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이 돌아간 김 사장님
30대를 넘어선 남자에게 일어나는 머리카락과의 전쟁. 애처롭게 있는 머리를 긁어모아 어떻게든 가린 사람, 에라 모르겠다 시원하게 민 사람, 티를 안 내려고 한가득 흑채를 뿌리는 사람, 자신의 탈모화를 애써 무시하며 차라리 눈을 감아버린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머리카락을 지키고 또 머리카락이 있어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는 내가 속한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심미적인 이유가 아닌 놀림거리가 되지 않겠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말이다.
내가 탈모이자 가발러이기 때문에 머리카락과 탈모를 대하는 여러 대응방식 중에서 나와 같은 가발러에 가장 눈이 간다. 그리고 이건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만났던 대표적인 가발러에 대한 이야기다.
김 사장님은 내가 만나는 거래처 사장님 중의 한 분이다. 나이는 외모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60은 넘으셨지만 70은 되지 않은, 중장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년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나이로 보인다. 업무로 만난 사이에 굳이 연세를 여쭤볼 이유가 없고 또 그 정도의 인간적인 교류도 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나이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고 많은 거래처 사장님들 중에 유독 내가 나이도 잘 모르는 그분께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가발러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단정히 2:8로 빗어 넘긴 머리와 적절히 흰머리가 섞인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을 보고 그것을 가발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가발을 10년 가까이 써 온 나라도 쉬이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초면에 아버지뻘의 거래처 사장의 얼굴과 머리스타일, 이마 라인을 뚫어지게 보는 것도 실례인 일인지라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탈모와 가발에 관심이 많은 나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저 사람 자기 머리일까?”라고 의심하며 살지는 않으니까 그저 인상 좋은 사장님이구나 싶었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난 후 사장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그때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밝게 인사를 건네는 그분과 인사를 나누고 어쩐 일이시냐고 묻는 내게 현장에 물건 갔다 줄 일이 있어서 온 김에 겸사겸사 노 대리에게 커피 한 잔 얻어마시러 오셨다고 말하는데 뭔가 찜찜했다. 마치 그림퍼즐에 조각 하나가 맞지 않는 곳에 억지로 끼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라고 고민하는 찰나 이마라인에 접혀서 툭 튀어나온 가발 스킨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분이 가발러셨구나!’ 현장에 다녀오셨다고 하더니 현장에 들어갈 때 필수로 써야 하는 안전모를 쓰고 벗는 과정에서 가발과 머리의 부착 사이에 문제가 발생한 듯했다. 아마도 안전모에 낀 가발이 다시금 머리에 내려앉을 때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사고로 보였다. 나는 그것을 깨닫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머리, 가발에서 다른 곳으로 돌렸다.
말씀을 해 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식사시간이고 그전에 손 씻을 겸 해서 화장실에 가게 되시면 거울을 보면서 올바르게 다시 쓰실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옥에 티는 우리 같은 가발러의 눈에나 보이는 것이지, 평범한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입장을 바꿔서 이렇게 데면데면한 사이에 “허허 노 대리, 가발이 조금 틀어졌는데? 다시 써야겠어.”라고 김 사장님께서 얘기한다면 나는 적어도 그다음 날은 부끄러움에 휴가를 썼을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그 후로도 김 사장님과 업무적으로 종종 만났다. 그때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가 가발인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가 가발인 것을 아는 사람이 나를 대해주길 바라는 방식 그대로 머리를 집중해서 쳐다보거나, 업무 얘기를 하기 전에 스몰토크를 하더라도 절대 머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오늘 바람이 많이 불었나 봐요. 머리가 조금 뜨셨네요.”라고 할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내게 저 멀리서 누가 자전거를 타고 오며 인사를 건넸다. 김 사장님이었다.
“아이고 노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식사하고 들어가시는 길이세요?”
자전거에 탄 채로 얘기하는 김 사장님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바라보는데, 아뿔싸. 김 사장님의 가발이 좌측으로 90도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가발의 옆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앞머리 쪽으로 와 있었다. 본디 세상 만물이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법인데. 아! 조심 좀 하시지. 그러게 이렇게 바람도 부는 날에 무슨 대단한 사람 만난다고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서 이리도 빨리 달려오셨을까. 가슴이 미어졌다.
이건 지난번처럼 더 이상 말하고 말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가발이었고 누가 봐도 이상했다. 남녀노소를 떠나 가발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감추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리고 김 사장님도 서로의 나이를 떠나 이렇게 가발을 쓰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여기 이 거리에 김 사장님과 나 둘 뿐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 좌우 전후를 다시금 살피고 정중히 자세를 바로하였다. 그리고 가볍게 목례를 건넨 후 양손을 관자놀이로 가져갔다. 그리고 손으로 좌에서 우로 머리를 돌리는 행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굳이 설명은 불필요했다. 사장님의 가발 라이프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가발러끼리는 척하면 척일 테니까.
“아!”
김 사장님의 입에서 외마디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김 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가발을 바로잡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는 의미이리라. 다만 내게 한 손을 들어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는 검지를 입술로 가져다 대며 한눈을 찡긋했다. 백 마디 말보다 깊이 있는 몸짓! 그 짧은 행동에 그의 고단했을 가발 인생이 오롯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나도 굳게 닫은 입술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척하면 척이었으니까. 그리고 김 사장님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떠나갔다. 왔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김 사장님과는 거래처 사장과 담당자로써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후 그날 일이 우리 사이에 언급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때때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김 사장님도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방끈이 긴 사람처럼 가발 길이가 긴 김 사장님은 무시 못할 가발 연륜으로 이미 날 파악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날 나의 행동을 통해서 확신을 가졌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그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가발을 쓰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 그리고 의무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