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4살에 시작한 가발과 함께 뜨거운 대학시절을 보냈다. 가발은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고 생사고락을 함께 겪으며 성장했다. 싸구려 패션 가발에서 브랜드 가발로, 핀 가발에서 테이프 가발로. 자라나지 않는 머리 대신 가발을 새로 샀고 내 머리로 할 수 없는 머리스타일을 그런 스타일의 가발로 대신했다. 처음에 가발을 쓰며 어색해했던 것이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가발은 오롯이 내 몸의 일부분이 되어갔다.
그렇게 되기까지 가발과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은 밤을 세서 얘기해도 부족하다. 인턴 시절, 기업 연수원에 들어갔을 때는 2인 1실이었기에 일주일 내내 가발을 쓰고 자야만 했고 시내에서 길을 걷다가 낮은 나뭇가지에 가발이 걸려 통째로 벗겨지는 바람에 뒤따라오는 여학생 두 명의 숨통을 웃음으로 거의 끊어놓을 뻔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인도 해외 인턴십 중에는 빨아서 말리려 마당에 걸어둔 가발을 동네 개가 물어가는 바람에 잠도 못 자고 온 동네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1박 2일 행사에 가서 잠결에 벗겨진 머리를 들고 도망간 적도, 찜질방에서 잃어버린 가발을 방송을 통해 찾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가발의 절대적 한계,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발은 이미 죽은 머리를 가공 처리하여 판매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영양제를 뿌린다고 하더라도 자라지 않는다. 이 간단한 사실이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1년 365일, 언제나 변함없는 내 머리에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임시방편으로 머리를 잘라 가발의 길이를 조절하기도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임시방편일 뿐 되려 가발이라는 것을 더욱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방학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홀로 두문불출하며 새로운 머리로 탈바꿈할 기회로 활용했다. 외국에 가 있는다던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와 홀로 공부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닫았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와 짠! 하고 새로운 가발을 쓰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전보다 길어진, 또는 달라진 머리스타일을 보여주고 이 새로운 가발을 쓴 채 다시 새로운 한 학기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나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며 사느냐며 충고를 하기도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탈모를 피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서라고 말이다. 그 말은 늘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내게 더없이 소중한 애정이 담긴, 그러나 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충고였다.
왜 우리는 인생의 선택에서 피하던가, 맞서던가 둘 중에서 하나의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흔히 말하는 인생의 갈림길은 두 갈래길이 아니라 세 갈래길도, 네 갈래길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탈모라는 문제를 극복할 수도, 또 피할 수도, 그렇다고 즐길 수도 없다는 것을 지난 시간을 통해 알기에 비껴서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하늘을 우러러 떳떳한 행동이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면 잠시 이 태풍이 지날 때까지 비껴서 있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죽을 둥 말 둥 부딪혀서 결국 내가 부서지는 것보다, 도무지 즐길 수 없는 일을 애써 즐기는 척하며 ‘저는 이 정도 고난을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에요’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비껴 서서 오늘을 살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20대부터 시작한 가발 생활은 내게 피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즐기지 않고 비껴서는 삶의 방법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