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탈모 자살 사건은 끝이 났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탈모였고 여전히 그것이 부끄러워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청년이었다. 무언가 극적인 변화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음이라는 사건을 겪고 난 후라면 탈모를 대하는 나의 심경이 조금은 바뀌리라 생각했지만 똑같았던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그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가능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 인간은 해골물을 먹고 난 후 물만 봐도 해골이 떠올라 물을 마시지 못하는 그런 인간인 것일까.
내 삶의 변화는 준비 없이 탈모가 시작된 것처럼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 변화의 시작은 저녁 시간에 방영되는 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가수를 꿈꾸는 한 여성을 다루고 있었다. 아름답고 노래를 잘 부르며 춤도 잘 추는 이 여성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요즘 세상에 저런 여성이야 많은데 왜 한 가수 지망생을 밀착 취재하는 것인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며 그 여성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심각한 탈모였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직업인 가수. 게다가 외모에 민감한 젊은 여성.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탈모와 꿈에 대해 당당했다. 그녀는 자신의 탈모를 전국 방송에 나와 얘기하고 있었으며 가수라는 꿈을 위해, 그리고 사회에서 오롯이 서기 위해 가발을 착용하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보다 어린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강하고 곧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꿈을 향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방송을 본 이후 나는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머리카락에 사로잡힌 채 생을 포기하려 했던 나의 나약한 마음과 이 사회에 대해 닫혀 있던 작은 식견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게 인생의 큰 깨달음과 그리고 탈모에 대처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난 가발을 만났다.
24살 가을, 나는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가발을 쓴 몇 달 동안은 진심으로 고통스러웠다. 내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인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혹 가발이 벗겨지지는 않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가발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않을까 노심초사 신경을 써야 했기에 집으로 돌아오면 탈진하여 잠이 들고는 했다. 때로는 사람들이 많은 광장에서 누군가에 의해 가발이 벗겨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꾼 날이면 평소보다 가발을 쓰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곤 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가발을 썼던 것은 그녀가 보여준 그 환한 미소가 마음에 남아 있었으며 거울 속에 비친 가발 쓴 모습이 탈모 전의 당당한 나로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내 머리는 아니지만 풍성한 머리카락이 이마를 타고 눈썹에 닿았으며 고속도로가 뚫려 있던 정수리에는 우거진 숲이 들어섰다. 가발이지만 나는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머리카락을 얻었기에 그 고통과 수고를 견뎌낼 수 있었다. 1년 6개월, 그 길고 긴 시간을 돌아 마침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