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아. 힘내라.”
“너는 어떻게 된 게 나 만나면 할 얘기가 그것밖에 없냐? 그리고 뭘 힘을 내? 다짜고짜 힘내라 하면 화장실에서 힘쓰는 거 말고 뭔 생각이 나겠냐?”
뭘 말하는지 뻔히 아는데도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잔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준병이를 보며 나도 자연스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준병이는 그런 친구였다. 굳이 길게 설명하거나 어떻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말 그대로 눈빛만 봐도 서로 이해하는 친구. 그런 친구니까 반년 만에 만난 둘만의 술자리의 첫마디가 이 모양이었다.
준병이와는 20살 때 과 동기로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 20살의 1년 365일을 함께 했다. 안타깝게도 둘이서만 함께 했다. 요즘 말로 소위 둘 다 아싸였기 때문에 수업을 들어도 둘이서, 밥을 먹어도 둘이서, 술을 마셔도 둘이서 마셨다. 고향도 관심사도 달랐던 우리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준병이는 매번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준병이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내 안의 결핍을 보았다. 그래서 꼭 둘이서 술이 만취할 때면 내 손을 부여잡고 다음날 술이 깨면 꼭 잃어버린 나의 어머니를 찾으러 가자고 얘기하고는 했다. 물론 단 한 번도 우린 간 적이 없다.
그렇게 내 안의 구멍을 살필 줄 알던 친구였기에 제대 후 다시 만났을 때 휑하니 비어있는 내 정수리를 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처럼 놀리거나, 나조차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되지도 않는 위로와 충고를 하지 않았다. 내가 속알머리를 감추기 위해 양 옆머리를 억지로 가운데로 모아 넣을 때도, 모자를 눌러쓰고 사람을 피해 다닐 때도, 방구석에 틀어박혀 세상 다 끝난 사람처럼 스스로를 가둬놨을 때도. 단지 지금처럼 ‘힘내라’란 말 한마디와 내 얘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탈모로 도망치듯 캠퍼스를 떠나 반년만에 가발을 쓰고 돌아온 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단지 묵묵히 술잔을 부딪혀 주며 내 입이 예열되기 까지 기다렸다.
“준병아. 너도 알겠지만 이거 가발이다.”
“뭐? 가발이라고? 이야. 진짜 몰랐다. 난 또 좋은 약 먹고 다시 난 줄 알았네”
“거짓말하지 말고. 야. 그리고 좋은 약 먹고 머리카락이 자라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선수 지단은 왜 대머리냐?”
“그것도 그렇네. 여하튼 진짜 같다. 그리고 진짜든 가짜든 뭐가 중요하냐. 네가 다시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돌아온 게 중요하지.”
나를 기존에 알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가발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래서 긴장했었다. 이상하다고 놀리면 어떡하지? 당장 벗으라고, 꼴 보기 싫다고 말하면 어떡하지? 기우였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준병이는 지금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 선택을 존중해준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간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타학교 교류학생으로 캠퍼스를 떠났던 일. 새로운 캠퍼스에서 지금의 가발을 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일. 반 년간의 가발 라이프에서 겪었던 불편함과 고통, 그러나 그걸 이겨낼 만큼의 만족감과 자신감을 얻었던 일들을 고백했다.
“잘 이겨내고 있었구나. 멋지다, 친구야. 근데 혹시 잘 벗겨지지는 않나?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내 것은 싸구려 패션 가발이라서 좋은 것처럼 딱 고정이 되고 하는 건 아니긴 해도 막 그렇게 쉽게 벗겨지지는 않지. 그렇다고 당기거나 그러면 당연히 벗겨지지. 바람 불면 벗겨지고 그런 건 아니다.”
“요즘 기술이 좋긴 좋다. 보기에도 좋은데 잘 벗겨지지도 않고. 다시 태어난 내 친구를 위해 건배!”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툭하고 던져놓았다는 후련한 감정이 술잔으로 향하는 내 손을 빠르게 했다. 이래서 대나무 숲에 달려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쳤구나. 첫 가발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나는 평소보다 더 빨리 취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 술자리를 파하고 취기에 젖은 몸을 휘적거리며 잘 곳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하룻밤 눈 붙이기에 찜질방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단돈 만원이면 씻고 잠을 잘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각자의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준병이와 나는 재학 중에 잘 곳이 없으면 늘 찾던 찜질방으로 향했다. 중간에 모텔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다음날 아침 해장할 돈을 생각하면 역시 찜질방이 답이었다.
찜질방에 도착해 옷을 갈아있는데 준병이가 가발은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벗어서 옷과 함께 옷장에 둘 건지 아니면 쓰고 들어갈 건지 물어온 것이다. 그제야 취기로 인해 잊고 있었던 가발이 생각났다. 지금이야 찜질방에 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만 그때는 가발 라이프를 시작한 지도 오래되지 않아 행동이나 사고가 몸에 베지 않았기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쓰고 들어가야지. 이건 이제 나랑 한 몸이라고. 머리는 안 감고 몸만 씻으려고.”
대충 몸을 씻고 찜질방으로 들어섰다. 특유의 어두운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목베개를 들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발을 쓰고 외부에서 잠을 든 적이 처음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풍성하니 쿠션 역할도 하는구나 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금세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날 깨우는 준병이의 손길에 힘겹게 눈을 떴다. 벌써 아침인가. 뒤척임이 있었던 건지 베고 잤던 목베개가 눈앞에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누운 상태로 소지품부터 챙겼다. 발에 걸고 있던 락커 키는 잘 걸려있었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도 그대로 있었다. 잘 잤구나. 정신을 챙겨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머리야. 전날 마신 술의 여파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누르는데 어라? 머리가 헐 빈 했다. 가발이 벗겨진 것이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주위를 살폈다.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맞이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른 사람들만 눈에 보일 뿐이었다.
“준병아. 준병아! 내 머리가 없어졌다!”
“네 머리 어디 갔어? 잠결에 불편하다고 벗어서 락커에 넣어둔 것 아니야?”
그럴 리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아버지. 할아버지. 조상님. 제발 술 취한 내가 락커에 가발을 넣어두었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락커를 열었다. 역시 없었다.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노성종! 너한테는 가발이 그 정도밖에 안 되나? 어떻게든 찾아야지. 아직 기회는 있다. 분명 이 안에 있을 테니까 찾아보자.”
캡틴, 캡틴, 오 나의 캡틴. 정신을 깨우는 준병이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었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에는 일렀다. 우리는 다시금 찜질방 안을 뒤적였다. 아침을 맞이해 잠에서 일어나 준비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는 사람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누군가에게는 시커멓고 작은 털 뭉치로 보일, 그러나 내게는 분신과도 같은 그것. 가발을 찾아 찜질방을 헤맸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 바로 우리였다.
그러나 우리의 그 간절한 수색작전에도 가발은 발견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잠든 내게서 탈착 된 가발을 장난 삼아 가져간 것이 아닐까. 이미 전리품으로 챙겨서 집에 갔다면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이럴게 아니라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자. 누가 분실품으로 맡겨놨을 수도 있잖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데스크로 향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데스크의 직원에게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이 지금 뭐가 중요한가. 집을 잃고 미아가 된 내 가발은 나를 찾아 울고 있을 텐데.
“사장님. 제가 가발을 잃어버렸습니다. 혹시 누가 분실품으로 맡기지 않았나요?”
순간 내 머리를 훑어본 사장님은 송구스럽지만 그런 물건은 접수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금 용기를 쥐어짜 냈다.
“그럼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방송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게는, 제게는 정말 중요한 물건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이 말을 하는데 눈물이 울컥 치솟았다. 제길.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나는 머리가 빠져서. 왜 나는 가발을 뒤집어써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가발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해야 되는 걸까. 바보처럼 눈물을 질질 짜면서 말이다.
한 남자의 진심이 통했던 걸까. 직원은 방송을 시작했다.
“아. 아. 물건을 찾고 있습니다. 찜질방 내부에서 가발을 습득하신 분께서는 1층 데스크로 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찜질방 내부에서 가발을 습득하신 분께서는 1층 데스크로 전달 바랍니다.”
찜질방 전체에 내 가발을 찾는 방송이 퍼져나갔다. 방송을 마친 직원은 손수 커피를 타주며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잠깐 여기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부여잡고 데스크 옆 테이블에 앉아 터져 나온 눈물을 추스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바보 같은 놈. 어쩌자고 가발을 쓰고 그렇게 우리 집 안방처럼 편히 잠을 잔 것이냐. 부끄러움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으로 견딜 수 없었다. 준병이는 이 희한한 광경 속에서, 함께 잠을 자던 친구가 가발이 벗겨지고 그 가발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방송까지 하는 이 해괴망측한 순간에도 특유의 진중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달래주었다. 그때였다.
“설마?” 지나가는 청소 아주머니를 발견한 준병이가 앉은자리에서 뛰어나갔다.
“아주머니, 혹시 가발을 보셨습니까?”
“아니요. 좀 전에 방송은 들었는데 청소하면서 그런 건 못 봤는데.”
“실례지만 잠깐 쓰레기통 좀 봐도 될까요?”
그러고는 준병이는 아주머니가 끌고 다니는 파란색 큰 쓰레기통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앉은 그대로 준병이가 하는 모양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저 녀석 지금 뭐 하는 거지?
그 순간 준병이가 쓰레기통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며 소리쳤다.
“찾았다!!” 준병이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바로 내 가발이었다.
“아이코 머니야!”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놀란 아주머니의 외마디 감탄사.
아주머니, 제 머리입니다. 바로 제 머리라고요. 얼른 뛰어가서 준병이를 껴안았다. 고맙다, 친구야. 네가 날 살렸구나. 네가 날 살렸어. 너도 부끄러웠을 텐데. 이런 날 친구로 둬서 부끄러웠을 텐데. 그런데 난 이런 널 친구로 둬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고맙다. 친구야.
남자의 진한 포옹. 한 손에 가발을 든 남자와 그 남자를 껴안은 머리숱 없는 남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데스크 직원과 청소부 아주머니.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 속으로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었다. 어느 한 찜질방의 평화로운 아침의 한 장면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찜질방을 벗어났다. 그리고 주린 배를 해장국으로 채웠다.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준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병아. 넌 내 생명의 은인이다. 누구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머리털 일지 몰라도 내게는 세상 문을 여는 열쇠였다. 이번에 못 찾았으면 나는 다시 방구석에 갇혔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팍팍 먹어라. 그리고 못 찾았으면 다시 또 사면되지. 고마우면 앞으로는 뚜껑 간수 잘하고 머리 때문에 못 한다는 핑계 대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당당히 하면서 힘내서 살아.”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미래를 걱정하던 준병이는 검찰청의 6급 공무원이 됐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예전에도 그러하였듯이 충실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날 준병이가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희망을 뒤집어쓴 나는 준병이 결혼식의 사회와 첫아이의 대부를 자처하며 여전히 준병이 인생의 걸림돌로 관계 맺고 있다.
내 인생 최고의 친구. 준병. 덕분에 난 오늘도 힘내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