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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자 선민이의 이야기입니다.

by 여온빛

ㅡ평범한 여자 선민이의 이야기입니다.




선민이는 학교 졸업 후 평범한 중소기업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 직장 동료의 소개로

만나 연애했던 남자 친구와 만난 지 2년 반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은 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은 결혼 후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후 복귀 하려고 했지만 눈이 밟히는 아기가 있기도 했고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가려니 아이를 맡기는 비용과 교육시키는 비용이 버는 것보다 더 나갈 것 같다는 계산도 있고 해서 뒤로 미뤘습니다.


그 후 집이 직장이자 생활터가 되었고 그런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습니다.


점점 옹알이도 잘하고 아장아장 예쁘게 걸으며 작은 사고들도 치지만 그래도 보고만 있어도 너무 사랑스러운 딸과의 시간에 행복한 선민이었지요.


그러다 2년쯤 지나, 선민이에게 둘째 임신 소식이 전해졌고 두 번째 임신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복된 소식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담되는 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새 생명의 기쁨은 컸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둘째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란성쌍둥이였습니다.

정말 복된 일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애가 셋이면 좀 많은 거 같긴 하지만, 감당할 수 있겠지라고 다짐했습니다. 나만 잘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믿었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힘들어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최선 속에 수많은 힘에 부침이 있었지만 좋은 엄마여야 해서 그런 감정들을 무시하려 노력해 가며 살았습니다. 그게 옳다 여겼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옳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때도 있나 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행복해야 옳은데, 선민이의 표정과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을 낳고 키우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습니까?


선민이는 아직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한 큰 딸아이를 키우며, 쌍둥이까지 돌보려니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들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무리 부모님들과 남편이 함께 도와주어도 선민이가 하루하루 느끼는 막중한 책임감과 육아의 과중한 무게는 그 가느다란 몸으로 담아내지 못할 만만큼 점점 커져갔습니다.


밝은 얼굴로 아이들에게 반응하고 기쁨과 열정으로 양육했던 선민이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를 선민이의 짜증과 무기력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선민이의 번아웃은 무기력을 불러왔고 무기력은 심한 우울감인지 우울증인지 그 경계 어딘가 인지한 상태까지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선민이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한 남편의 아내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무를 놓을 만한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당부시키고 잘 버텨야 한다고 다독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울한 느낌이 선민이를 짓눌러 굴복시켰습니다.


너무 지쳐 한숨을 푹 쉬고 하늘을 올려봤던 날,

저 먼 높은 하늘 도화지에 기다란 흰 줄 자국을 남기고 날아가는 자그마한 비행기를 볼 때, 눈물 한두 줄기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했더랬습니다.


놀이터에서 큰 딸의 그네를 영혼 없이 밀어주며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쌍둥이들이 절대 깨지 말고, 계속 오래 자길 바라고 있을 때에,


저 앞에서 재잘재잘 얘기하는 딸에게 너무 살갑게 사랑스러운 대화로 이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죄책감이 들었었더랬습니다.


요새 아이들에게 미소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세 아이들에게 이쁘게 대화 한번 제대로 해 줄 에너지가 없는 자신이 비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선민이는 ‘나는 너무 나쁜 엄마’라는 생각 후에,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내일부터는 잘해보자'

라고 다짐했더랬습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 다하고 이제 겨우 잘 수 있겠거니 하면 세 아이가 번갈아 깨어 엄마를 찾는 통에 선민이가 결심한 에너지가 붙는 내일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이제 거의 일 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선민이가 그토록 바라던 에너지 충전된 내일이 아닌,

이제 에너지는 방전에 방전을 거듭하여 켜질 수 없는 상태까지 가게 되었고, 아이들의 칭얼거림과 엄마 찾는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찼지만, 선민이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선민이는 정말 에너지가 다 빠진 껍데기가 된 무언가가 된 것 같았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칼들, 입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초점 없는 두 눈동자, 반쯤 열린 핏기 없는 입술.


벽에 걸린 화사한 벚꽃 같은 선홍빛 얼굴을 가진 맑고 맑은 눈과 입의 소유자와 달리 많이 변한 선민이.


분명 저 커다란 액자에서 흰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세상 모든 행복을 다 담은 얼굴의 주인은 선민이가 맞습니다.


그 모습이 아주 먼 옛날도 아닙니다. 선민이의 과거 3년 전쯤입니다. 삼 년이라는 세월이 길다면 길 수 있지만,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만한 세월인가 싶을 정도로 선민이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습니다.


그날 밤, 선민이는 밤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


무작정 나온 선민이는 갑자기 홀로 된 몸이 너무 불안하고 어색했지만, 선민이의 정신은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던 거 같습니다.


정신없이 걷다가 아파트 단지 화단 끝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목까지 왔습니다. 약간 어둑하지만 그래도 앞에 상가 몇 개들이 있어서 불빛이 어느 정도는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이 아파트가 생길 때부터 세월을 같이 맞아 온 나무 벤치 하나가 선민이가 올 줄 알고 어둠 속에서 옅은 불빛을 붙잡아 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민이는 그에 응답하듯 가서 털썩 앉았습니다. 여전히 두 눈은 초점 없는 채였습니다. 그냥 앉아 어딜 보는 건지 앞을 넋 놓고 응시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왜 나답지 않게 이성 없이 구는 건가.'


죄책감, 무기력, 화남, 슬픔, 외로움, 힘듦, 억울함, 후회 이 모든 감정들이 꼬일 대로 꼬여서 절대 풀 수 없는 엉켜진 명주실타래 뭉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대체 누가 곱디고운 착하고 성실한 선민이를 이렇게 만든 건지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없고, 그것을 풀 수 도 없는 대책도 없는 헝클어지고 엉킨 실뭉치.



그 순간 선민의 마음속은 온통 이 벗어날 수 없는 엉킴이 두려웠고 그것을 풀 자신도 없었습니다.

절대 어느 누구도 풀 수 없는 불가능한 숙제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안에서 쑥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뭣하지


가슴에 뜨겁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게감 없이 흐리기만 했던 눈물이 계속 폭포수처럼 흘러내려오기 시작했고 참아 볼 수 있는 이성도 막을 수 있는 힘도 없었던 선민이는 봉인 해제된 댐물처럼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 안쓰러운 선민이.


누가 이 불쌍한 선민이를 보면 등을 토닥토닥해 주련만..


누가 이 가여운 선민이를 보면 하얀 휴지 한 조각이라도 건네주련만..


누가 이 딱한 선민이를 보면 '괜찮다, 괜찮다' 위로해 주겠건만..


하지만, 가련한 선민이는 곁에는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어떤 전능자가 있다면 선민이 맘속에 들어와 그 무거운 돌을 녹여주기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시간이 답인 건지, 선민이의 폭포수 같던 눈물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보입니다.


선민이는 울다 겨우 진정된 아기처럼 불규칙적으로 훌쩍훌쩍거리며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슬렀습니다. 기특합니다.


그때였습니다. 저쪽 상가 쪽에서 음식 냄새가 희미한 불빛과 함께 희미하게 훑어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겹기만 했던 선민이.

주변을 보면, 누구나 잘해 내기만 하는 엄마 역할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일하는 커리어 우먼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진 무능한 여성이고,

아내역할은 더더욱 빵점짜리인 자신에 대하여 선민이는

스스로의 존재감, 자존감, 효능감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고,

삶에 대한 재미도 희망도 없는 채로 앉아 있었습니다.


‘살아서 뭣하나’


공허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던 그 순간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생각의 떠오름에 진심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


선민이는 자기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떡볶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꾸 떨쳐내고 싶은데 그럴수록 너무너무 구미가 당깁니다.

내 처지와 상관없이 내 미각과 맛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 앞에서부터 싣고 온 냄새 바람이 결국 선민이를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일단 떡볶이가 먹어싶어! 선민아!’


어떤 영화였는지 모르겠지만, 눈물 젖은 빵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어가며

처량한 신세를 먹어치우는 것 같았던 어떤 남자배우의 장면이 스쳐갔습니다.

영화의 제목도, 영화의 내용도 생각나지 않지만 왜 그 장면은 기억 속 한 장면으로 자리 잡은 걸까요.


아마 오늘 꺼내 쓸 요양으로 선민이의 머릿속 한편에 저장되었을까요.


그 장면이 떠오르니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아 파식 웃음까지 났습니다.


피식 웃으며 앞을 보니, 오늘 오후부터 사뿐사뿐 내려앉기 시작했던

가루눈들이 어느새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아~아. 름. 답. 다.’


초점 없던 선민이의 눈에 어느새 하얀 가루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신비로운 세상이 새롭게 보였고,

문득, 선민이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태어난 세 아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같이 보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하얀 세상을 볼 수 있는 세 아이들이 참 복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어.
내가 복덩어리니까 복덩이들이 태어난 거야. 그것도 셋이나.'


저기 앞 상가 미미분식점은 퇴근길에도 오가며 들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밤늦게까지 문이 열려 있습니다. 뭔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지만, 어지간히 울고 나니 절대 없어질 것 같지 않았던 무거운 돌덩이가 없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허기진가 봅니다.


떡볶이를 너무 먹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큰 딸 저녁 챙겨줄 때, 큰 딸이 흘렸던 밥 덩어리 한두 점 주워 먹은 게 다였습니다.


무릎을 일으켜 몸을 세우고 선민이는 떡볶이가 있는 상점으로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면서 이왕이면 오랜만에 튀김만두랑 순대를 추가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군침이 돕니다. 사람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생각만 했는데 벌써 꼬르륵꼬르륵 위는 음식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합니다.


가루눈을 날리던 밤하늘에서 선민이를 지켜보던 둥근 황금달이 속삭입니다.

‘선민아, 사랑해~ 너는 대단해~ 너는 어떤 산도 넘을 수 있어.’


그 속삭임을 들었는지 아닌지 선민이는 떡볶이와 튀김만두와 순대 앞에서 소녀가 되었습니다.

눈은 촉촉하고, 입은 맵고, 볼은 불꽃처럼 환하게 빛납니다.


떡튀순의 조화에 만족하고 있던 선민이는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나를 기쁘게 할 소소한 일들을 좀 더 많이 해야겠어. 내가 또 뭐를 좋아하더라.’


냠냠 떡볶이 한입 베어 물고 생각하고, 순대 한 덩이 떡볶이 빨간 국물에 푹 찍어 먹으며 생각합니다.

한 입 물면 와그작 소리 나는 튀김 만두는 예술 같다는 쾌감까지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저 깊은 속에서 선민이가 선민이에게 말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선민아, 너 참 대단하다.
난 네가 참 단순해서 좋다.
이렇게 하면 어떤 산이라도 넘을 수 있겠어!’






**선민이라는 평범한 여성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써 내려가봤습니다.

선민이처럼 저도 종종 나를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소소한 일들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 실천해 봐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 앞에 있는 산들을 넘어갈 때 위로와 힘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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