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의 나는 23살의 나와 1년의 차이가 있었고 딱 그 차이만큼 머리카락이 없었다. 점점 빠져가는 머리카락만큼 내 마음의 조바심은 더 커져갔다. 더 빠지기 전에. 아직 모자와 흑채로 감출 수 있을 때 이성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봄날의 바람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춘풍 일지더라도, 내 머리카락이 봄날 민들레 홀씨처럼 다 날아가기 전에 진심이 담긴 내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뜨거운 마음만큼이나 탈모에 대한 부끄러움, 그로 인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 갔다. 이렇게 고이 간직해온 순정인데, 마음을 전달받은 그 사람이 “끼야야악 대머리다!!!”라고 소리치지는 않을까. 아래위로 훑어가던 그 누군가의 눈길이 내 머리에 머무르다 한참 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마치 지독한 악몽처럼 일어나지 않은 그런 망상이 나를 쉴 새 없이 괴롭혔다. 버스 안에서, 강의실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하다가도, 또 누군가와 밥을 먹다가도. 그렇게 나는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과 탈모의 공포 사이에서 위태위태한 줄다리기를 이어갔고 그만큼 병들어갔다.
좋아한다라는 말조차 실례가 되는 탈모 환자. 내가 나에게 덮어 씌운 프레임일지도 모른다. 정말 주변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괜찮을 수도 있다. 이런 나라도 좋아해 줄 수 있는,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결국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그저 혼자서 바라보기만 했다. 혼자 시작하고 혼자 좋아하고 혼자 포기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머리는 더 빠지고 마음은 더 병들었다. 그렇게 나라는 인간은 괴팍해져 갔다. 동화 속 숲 속에 사는 마녀처럼, 전설에 나오는 영웅들을 괴롭히는 산속의 괴물처럼. 어쩌면 그 마녀와 괴물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기가 만든 프레임에 빠진 ‘평범한 인간’.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하는 사랑같이 인생도 혼자 끝내기로 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해프닝으로 끝난 옥상 자살사건을 끝으로 나의 열병도 끝이 났다. 나는 사랑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민하고 괴로워했으면 됐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탈모를 당당하게 받아넘길 가슴도 없고 그걸 극복하고 이성에게 나설 용기도 없으면 포기하는 게 나았다. 막말로 거세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냉큼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며 대머리인 현실을 직시하면서 인내했다.
‘야이 대머리야. 언감생심 누굴 좋아해. 어서 탈모약이나 발라라 이놈아’
그와 같은 이십 대를 보내면서도 때로는 내 진실된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이성과의 만남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언제 가발이 들통날지 모른다는 내 불안감으로 쉬이 부서지거나 또는 나의 도망침으로 끝이 났다. 물론 탈모로 인한 일방적인 약자를 자청하는 나의 초식동물적인 모습이 상대방을 질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남녀의 만남에 있어 중요한 밀고 당김의 떨림이 없어 재미없다고 하며 나를 떠나갔지만 과연 머리를 벗어던지는 나의 마술 앞에서도 그러하였을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사마천이 인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사기’라는 위대한 역사책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하나가 바로 고자라는 주장이 있다. 고자라서 모든 정력과 열정을 그 책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도 가발을 벗었다 쓰며 대머리로 인한 정신적 고자를 자청하며 이십 대의 모든 정력과 열정을 당시에는 쓸모 있다고 생각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일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대머리로서 인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그 어떤 인물이 되길 꿈꾸면서 말이다.
그렇게 난 인생의 눈부신 이십 대를 탈모라는 감옥에 갇혀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