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세상을 향해 탈모를 외치다

by 울산의 카프카

얼마 전 카페에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당시 급작스럽게 취소된 친구와의 약속에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기에 하릴없이 열중하던 내게 등 뒤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눈물 섞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귀에 꽂혀왔다.


“형, 저 정말 죽고 싶어요.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번번이 차이고 사람들만 만나면 위축되고 이것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도 못 잡는다구요”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취할 대로 취한 한 남성은 때로는 울며 또 때로는 분노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런 남성의 이야기를 대하는 다른 남성의 태도였다.


“후. 정말 지겹다. 그만 좀 해라. 한두 번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큰 결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의 아니게 들어버린 나는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만 돌아보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았다.


내 눈에 비친 그는 심각한 탈모였다. 나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 보이는, 20대 중후반의 안경을 낀 그는 딱 내가 자살을 생각하던 그 모습의 내 표정을 하고 카페에 앉아 있었다. 훤히 비치는 정수리를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으로 넘겨 감싸는 듯한 그의 머리카락이 내게 그의 고통과 지난 삶을 이야기해 주었다.


고통스러웠으리라. 차마 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르지도 못하는 번뇌를 겪으면서. 버스 안에 붙은 탈모 광고, 인터넷에 떠도는 ‘탈모 100% 치료’라는 글을 볼 때마다 속는 셈 치고 해 보고 또 좌절하였을 그의 지난 삶이 눈에 잡힐 듯이 떠올랐다. 아무리 주변에 울고 불고 소리쳐도 돌아오지 않는 아우성,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없는 그 고통을 그는 홀로 삭히며 살아왔을 것이다. 앞에 앉은 그 남자의 짜증 섞인 반응과 같은 것을 늘 대하면서 말이다. 절망에는 객관적인 절망이 아닌 주관적인 절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매일 머리를 감을 때마다 떠올리면서.


나는 그 길로 일어나 거리로 나섰다. 그 자리에서 계속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나의 가발이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 그 자리에서 계속 그 사람에 대한 슬픔을 공감하게 되면 지금 내가 가진 머리카락 한 올이 더 빠져나갈 것처럼. 대학시절 죽기로 결심하던 그날의 나와 같이 다급하게 뛰쳐나갔다.


그리고 정처 없이 시내를 헤맸다. 나는 왜 화가 났는가. 나는 왜 슬퍼하는가. 30대의 나는 이제 그 남자와 같은 탈모란 절망의 구렁텅이, 나락에서 벗어나서 물론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지만, 내 머리인 양 둘러쓰고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비켜서 있지 않은가? 번듯한 직장도 구하고 탈모를 이해해주는 이쁜 와이프와 결혼도 해서 대머리지만 당당하게 그래도 이렇게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슬픔을 달랠 수가 없는 것일까?


그건 바로 그 남자를 통해서 탈모인의 정의를 봐버렸기 때문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도망자” 죄를 짓지 않았지만 모두들 죄인이라 손가락질하고, 그 손가락질을 피하려 가발이란 신분세탁을 하고 도망치는, 아니 평생을 도망쳐야만 하는 도망자.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나.


어느 날 문득 탈모가 나를 찾아온 것처럼, 어느 날 문득 내가 탈모임을 인정하고 가발을 만나게 된 것처럼. 그렇게 나는 이제 나의,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거창하게 머리가 나는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머리카락으로 아파해야 했던 나보다 어린 동생들, 친구들, 그리고 형님들에게 내가 가진 한 가닥 머리카락의 용기를 나눠야 할 때라는 것을. 어쩌면 그날 내가 죽지 않고 살아야 했어야 했던 그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희망을, 또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미소를, 또 정상인에게는 탈모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건 억울한 누명을 쓴 도망자, 한 탈모인의 피할 수 없는 것을 비껴서며 살아온 이야기다. 그리고 그날 그 카페에서 그에게 해줬어야 할 말이다.


“탈모지만 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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