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23살, 검은 눈물을 흘렸다.

by 울산의 카프카

“이 자식들아. 지금 공부를 해야 대학을 가서 여자를 만나지. 지금 공부 안 하고 놀면 대학 못 간다. 대학 못 가면 너희들은 평생 여대생과의 눈부신 연애 생활은 없는 거라.”

고등학교 3년 내내 한줄기 빛과 같던, 그러나 한편으로 지겹도록 반복되던 이야기.


“인마. 군대를 갔다 와야 여자를 만나지. 지금 만나고 군대 가면 다 군대 가서 고무신 거꾸로 신고 헤어진다. 그리고 여자들도 군대를 갔다 온 남자를 만나지. 지금 만나면 눈이 빠져라 2년 기다려야 하는데 누가 좋아하니. 군대만 갔다 와봐라 20살 여자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난리가 날끼다”

대학교 20살 시절, 고백에 실패한 내게 술 한잔과 같이 안주 삼아 건네던 선배의 이야기.


결과론적으로 그들은 틀렸다. 대학을 간다고 해서, 군대를 갔다 왔다고 해서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 바로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여자가 결혼하고 싶은 순위가 1위 민간인, 2위 군인, 3위 외계인, 4위가 바로 대머리다. 머리카락이 있을 때, 적어도 유심히 봐야 ‘아 머리숱이 조금 없나?’라고 의구심이 들만한 상태였을 때 여자를 만나야만 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그 순간은 20살이었다. 23살. 휑한 정수리로 군대에서 사회로 복귀한 내게 캠퍼스의 낭만은, 밥 사달라고 나를 부르는 여자 후배의 존재는 외계인과 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성에 대한 20대의 뜨거운 마음이 쉬이 포기될 리 없었다. 2년의 군대 생활 동안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GOP 초소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어져다 쳐다보며 사회에 복귀해서 만날 여성의 얼굴을 그 칠흑의 도화지에 그리고 지우고 다시 또 그리고 지우기를 얼마나 했던가. 40km 행군을 하며 늘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을 힘을 주었던 건 조국과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복학할 캠퍼스에서 만날 이성에 대한 기대였다. 내무반에 작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정 같은 여자 연예인을 보며 그와 같은 여자 친구를 만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렇게 사회에 나왔다. 전역 후 할 100가지 버킷리스트에 최소 90개는 여자 친구와 연관된 것이었다. ‘여자 친구와 놀이동산 가기’ ‘여자 친구와 2인용 자전거 타기’ ‘여자 친구에게 장미꽃 선물하기’ 여자 친구와. 여자 친구와. 그렇게 2년을 버텨왔기에 쉽게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이는 마치 머리카락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았는데 그 간절함과 집착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래서 모자를 썼다. 일단 시작은 정수리 원형 탈모였기에 적어도 모자를 쓰면 정상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 달 내내 모자만 쓰고 다닐 수 없기에 모자를 쓰지 않는 날에 대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흑채였다. 당시 흑채는 유명 연예인이 광고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뿌리는 흑채는 분말용으로 초보자들이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원하는 부위에 톡톡 쳐서 뿌려야 했는데 정수리 같은 부위는 특히 위치를 잡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스프레이형 흑채였다. 스프레이형 흑채는 말 그대로 흑채와 세팅력이 있는 스프레이를 결한 한 제품이었는데 뿌리는 형태이다 보니 분말형 흑채보다 사용하기가 간편하고 사용 즉시 머리숱이 늘어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화학 냄새가 심했고 두피와 두발에 직접적으로 접촉하다 보니 모발건강에 아주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물에 쉽게 녹아서 물과 만나면 그 흑채가 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그래서 준비 없이 소나기를 만나게 되는 날이면 검은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뛰어들어와야 했다.


그렇게 23살의 나는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캠퍼스를 거닐지 못하고 한 손에는 모자와 또 다른 한 손에는 흑채를 잡고 캠퍼스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1년을 보냈다. 가끔 검은 눈물을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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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머리로 앞머리와 윗머리를 만들어내던 기적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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