘뿐이었던 시공간이 깨지고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정 과장이었다. 그래, 정 과장님도 있었지. 팀장님과 내가 가발에 대한 치열한 심리공방을 펼치고 있을 때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정 과장님은 우리 문답의 빈틈에 기가 막히게 들어왔다. 그리고 화제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 과장의 질문에 대답하며 왼쪽눈을 내게 찡긋거리며 살며시 미소짓는 팀장님의 표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괜찮아. 노대리.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 뭐 이런 의미인가.


무엇보다 특이했던 건 정과장님의 반응이었다. 누군가 가발이 아니냐는 얘기를 꺼냈을 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첫번째는 동조다. “그래, 노 대리. 너 가발이지? 솔직하게 얘기해봐.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 두번째는 제지다. “팀장님, 질문하시지 마시라니까요. 그런 얘기를 왜 하십니까.” 그런데 정과장님의 반응은 그 둘 모두가 아닌 침묵이었다. 그리고 시기적절한 화제전환. 마치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모른 척 하는게 예의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이후로 우리 테이블에 가발이라던가, 머리에 대한 주제가 다시금 언급되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 해결되지 못할 업무에 대한 걱정과 우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안고 회식은 끝이 났다.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가는 길. 전화가 왔다. 팀장님이었다. 수년을 모셔왔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회식이 끝난 후 전화가 없던 분이라 놀랐다. 술이 취하신걸까? 술자리에 있었던 이야기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물건을 잃어버리셨나 했다. 잔기침 몇번으로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팀장님. 노 대립니다. 잘 들어가셨습니까?”

“그래, 노 대리. 집에 가는 길인가? 음. 나야 덕분에 잘 들어왔지. 그건 그렇고 아까 내가 했던 얘기 말이야.”

“무슨 얘기 말씀이신가요?”

“가발에 대해서 내가 했던 말 말이야. 정말 미안하네. 정 과장이 얘기해줘서 알았어. 오랜만에 하는 술자리라서 내가 술이 많이 취했었나봐.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큰 실수를 했네. 미안해. 사과한다고 없던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할 테니 용서하고 잊어줬으면 좋겠어.”

“하하. 팀장님. 가발이라니요? 저도 술이 취해서 중간에 기억이 없습니다. 뭐 별일이 있었을까요? 팀장님께서 다 저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셨겠죠.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오늘 고생많았어. 내일 봐.”


전화가 끊어진 차 안은 적막했다. 마음 한켠이 무거웠을 팀장님과 마음 전체가 돌덩이 같았던 나는 이제 없다. 술이 깨고 난 다음날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당분간 분위기가 서먹서먹 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 술자리에 있었던 일은 술자리에 있었던 일로 봉합됐다. 어차피 한 번은 있어야 할 일이었다면 최고의 결말은 아니라도 최악은 피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역시 모든 걸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팀장님과 나, 우리 둘 사이를 중간에서 조율해준 정 과장님을 생각하니 굳어져 있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왔다. 그래서일까? 창 밖에 흔들리는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글자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괜찮아. 잘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기사님, 안전운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비 얼마라고 하셨지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 후 대리비를 챙기려 호주머니를 주춤주춤하며 묻는 내게 대리기사님은 황당하게도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 내 이야기를 잘못 들으셨나? 내가 선불로 지급했나? 아닌데. 주머니 속에 대리비 2만원이 있는데?


“선생님, 좋은 팀장님을 두셨네요.”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 아! 아까 전에 나와 팀장님의 대화를 들으셨구나. 하긴 좁은 경차 안에서 울려퍼진 통화소리를 못 들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팀장님이 좋은 팀장님인 건 맞는 얘긴데 그것과 대리기사가 대리비를 안 받는 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고민하는 찰나 대리기사님이 그냥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기사님. 대리비 받아가셔야죠!” 쫓아가는 나를 뒤돌아본 대리기사님은 급기야 뛰기 시작했다.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돈 안주고 도망가는 손님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돈 받기 싫어서 도망가는 대리기사라니? 멀찌감치 떨어진 대리기사는 올라오는 술에 멈춰선 나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사장님. 힘내세요!” 그 말과 함께 오른손으로 힘차게 자신의 머리를 두 번 두들기는 대리기사!


웃음이 터져나왔다. 팀장님과 정과장. 그리고 대리기사.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웃음의 하모니가 휘황찬란한 달빛 아래 달빛보다 빛나는 정수리를 가진 이 탈모인을 웃게 했다. 직장인 가발러만이 겪을 수 있는 시트콤 같은 하루가 아닐까?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조금의 불편함까지도 내 웃음에 묻혀 밤하늘 멀리 날려보냈다. 그리고 되뇌었다. 탈모, 가발러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여전히 회사생활은 할 만하다고.


탈모, 가발러의 다이나막한 회사 생활. 난 오늘 아침도 출근 전 가발을 쓴다. 나는 노 대리, 친구들이 노 대(머)리라 놀리는 탈모 가발러, 8년차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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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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